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장을 보다가 문득 현대 슈퍼마켓의 풍부한 상품 진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장바구니에는 빵, 우유, 달걀에 미네랄 워터, 치즈, 버터까지 담겼습니다. 냉장고에서 물건을 꺼내던 나는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냉장고를 발명한 사람은 분명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 과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음식은 순식간에 상했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가장 힘든 곳은 역시 지중해 기후 지역이었습니다. 연중 내내 온도가 식품 보존에 불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 땅의 주민들은 이 문제를 꽤나 능숙하게 해결했습니다. 증거는 하나, 그들은 굶어 죽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수프, 때로는 빵 — 비잔틴의 곡물 이야기
최근 폴란드 비잔틴 학자들의 집필 작품집(PWN 출판)을 읽다가 마치에이 코코슈카(Maciej Kokoszka)가 쓴 '콘스탄티노플의 맛'이라는 흥미로운 장을 발견했습니다. 저자의 연구를 바탕으로 고대와 중세가 교차하던 시기, 콘스탄티노플 식탁의 세계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곡물, 그리고 곡물에서 얻는 가장 대표적인 음식, 바로 일상의 빵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먹을 거리를 확보하려면 우선 농사부터 지어야 했습니다. 11세기 작품에 묘사된 포도원 노동자들 (출처: 퍼블릭 도메인)
비잔틴 시대에는 수도에 각종 곡물을 공급하는 광범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밀이었습니다. 밀알은 주방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수프였습니다. 밀알을 물에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부드러워질 때까지 삶으면, 맛은 평범하지만 영양가는 상당한 흰 죽 같은 음식이 완성되었습니다.
보리는 주로 국가의 밀 배급을 받지 못한 가난한 계층이 소비했습니다. 보리로 만든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소위 마짜(mádza)였습니다. 보리 가루에 액체와 양념을 더해 반죽한 것으로, 흉년에 대비한 비축 식량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비잔틴의 연회와 식탁 위의 빵 그릇
마짜는 덩어리 모양으로 빚어 말린 뒤, 적절한 환경의 창고에 보관했습니다. 단단했지만 오늘날의 비스킷처럼 거의 언제든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마짜로는 국물 요리도 만들 수 있었는데, 짭짤하게는 기름·소금·부추·딜을 넣고, 달게는 꿀을 곁들였습니다.
이 만능 반죽으로 빵도 구웠습니다. 마짜를 보리 가루와 함께 반죽해 납작한 떡 모양으로 빚고 화덕에 넣으면, 짜잔! 빵 완성입니다. 이제 빵에 발라 먹을 무언가가 필요하겠지요.
빨리 상하는 콜레스테롤 공급원, 버터
비잔틴 사람들에게 버터는 로마 문명 세계보다는 북방의 야만인을 연상시키는 음식이었습니다. 반면 우리에게 버터 없는 빵은 상상하기 어렵죠. 지중해에서 버터가 널리 퍼지지 못한 이유는 동맥경화 같은 질병 걱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곳 소들의 우유는 지방 함량이 너무 낮아 버터를 만들기에 부적합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담아 먹었을까? 11세기경 비잔틴 식기 (사진: Giovanni Dall'Orto)
게다가 당시에는 버터에서 우유 잔여물을 제거하는 방법이 알려지지 않아 버터는 금방 상했습니다. 소금에 절여 보존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당시 영양사들은 이런 조합을 극도로 건강에 해롭다고 여기며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의사들의 말을 존중해 빵에 버터를 바르는 일은 건너뛰되, 유제품 자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제 우유 차례입니다.
