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 페니키아인이 존재했다는 전설은 '과학적 호기심', 15세기 대항해 이전 유럽인들의 상상력, 그리고 한 건의 사기극이 뒤섞여 탄생했습니다.

고대사 속 페니키아 문명
고대사를 공부할 때 페니키아 문명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특히 로마가 카르타고와 벌인 전쟁, 즉 포에니 전쟁에서 두드러지는데,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인이 북서 아프리카에 세운 주요 도시였습니다. 여기에 최초의 알파벳 창제—유명한 페니키아 문자—와 활발한 해상 무역로는 이 문명의 위상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그러나 역사 곳곳에는 이런 고대 문명과 관련된 터무니없는 이론들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브라질에 페니키아인이 존재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이론은 브라질 발견 이전부터 내려오던 유럽의 고대 전설과 브라질 땅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이 결합된 결과물로, 20세기 고고학 연구가 발전한 이후에야 만족스럽게 규명될 수 있었습니다.
바다 너머의 상상: 잃어버린 문명에 대한 환상
15~16세기 대항해시대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이전, 유럽인들은 바다 너머의 잃어버린 문명과 위대한 모험에 대한 일련의 전설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시까지 거의 탐험되지 않았던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항해에 대한 상상이었죠.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잃어버린 섬 '아틀란티스'의 이야기입니다.
페니키아인은 탁월한 해상 무역상으로, 지중해 거의 전역을 잇는 항로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은 바다 건너 대륙이 존재할 가능성은 상상하지 못한 채, 대서양 어딘가의 섬에 신화적인 페니키아 식민지가 세워졌다고 믿었습니다. 이 섬은 창세기에 기록된 대홍수 시대 이후로도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잉아의 암각화, 전설의 불씨를 지피다
브라질 발견과 식민지화 과정 이후, 브라질 북동부 내륙을 탐사한 초기 유럽 학자들은 인상적인 고고학적 발견, 특히 암석 각인과 동굴 벽화들을 접하게 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파라이바주 잉아의 이타코아티아라(투피-구아라니어로 '돌에 새긴 그림')입니다.

파라이바 잉아의 암석 각인은 브라질 내 페니키아인 존재 전설에 간접적으로 기여했습니다.2
고고학자 가브리엘라 마르틴(Gabriela Martin)의 저서 『브라질 북동부의 선사시대』에 따르면, 잉아의 암각화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페니키아 비문'으로 둔갑했습니다. 이는 당시 브라질 고고학계의 최고 권위자였던 라디슬라우 네투(Ladislau Netto)가 그것이 사실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도 한몫했습니다. 네투는 조아킹 알베스 다 코스타(Joaquim Alves da Costa)라는 인물이 파라이바 계곡의 포우조알투(Pouso Alto) 지역에서 발견했다는 페니키아 비문 필사본을 접하게 되는데, 이는 당시 브라질 역사·지리 연구소(IHGB) 소장이었던 마르케스 데 사푸카이(Marquês de Sapucaí)에게 전달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포우조알투라는 지역과 조아킹 알베스 다 코스타라는 인물은 실존하지 않았으며, 그 정체불명의 '페니키아 비문'은 실은 앞서 언급한 잉아의 이타코아티아라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마르케스 데 사푸카이와 라디슬라우 네투를 알던 누군가가 페니키아 문서의 필사본을 보내면서, 악의적으로 파라이바의 암석에서 발견된 것처럼 꾸민 것으로 보입니다. 라디슬라우 네투는 유럽에서 유학하며 페니키아 고고학의 권위자인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의 제자였기에, 이 이야기는 더욱 신빙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75년, '페니키아 비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네투는 자신이 사기의 희생자였음을 인정하고, 브라질에 페니키아인이 존재했다는 구체적 증거는 없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루트비히 슈벤하겐과 기이한 이론들
역시 가브리엘라 마르틴에 따르면, 브라질 내 페니키아인 존재 전설에 기여한 또 다른 인물은 루트비히 슈벤하겐(Ludwig Schwennhagen)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브라질 북동부의 고고학적 발견물 중에서도 동굴 벽화와 유적 구조물에 별난 집착을 보였습니다. 그는 1910~1920년대 브라질에 머물며 강의를 하고 내륙의 세르탕 지방을 누볐습니다. 이 연구자는 고고학적 방법론과 고대 전설의 환상을 결합시켰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7개 도시의 전설'이 있는데, 이는 8세기경 이베리아 반도에서 생겨난 전설로, 서고트족의 마지막 왕이 바다 건너에 문명을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 즉 '세테 시다데스(Sete Cidades)'입니다. 또한 파라이바 계곡의 신비한 도시 '투토이아(Tutoia)' 전설도 있습니다. 후자에 따르면 페니키아인들은 트로이인들과 합류해 여러 도시를 건설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도시가 바로 투토이아라고 합니다.
이런 기발한 이야기들이 가능했던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고고학 연대 측정 기술이 정교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 기술은 20세기 중반에야 개발되어 현지에 적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 대서양의 광활함이 낳은 미스터리에서 비롯된 고대 전설들 역시, 오랫동안 엄밀한 설명 대신 상상력이 자리를 차지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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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hutterstock, Babich Alexander
2 Lucia Barreiros da Sil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