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잉카의 마지막 요새, 세로 빅토리아에서 발견되다

페루 남동쪽 빌카밤바(Vilcabamba) 지역은 잉카 문화 연구자들에게 여전히 매혹적인 탐구 대상이다. 고대 수도 쿠스코 인근 높은 산악 지대에는 잉카 제국 전성기에 축조된 전략적 도시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 1911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 후원으로 하이럼 빙엄이 발견한 마추픽추처럼 이미 그 실체가 밝혀진 유적들도 많다.

그리고 바로 이곳, 산과 숲 사이의 아직 비밀에 싸인 장소에 마지막 잉카 통치자 투팍 아마루가 1572년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맞서 최후까지 항전했던 동명의 도시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 만코 잉카는 침략자들의 만행에 경악해 36년 전 쿠스코를 떠나 빌카밤바에 저항 거점을 세웠다. 투팍 아마루는 아버지의 용기를 물려받았으나 결국 패배했고, 그의 이름과 투쟁은 오늘날까지 라틴아메리카 민중 운동의 자유 이념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전설적인 피난처는 결코 발견되지 않았다.

수수께끼의 실마리, 세로 빅토리아

그 미스터리가 마침내 풀릴지도 모른다. 마추픽추에서 약 35km 떨어진 지점에서, 잉카 문화 연구가이자 사진작가인 피터 프로스트와 쿠스코 산 안토니오 아바드 대학의 페루 고고학자 알프레도 발렌시아 세가라가 이끄는 연구진이 한 유적군에 도달했다. 위치와 출토 유물의 연대로 미루어 보아 이곳이 잉카의 마지막 방어 거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세로 빅토리아(Cerro Victoria) 산 정상에 위치한 이 고고학 유적은 프로스트와 미국인 탐험가 스콧 고르수치가 1999년 처음 포착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험난한 원정은 2년간의 준비 끝에 지난해 6월 실행됐으나, 그 성과가 공개된 것은 최근이다. 프로스트는 "이곳은 잉카 문명의 태동부터 최후의 숨결까지 그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며 "스페인인들이 이곳에 도달했다 해도 도시의 최남단 구역만 진입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데스와 아마존 경계의 거대 유적

연구 대상 구역은 2년 전 예상보다 훨씬 광대하다. 해발 3,600m 이상, 안데스 산맥이 점차 낮아지며 아마존으로 이어지는 지점에 펼쳐진 유적지는 약 6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습윤림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는 6,000m급 설봉들을 조망할 수 있다. 프로스트는 "두 가지 이유로 이곳을 택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하나는 주변 은광 채굴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세로 빅토리아가 주변 설봉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제의적 장소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빌카밤바 라 비에하 이래 최대 발견

빌카밤바 지역에서 지금까지 연구된 그 어떤 도시도 잉카의 최후 보루였음을 입증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로 빅토리아는 1964년 진 사보이가 인근 빌카밤바 라 비에하 유적을 발견한 이래 가장 크고 중요한 잉카 유적으로 기록된다. 빅토리아 산정의 '도시 구조'에는 원형 건물군, 성벽, 제단, 도로, 수로, 댐, 계단식 밭, 잉카 유물이 가득한 무덤, 반파된 피라미드 등이 포함된다.

수수께끼의 열쇠는 두 시기의 토기 조각에 있다. 제국 성기인 1200년경 유물과 투팍 아마루가 스페인 폭정에 맞서 싸운 16세기 중반 유물이 공존한다. 세가라는 "이 산은 방대한 고고학적 유물을 품고 있다"며 "이 유적은 이 외딴 지역의 점유사에 대한 귀중한 새 통찰을 제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펠로우인 요한 라인하르트 연구원도 같은 의견을 덧붙였다.

험난한 여정, 그리고 미래의 과제

이번 원정은 모험 그 자체였다. 가장 가까운 도로에서 도보 4일 거리, 3,300m 깊이의 아푸리막 협곡을 넘어야 했고, 물자와 식량은 노새 부대에 실어 날랐다. 연구진의 경탄에도 불구하고 세로 빅토리아는 현지 원주민들에게 낯선 곳이 아니었다. 두 원주민 가족이 '코리우아이라치나(Coryhuayrachina)'라 부르는 이곳에 살고 있었다.

올해 말 피터 프로스트와 그의 팀은 더 큰 규모의 원정대로 돌아와 추가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이를 통해 잉카 역사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여전히 베일에 싸인 한 장이 더 명확히 밝혀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