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samba)의 기원은 19세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라는 도시에서 아프리카에서 물려받은 음악적 요소와 유럽의 음악적 요소가 뒤섞이고 어우러진 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음악 장르, 삼바
삼바는 수많은 대중음악 평론가, 예술가, 역사학자,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브라질에서 가장 독창적인 음악 장르, 곧 브라질 고유의 음악 장르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삼바가 국민 음악으로서 중심적 지위를 갖느냐의 여부와 관계없이, 그 기원(혹은 그 탄생의 역사)은 나라의 역사 전반을 관통하는 방대한 리듬과 전통의 혼합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아프리카의 북소리에서 시작되다
삼바는 노예로 브라질에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이 가져온 오래된 북 연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북들은 대개 종교적 요소와 결부되어 있었으며, 흑인들 사이에서 음악과 춤, 타악기 소리와 몸동작을 통해 일종의 의례적 소통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바투크(batuque)'라 불린 이 리듬은 점차 다른 음악 장르의 요소들을 흡수해 갔는데, 특히 19세기 리우데자네이루의 음악 씬에서 그러한 변화가 두드러졌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 혼합의 도시
19세기부터 제국의 수도가 된 리우데자네이루에는 전국 각지, 특히 바이아(Bahia) 지방 출신 흑인들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도심 중심부, 주로 프라사 온제(Praça Onze) 일대에 요루바(Yoruba) 종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이곳에서 '성모(mãe de santo)'와 '성부(pai de santo)'라 불리는 종교 지도자들이 활동했습니다. 최초의 삼바 로다(삼바 동그라미)는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 아프리카 북 연주의 요소들이 폴카와 막시셰(maxixe)와 어우러지며 탄생했습니다.
'삼바'라는 말의 의미
'삼바'라는 단어는 본래 즐거움과 잔치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삼바 로다 안에서 누가 더 잘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부르는지 겨루는, 장르 전문가들 사이의 배틀이라는 의미로도 확장되었습니다. 카리오카 삼바의 한 갈래였던 '파르티두 알투(partido alto)'가 바로 이러한 특징을 대표합니다. 연구자 마르쿠스 아우비투(Marcos Alvito)는 '삼바'라는 단어의 역사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네이 로페스(Nei Lopes)에 따르면 가능한 기원 중 하나는 쿠이오코(Quioco)족으로, 이들에게 '삼바'는 아이처럼 신나게 뛰어놀고 즐긴다는 뜻입니다. 어떤 이들은 반투어 '셈바(semba)'에서 왔다고도 하는데, 이는 배꼽 또는 심장을 의미합니다. 이는 배꼽을 내세우는 일종의 다산 의식으로 특징지어지는 앙골라의 혼인 춤에 어울리는 개념이었습니다. 바이아에서는 남자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여자만이 한 번에 한 명씩 춤추는 '삼바 데 로다(samba de roda)'라는 형태가 있었으며, 좀 더 느슨한 형태에서는 한 커플이 원의 중앙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ALVITO, Marcos. Samba. In: Journal of History of the National Library. Year 9. nº 97. October, 2013. p 80)"
삼바의 확산과 최초의 녹음
앞서 언급했듯이 삼바 데 로다는 전형적인 카리오카 삼바의 본질을 결정지었는데, 곧 즉흥적인 가사와 함께 군중이 후렴을 함께 부르는 집단적 성격이 그것입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무렵, 삼바는 리우의 교외 지역에서, 그리고 이후 카리오카 언덕 지역에서 지배적인 대중 음악 장르로 자리매김해 갔습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삼바 예능인(sambista) 두 사람이 유명해졌습니다. 상투 아마루 드 푸리피카상 출신 티아 페르실리아나의 아들인 조앙 다 바이아나(João da Baiana, 1887~1974)는 삼바 '바투키 나 코지냐(Batuque na Cozinha)'를 녹음했으며, 동가(Donga, 본명 호아킹 마리아 도스 산투스, 1890~1974)는 1916년 11월 27일 훗날 '음반사에 녹음된 최초의 삼바'로 알려지게 되는 '펠로 테레포네(Pelo Telefone)'를 녹음했습니다.
1930년대, 음악 산업과 정치 속의 삼바
1930년대부터 삼바는 음악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동시에 제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 독재 정권의 에스타두 노부(Estado Novo) 시기 국가 정책에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삼바의 뿌리를 연구한 위대한 학자 중 한 명이자 스스로 삼바 가수였던 인물이 1930년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의 별명은 '알미란트(Almirante)', 본명은 엔히키 포레이스 도밍게스(Henrique Foreis Domingues, 1908~1980)로, 훗날 방송인으로 활동했습니다. 알미란트는 빌라 이자벨에서 노엘 로자(Noel Rosa)와 함께 '반두 두스 탕가라스(Bando dos Tangarás)' 그룹의 멤버였습니다. 저서 『노엘 로자의 시절(In the time of Noel Rosa)』에서 그는 리우에서 발전한 도시 삼바의 민속적 요소를 탐구하고, 이 장르를 브라질 각지의 다양한 음악 리듬이 끼친 영향과 연결 지었습니다. 윌슨 바치스타(Wilson Batista), 노엘 로자, 카르톨라(Cartola), 넬송 카바키뉴(Nelson Cavaquinho) 같은 이름들 역시 이 시기를 대표하는 삼바 거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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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Commons
글: 클라우디우 페르난데스(Claudio Fernan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