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브라질 축구의 시작: 귀족의 스포츠에서 국민 종교로

브라질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바, 카니발, 그리고 축구를 떠올립니다. 축구에 미쳐 있는 나라, 어느 나라보다도 공에 대한 사랑이 깊은 곳이라는 이미지죠. 실제로 '커피의 나라' 브라질에서는 축구가 일종의 종교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오늘날 브라질 축구의 위상을 생각하면 믿기 어렵지만, 이 스포츠가 브라질에서 별다른 관심이나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던 시절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축구는 오늘날 가장 '민주적인' 스포츠입니다. 값비싼 장비나 많은 비용 없이도 공 하나만 있으면 누구든 플레이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100년 전 브라질의 상황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빈곤과 인종차별


20세기 초, 주로 영국인들이었던 유럽인들이 브라질인들에게 축구를 가르쳤지만, 이들은 이 스포츠를 상류층의 오락거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1920년대까지 축구는 오직 가장 부유한 계층만이 즐길 수 있는 귀족의 게임이었습니다. 유니폼, 공, 축구화 등 장비 비용이 워낙 비싸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그린필드에서 시험해 볼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브라질 축구의 시작: 귀족의 스포츠에서 국민 종교로

1914년 당시 촬영된 최초의 브라질 국가대표팀. 여기서는 짙은 피부색의 선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당시 경기용 공이나 축구화는 모두 영국에서 수입해야 했고, 재정적인 이유로 사회 대다수에게는 손이 닿지 않는 물건이었습니다. 게다가 문제는 경제적인 요소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만연했던 인종차별은 흑인들이 클럽 팀에서 축구를 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었죠.


공격수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커리어 통산 1,000골 이상 득점)는 2등 시민으로서 굴욕을 견뎌야 했습니다. 물라토(흑백 혼혈)였던 그는 커리어 초반에 국가대표팀에 뽑힐 수 없었고, 결국 쌀 가루로 얼굴을 하얗게 덮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브라질 축구의 시작: 귀족의 스포츠에서 국민 종교로

천재였던 프리덴라이히조차 피부색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프리덴라이히라는 천재 선수의 사례를 통해, 피부색이 한 사람의 축구 인생을 어떻게 가로막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경기장에서 인종차별이 사라진 것은 1930년대에 들어서야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주역으로 떠오른 선수가 바로 레오니다스 다 실바였습니다.


축구의 '민주화'


1920년대 초부터 축구는 점차 엘리트 전유물로서의 성격을 잃어갔습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빠르게 진전된 산업화였습니다. 1929~1933년 세계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의 산업은 꾸준히 성장했고, 그 결과 국내에서 생산된 축구 장비의 가격도 눈에 띄게 낮아졌습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산업화가 개별 공장 단위로 축구 클럽을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이 클럽들은 도심에 자리 잡았고, 평범한 노동자들도 그린필드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선수들 간의 경험 교류와 공동체 의식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축구뿐 아니라 사회 관계 역시 어느 정도 '민주화'되는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 물론 가난한 계층에게 축구의 문을 연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작용했는데, 때로는 의외로 현실적인 동기이기도 했습니다.


브라질 축구의 시작: 귀족의 스포츠에서 국민 종교로

월드컵 무대에 선 최초의 흑인 선수, 전설의 레오니다스 다 실바.


대표적인 예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는 열망입니다. 월드컵 무대에 선 최초의 흑인 선수는 앞서 언급한 레오니다스로, 그는 1934년 대회를 위해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습니다. 세계 정상을 다투는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축구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졌고, 짙은 피부색의 국민들에 대한 사회적 관용이 넓어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33년 프로 선수 제도의 도입이었습니다. 그동안 순수한 오락으로만 여겨졌던 축구가 이제 가난한 이들에게도 생계 수단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파벨라(빈민가) 출신 가난한 소년들의 성공 신화, 즉 펠레와 호나우두 같은 전설들의 커리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