역사적 이야기

NKVD 제복을 입은 독일 특공부대, 소련 장군마저 완벽히 속였다

"마이코프와 그로즈니를 점령하지 못하면 나는 이 전쟁을 끝내야 할 것이다." — 1942년 7월 말, 히틀러는 지휘관들에게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이 지옥처럼 어려운 임무가 브란덴부르크 부대의 병사들에게 맡겨졌습니다. 이들은 미국 레인저나 영국 코만도에 결코 뒤지지 않는 정예 부대였습니다.

카프카스로 향하는 독일군

독일군은 방금 카프카스 진격의 관문인 로스토프나도누를 함락시켰습니다. 이 성공 이후 퓌러의 명령에 따라 제17군은 바투미를 향해, 제1·4 기갑군은 석유 산지인 마이코프와 그로즈니를 향해 공격을 개시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부대들의 선두에는 브란덴부르크 특수부대에서 차출된 독립 부대가 자리했고, 독일 특공대는 붉은 군대 후방에서 원거리 파괴 공작도 수행할 예정이었습니다.

특수 임무를 위한 '건설' 연대

레어 연대 브란덴부르크 z.b.V. 800(Lehr Regiment Brandenburg z.b.V. 800)은 국방군 첩보국(아브베어) 산하 에빙하우스 대대를 기반으로 창설되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라는 이름은 독일 전문 요원들의 사령부가 위치한 도시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처음에는 중대 규모로 작전했지만, 1941년 8월까지 연대급으로 성장했습니다.

NKVD 제복을 입은 독일 특공부대, 소련 장군마저 완벽히 속였다

1939년 12월 15일 창설된 '브란덴부르크' 부대의 초창기 막사. 사진: 퍼블릭 도메인.

병사들은 독일인뿐 아니라 발트 3국과 소련 시민, 앵글로색슨계, 슬라브 국가 출신 폭스도이체, 아랍 국가·이란·아프가니스탄·심지어 인도 출신 지원자들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로 구성되었습니다. 프랑스인, 벨기에인, 네덜란드인, 핀란드인, 스웨덴인, 노르웨이인, 루마니아인, 헝가리인도 있었습니다.

부대 입대의 기본 조건은 최소 하나의 외국어 구사 능력과 중등 또는 고등 교육 수준이었습니다. 병사들은 비정규전과 게릴라전 훈련을 받았으며, 자국 무기와 적 무기 사용, 각종 차량 운전, 백병전, 승마, 경비행기 조종, 낙하산 강하, 통신 장비 운용, 폭발물 취급까지 익혔습니다. 심지어 소련 극북의 혹한 환경에서 작전할 수 있는 전문 중대까지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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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스 지도 위의 마이코프(클릭하면 확대). 사진: 퍼블릭 도메인.

소련의 석유를 손에 넣어야 한다

독일군이 마이코프 지역 공격에서 거둬야 할 목표 중 하나는 석유 시설을 온전한 상태로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임무에는 브란덴부르크 대원 86명으로 구성된 특수 분견대가 배정되었습니다.

작전은 두 단계로 나뉘었습니다. 프로하스케 소위(Ernst Prochaska)가 지휘하는 24명 규모의 소규모 분대는 도시 바로 밖 벨라야 강의 다리를 점령해야 했습니다. 그 직후 제13기갑사단의 전차가 통과하여 마이코프와 주변 유전 지대를 함락하는데, 그곳은 이미 펠커잠 소위(Adrian von Fölkersam) 부대가 사전에 무력화해 두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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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자를 위한 특별 훈련

펠커잠의 공작 요원들은 동프로이센의 한 훈련소에서 작전 준비를 했습니다. 독일군 지휘관은 붉은 군대 정규 부대 사이에 만연한 NKVD에 대한 공포를 역이용해, 병사들에게 이 조직의 제복을 입히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제복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독일 병사들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완벽한 체키스트(NKVD 요원)로 변신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이들은 모두 발트 독일인 출신으로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기 때문에 임무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지휘관 펠커잠 본인도 1905년 일본과의 전쟁 당차 러시아 제국 해군 제독의 손자였습니다.

NKVD 제복을 입은 독일 특공부대, 소련 장군마저 완벽히 속였다

에른스트 프로하스케(왼쪽)와 아드리안 폰 펠커잠. 사진: 퍼블릭 도메인.

훈련은 '체키스트의 삶'의 모든 세부 사항을 망라했습니다. 독일인들은 소련 제복을 입고 행진했고, 소련 무기 사용법을 익혔습니다. 특유의 체키스트 은어를 배우고, 동료 및 상급 장교에게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에도 상당한 비중이 두어졌습니다. 소련 현실에서 NKVD는 생사여탈권을 쥔 존재였기 때문에, 브란덴부르크 대원들은 일개 병사들을 상대할 때도 가혹하고 거친 태도를 몸에 익혀야 했습니다. 훈련의 마지막 관문은 독일 첩자들이 술에 익숙해지도록 대량의 보드카를 마시는 연습이었을 정도였습니다.

