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읍의 오락 쇼, 인디언, 치과의사, 그리고 수술대에서의 도주. 이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의학에 마취가 도입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진통제와 마취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마취가 의학에 도입되기 전에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과 싸워야 했습니다. 가장 흔한 방법은 술이나 아편이었고, 감각을 둔화시키기 위해 국소 부위를 누르거나 얼음찜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모든 외과 수술은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으며, 의사들은 환자를 단순히 의자에 묶어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평범한 외과의사의 모습은 정육점 주인과 다름없었습니다. 19세기 초까지 그들의 작업복은 피로 얼룩지고 심지어 딱딱하게 굳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수술대라 불린 것은 사실 붉은 천을 덮은 평범한 의자에 불과했고, 환자는 튼튼한 밧줄로 묶여 수술실 기둥에 고정되었습니다. 간호사들의 주된 임무는 환자를 붙잡아 두는 것이었죠. 의사들은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최대한 빨리 수술을 마쳐야 했습니다. 실제로 로버트 리스트런은 26초 만에 다리 절단 수술을 해냈다고 전해집니다.

마취가 발견되기 전, 의사들은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수술을 끝내야 했습니다.
웃음가스, 콜트, 그리고 인디언
마취가 의학에 도입된 배경에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몇몇 미국 사업가들은 이윤을 위해 소읍들을 돌며 특별한 오락 쇼를 열었습니다. 자원자들이 무대에 올라 일명 '웃음가스'라고 불리는 아산화질소를 흡입하면, 관객들은 그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았습니다. 자원자들은 마치 술에 취한 듯 웃고 비틀거리며 들뜬 기분을 연출했죠.
이런 행사를 기획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리볼버 특허를 위한 자금을 모으던 새뮤얼 콜트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쇼는 실패작이 되고 말았는데, 인디언들에게 가스를 불어넣었더니 그저 잠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이런 물질에 훨씬 낮은 내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여기서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아무도 단순한 오락이 의학史上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수술대에서의 도주
젊은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Horace Wells)도 비슷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의 친구가 무대에서 아산화질소를 흡입했는데, '공연' 내내 튀어나온 못에 다리를 크게 다친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 장면에 매료된 웰스는 직접 무대에 올라 같은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가스를 흡입하면 통증 없이 발치나 다리 절단도 할 수 있을 것 같소...

첫 마취 수술은 참패로 끝났지만, 의학의 변화는 이미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습니다.
다음 날 그는 자신의 진료실에서 이 물질의 효과를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아산화질소의 영향 아래, 조수가 그의 사랑니를 뽑아준 것입니다. 기뻐한 웰스는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살짝 찌르는 느낌 이상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 시대 가장 놀라운 발견이다.
에테르 역시 매우 유사한 성질을 지닌다고 지적한 화학자와 상의한 후, 웰스는 연구 결과를 더 넓은 대중에게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1845년 1월 17일,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존 워런(John Warren) 박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에테르를 이용한 수술이 진행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웰스는 잘못된 용량을 사용했거나 시술을 너무 일찍 시작한 탓에, 발치를 시작하는 순간 겁먹은 환자가 수술대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학생들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죠. 웰스의 환자는 비만한 알코올 중독자였는데, 당시 웰스는 이런 요인들이 마취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시연 수술은 완전한 망신으로 끝났습니다.
다행히 의학의 발전을 위해 연구는 계속되었습니다. 웰스의 친구인 윌리엄 모턴(William Morton)이 연구를 이어받았고,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마침내 1846년 10월 16일 존 워런 박사 앞에서 환자가 완전히 잠든 상태에서 하악 종양 제거 수술에 성공했습니다. 이 날짜는 의학 역사상 진정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전신 마취, 즉 '잠'의 도입은 외과 수술에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에테르를 이용한 치료 장면
너는 고통 속에 출산하리라
이 발명품은 출산 현장에도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공회 성직자들은 구약성경의 구절인 '너는 고통 속에 출산하리라'를 근거로 에테르 사용에 반대했습니다. 의학에서 마취 사용을 둘러싼 거대한 논쟁이 벌어진 것이죠. 동시에 에테르는 점점 더 대중화되었는데, 마취 분만을 직접 경험한 이가 다름 아닌 빅토리아 여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아들 리오폴드가 바로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그 순간부터 여성들—물론 더 부유하고 높은 신분의 여성들—은 마취 하의 출산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마취학이 널리 보급되기까지의 길은 여전히 길고 복잡했습니다(웰스의 발명자 지위를 둘러싼 분쟁과 그의 비극적인 자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계는 이미 첫걸음을 내디딘 상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