'젖소는 무엇을 줄까?' — 우유의 세계
아이들에게 흔히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젖소는 무엇을 줄까?"입니다. 물론 답은 우유죠. 앞서 지중해 기후에서의 식품 보관 문제를 언급했는데, 우유는 고온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식품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신선한 우유는 특별 배송을 받는 부유층의 식탁에 오르거나, 직접 젖소를 키우던 가난한 사람들이 짜서 바로 마셨습니다. 비잔틴의 기후 조건상 가장 흔히 마신 것은 신 우유나 유청이었는데, 유청은 당시 강력한 하제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유제품 이야기가 나온 김에, 로마 제국에서 사랑받던 치즈 '모레툼(moretum)'의 현대적 재현 (사진: Bullenwächter, CC BY-SA 3.0)
우유를 마시는 습관은 매우 보편적이었고, 금식 기간에 우유를 끊는 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은 이 희고 부드러운 액체를 제단에 바치는 예물 중 하나로 성전에 가져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비잔틴 주민들이 소 우유에만 국한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암퇘지, 염소, 양, 당나귀, 암말까지 두루 젖을 짜 마셨습니다. 우유를 마실 때는 소금을 넣거나, 와인 또는 꿀과 섞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치즈, 모든 계층의 식탁에
『콘스탄티노플, 새로운 로마』의 저자 중 한 명인 마치에이 코코슈코에 따르면, 지중해 요리에서 치즈는 기본 식품 중 하나였습니다.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치즈는 사회 모든 계층의 식탁에 올랐으며, 덕분에 신 우유가 낭비되는 일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콘스탄티노플, 새로운 로마: 초기 비잔틴 시대의 도시와 사람들』(M.J. 레슈카, T. 볼린스카 편, PWN 2011)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치즈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제공되었고, 병사들에게 배급되었으며, 심지어 친구에게 보내는 선물로도 쓰였습니다. 그 결과 치즈는 빵과 함께 먹는 필수 반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골목마다 울리는 닭 울음소리 — 달걀 이야기
비잔틴 식탁에 또 하나 등장하는 콜레스테롤 공급원이 있습니다. 가금류는 큰 공간 없이도 키울 수 있어, 콘스탄티노플의 좁은 골목길 곳곳에서 닭과 거위 등이 사육되었습니다. 그리고 닭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신선한 산물이 따르기 마련이죠.
달걀은 널리 사랑받는 식품이었고, 그중에서도 닭알이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물론 다른 가금류나 야생 조류의 알도 거리낌 없이 즐겼습니다.
당시 영양학자 중 한 명은 노른자와 흰자 모두 반숙 상태, 즉 액체가 남도록 조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납득이 잘 안 되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달걀은 단독 요리로도, 더 정교한 요리의 곁들임으로도 폭넓게 활용되었습니다.
찬물 한 그릇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물입니다. 인간 몸의 75%가 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비잔틴에서는 물을 무려 다섯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빗물, 샘물, 우물물, 강물, 호수물이 그것입니다. 이 생명의 액체는 당시 가장 많이 소비된 음료로, 귀족과 서민의 식탁 모두에, 군대와 민간인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습니다. 갓 떠서 차갑게 마시기를 좋아했지만, 특수 그릇에 데워 마시기도 했습니다.

비잔틴 스타일의 저녁 식사
비잔틴 의사들은 물의 특성을 의료 목적으로 활용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 주민들은 특히 빗물을 높이 평가했는데, 현대의 대기 오염 상황을 생각하면 다소, 아니 상당히 놀라운 선택입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비잔틴에도 물 정화 방법은 존재했습니다. 가장 자주 활용한 이는 군대였는데, 행군 중 이곳저곳에서 솟는 샘물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경사면과 구덩이 시스템, 그리고 점토의 여과 성질을 활용해 물을 정화했습니다. 인정컨대, 꽤 영리한 방법입니다.
이처럼 천 년 이상 전 콘스탄티노플 주민들의 메뉴는 오늘날 우리의 식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딱 하나, 육류 소비만 예외입니다. 지중해의 기후 조건에서 고기를 먹는 일은 때때로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같았으니까요.
냉장 설비가 없던 시절 고기는 순식간에 상했습니다. 그래서 고기는 값이 매우 비쌌고, 주로 부유층의 식탁에 올랐습니다. 가난한 계층도 고기를 접할 기회는 있었지만, 소를 잡는 것보다 젖을 짜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죠. 어쨌든, 이제 아침 식사 먹으러 가볼까요?
출처
- M.J. 레슈카, T. 볼린스카 편, 『콘스탄티노플, 새로운 로마: 초기 비잔틴 시대의 도시와 사람들』(폴란드 과학출판사 PWN,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