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진단한 1939년 폴란드 방어 전략: 국경 방어는 왜 실패했나

밤새 이어지는 고된 철수, 끊임없는 측면 위협, 그리고 가장 예상 못 한 순간에 나타나는 독일 기갑 부대. 수많은 폴란드 병사들에게 1939년 9월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까?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면서 에드바르트 시미그위 리츠 원수가 이끄는 폴란드 지휘부는 부대를 제3제국과 슬로바키아에 접한 수백 킬로미터 국경선을 따라 배치하기로 했다. 공업과 농업이 발달한 서부·북부 영토를 나치에 아무런 저항 없이 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투력을 유지하라"

그러나 이 전략은 뼈아프게 되돌아왔다. 병사들의 용맹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집중된 독일 국방군(베르마흐트)의 공격은 폴란드 방어선을 빠르게 돌파했고, 침략자들은 후퇴하는 부대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 운명을 피할 방법은 정말 없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최고의 독일 지휘관 중 한 명이자 1940년 프랑스 침공 작전의 설계자인 에리히 폰 만슈타인은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남겼다. 저서 『잃어버린 승리들(Lost Victories)』에서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폴란드 지휘부는 서방 열강의 공세가 독일로 하여금 폴란드 전선에서 주력을 철수시키도록 강제할 때까지, 군대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다해야 했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진단한 1939년 폴란드 방어 전략: 국경 방어는 왜 실패했나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는 1939년 독일의 침공에 앞서 폴란드가 세운 방어 구상 속 핵심 오류를 지적했다.

"설령 공업 지대를 잃는 것이 장기전의 패배를 의미한다 해도, 군의 전투력을 보존하는 일은 회복의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초기 단계에서 폴란드군은 비스와 강 서쪽에서, 혹은 양 측면에서 포위되어서는 안 되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 곧 '말은 쉬워도 실행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는 수적 우위에 더해 훨씬 현대적이고 기동성 높은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독일 원수가 제시한 대안은 무엇이었을까?

"1939년에 실제 그러했듯 폴란드 주력을 국경 인근에 집결시켜서는 안 되었다. 주력은 독일군의 주공 방향을 충분히 판별할 수 있을 만큼 후방으로 물러나 있어야 했고, 비교적 소수 병력으로 '회랑' 지역과 포즈난 주에서 방어하며, 실레지아에서 올 것으로 예상되는 주공격에 제대로 대응해야 했다. 무엇보다 충분히 강력한 전략 예비대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였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진단한 1939년 폴란드 방어 전략: 국경 방어는 왜 실패했나

동맹국을 기다리며

'회랑'이란 제3제국과 동프로이센 사이를 가르는 좁은 지대를 뜻한다. 폴란드에 발틱해로 통하는 출구를 열어준 땅이었기에, 그 방어는 폴란드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국경이 아니라 어디에 병력을 배치해야 했을까? 만슈타인에 따르면 유일하게 올바른 선택은 다음과 같았다.

"보브르 강–나레우 강–비스와 강–산 강 선에서 결사적 방어를 펼치되, 남쪽에서는 두나예츠 강까지 방어선을 이동할 가능성을 감안해, 최소한 비스와 강과 산 강 사이 폴란드 중부의 공업 지대라도 지켜내야 했다."

동시에 그는 지연 작전을 수행할 때 "북쪽과 남쪽 깊은 측면이 우회 포위되지 않도록" 모든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선을 크게 단축한다는 발상 자체는 매우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1939년에 독일 침략자를 이길 수 있었을까? 만슈타인은 『잃어버린 승리들』에서 환상을 버리라고 말한다. 그런 전략이 폴란드군을 "국경 지대에서 독일군의 완전한 기습"으로부터 구할 수는 있었지만, 베르마흐트의 압도적 우위 앞에서 최종 승리의 가능성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최대한 오래 버티며 동맹국이 완전 동원해 공세에 나설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그러나 폴란드가 훨씬 오래 저항했다면 서부에서 대규모 공세가 실제로 개시되었을까? 이 질문에는 여전히 답이 없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진단한 1939년 폴란드 방어 전략: 국경 방어는 왜 실패했나

만슈타인은 서방의 도움 없이는 폴란드가 베르마흐트에 승산이 없다고 확신했다.

한편 또 다른 의문도 남는다. 서부 영토를 싸움 없이 내줬다면 그 땅은 결국 합병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점령 이후 히틀러가 서방과 타협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재판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었다. 정말 그랬을까? 이제 영원히 알 길이 없다.

출처 및 참고 자료

이 글은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회고록 『잃어버린 승리들(Lost Victories)』(Bellona, 2018)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