가짜 체키스트, 작전 개시

1942년 8월 2일, 펠커잠 부대는 알렉산드롭스크 인근 전선을 잠입 통과했습니다. 독일 기갑부대는 7일 뒤에 출동할 예정이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대원들은 노획한 소련제 트럭을 몰았고, 제복 위에 NKVD 제복을 걸쳤습니다. 지휘관 본인은 '트루친 소령(Major Truchin)'이라는 신분으로 행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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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임무에는 '전형적인' 독일 국방군 병사를 보낼 수 없었습니다…(사진: 퍼블릭 도메인).

행군 중 한 마을에서 독일인들은 붉은 군대를 탈영한 코사크와 우크라이나인들을 만났습니다. 펠커잠은 이 기회를 완벽하게 활용해 엄격하고 오만한 NKVD 장교를 연기하며, 모든 이를 체포해 국적별로 나눌 것을 명령했습니다. 호송된 코사크들은 일정 거리 떨어진 곳으로 끌려가 거기서 총살이 가장되었고, 이를 계기로 독일군 쪽으로 넘어오도록 설득당했습니다.

'살아남은' 우크라이나인들은 트럭에 실려 마이코프로 호송될 예정이었고, 그들은 총살보다 더 끔찍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적진 한복판에서

마이코프에 도착하자 '트루친 소령'과 그의 가짜 체키스트들은 현지 NKVD 사령부에 보고했습니다. 코사크 총살 소식은 펠커잠보다 먼저 전해져 있었습니다. 가짜 NKVD 요원들은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숙소가 배정되고 임무가 분배되었으며, 저녁 공식 리셉션에도 초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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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스코르체니(오른쪽)와 함께한 아드리안 폰 펠커잠. 1944년 부다페스트(사진: Bundesarchiv, Bild 101I-680-8283A-30A / CC-BY-SA).

이후 며칠간 펠커잠은 소련 장군을 동반하며 소련군 방어 진지를 시찰했습니다. 그의 병사들 역시 현지 군사 인프라의 핵심 거점들을 파악했습니다.

1942년 8월 8일로 예정된 독일군의 마이코프 공격 전야, 독일 특공대는 세 개 조로 나뉘었습니다. 첫 번째 조는 전선의 소련군 통신을 마비시키는 임무를, 두 번째 조는 시내 소련군 사령부의 전화 교환국을 장악해 거짓 정보를 유포하는 임무를, 세 번째 조는 유전 시설의 자폭을 저지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전원 배치 완료!

해 질 녘, 첫 번째 부대가 전선을 향해 진군했습니다. 이때 소련군 진지를 향한 독일 포격의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대원들은 소련 군사 사령부의 야외 통신소를 점령하고 폭파했고, 소련 사령부와 부대 간의 전화 연락이 끊겼습니다.

두 번째 공작조가 전화 교환국을 장악하면서 소련군 내부의 혼란은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독일인들은 전화를 걸어오는 모든 소련 부대에 '공식' 정보라며 도시의 조기 철수를 통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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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결국 모든 것은 석유였습니다… 독일 뉴스릴 화면(사진: 퍼블릭 도메인).

세 번째 조도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이들은 석유 시설을 장악하고 폭파로부터 보호했습니다. 소련군은 단 한 곳의 시설만 파괴할 수 있었고, 독일군은 추가로 대량의 원유 비축량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동료들을 사선으로 몰아붙이다

독일 전차가 이미 도시를 공격하고 있을 때, 펠커잠은 자기 병사 일부를 저항 거점 중심부에 배치했습니다. NKVD의 관례를 충실히 따라, 가짜 체키스트들은 차단부대 역할을 하며 후퇴하려는 소련 병사들을 처형해야 했습니다.

NKVD 제복을 입은 독일 특공부대, 소련 장군마저 완벽히 속였다

마이코프의 독일 공작 요원들. 데이비드 R. 히긴스의 『Behind Soviet Lines』(Osprey 시리즈)에서 발췌.

한편 벨라야 강의 다리는 프로하스케 소위의 부대가 공격했습니다. 공격을 지휘하던 장교가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독일군은 이 요충지를 장악하고 폭파를 막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뒤로 독일 전차와 지원 보병이 도시로 쇄도했습니다.

독일군 공격의 결정적 순간, '트루친 소령'은 먼저 독일 전차를 매복시켜 놓고 소련 대전차 부대에게 후퇴를 명령했고, 이어서 보병 부대에도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소련군은 공황 상태로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탕키! 탕키!(전차다!)"를 외치며 혼란을 부추기던 독일 공작 요원들의 함성을 소련 정치장교들은 도저히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NKVD 제복을 입은 독일 특공부대, 소련 장군마저 완벽히 속였다

현대에 촬영된 마이코프(사진: Kefoss, CC BY-SA 3.0).

1942년 8월 9일, 독일군이 마이코프에 진입했습니다. 도시의 신속한 점령은 브란덴부르크 연대 병사들의 활약에 크게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제13기갑사단 사단장은 그들의 작전 덕분에 최소 4일간의 전투를 피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프로하스케 소위(추서)와 펠커잠 소위에게 철십자 기사십자장이 수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