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신화 하면 제우스는 누구나 떠올리지만, 정작 데메테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데메테르는 제우스와 함께 올림포스 12신에 속하는, 농경과 풍요를 관장하는 매우 중요한 여신이다. 오늘은 이 '데메테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대지모신의 계보를 잇는 제우스의 누나
데메테르는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남동생 제우스 역시 크로노스와 레아의 자식이므로, 데메테르는 제우스의 누나가 된다. 앞서 '헤라' 편에서도 언급했듯, 그리스 세계에서는 누나인 데메테르마저 제우스와 강제로 관계를 맺게 되는데…
세상에 여자는 많지만 제우스를 이길 수 있는 이는 없다. 역시 신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데메테르는 봄의 여신 페르세포네를 낳는다. 페르세포네는 그리스 신화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 그리스에서 보기 드문 전사(戰士)의 나라 스파르타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훗날 실제 그리스 세계는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주도하게 되니, 더욱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설이 있다. 원래 그리스 땅에 살던 농경 민족의 대지모신이었던 데메테르를, 유목민 출신인 제우스 일파의 신들이 정복했다는 이야기다. 신화 속 '강제 관계'라는 설정에는 이런 민족 간 충돌의 흔적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데메테르는 할머니 가이아, 어머니 레아처럼 모신(母神)으로서의 역할을 이어받은 대지모신이다. 고대 세계에서 농작물의 풍요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데메테르는 그리스에서 지극히 중요한 여신이었다.
그리스 신화에는 여신이 많지만, 데메테르의 격은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보다도 위라고 전해진다. 참고로 제우스의 남동생이자 데메테르의 남동생인 포세이돈마저 데메테르에게 강제로 관계를 시도했으니, 데메테르는 여러모로 고단한 삶을 살았던 여신이다.
이 신들은 도대체…
페르세포네 납치 사건 — 그리고 겨울의 탄생

데메테르에게 가장 골치 아픈 존재는 제우스도 포세이돈도 아니었다. 바로 맏형 하데스였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에게 반해 그녀를 자신의 거처로 데려갔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 하데스는 지하세계의 왕이다. 다시 말해 그의 거처란 곧 지하세계, 저승이라는 뜻이다.
하데스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하면 '진지함'이다. 극도로 진지하다. 진지한 남자가 폭주하기 시작하면 얼마나 무서운지, 이 사건이 잘 보여준다.
딸을 되찾기 위해 데메테르는 홀로 지하세계로 들어간다. 한편 풍요의 여신이 사라진 지상은 비참한 꼴이 된다. 농사 생산량 문제 정도가 아니라 모든 식물이 죽어가는 수준이었으니, 제우스가 아무리 돌아오라고 해도 데메테르는 묵살한다.
아마 제우스의 명령을 무시할 수 있는 유일한 신이 데메테르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여신이지만, 그만큼 높은 지위를 지닌 존재였던 것이다.
결국 제우스는 하데스를 설득해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돌려보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페르세포네는 지하세계에서 석류 열매를 세 알 먹었고, '저승의 음식을 먹으면 저승의 주민이 되어야 한다'는 규칙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이 규칙이 우선이겠지만, 곤란해진 제우스는 타협안을 내놓는다.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에 머무는 기간 동안만 지상의 생명력이 멎는 것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겨울'이 탄생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