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역사상 가장 극적인 항공 참사, 힌덴부르크호의 몰락

착륙 직전 불타오른 거대 비행선

거대한 힌덴부르크호가 착륙을 앞두고 갑자기 화염에 휩싸였을 때, 현장의 기자들은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참사 이후 비행선의 상업 운항은 오랜 세월 중단되었는데요. 대체 어떤 과정에서 이 비극이 빚어진 것일까요?

1937년, 제3제국 초대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의 이름을 딴 비행선 '힌덴부르크호'는 대륙횡단 여행의 새로운 시즌을 막 시작한 참이었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그 거대한 실루엣은 무적처럼 보였고, 소리 없이 우아하게 하늘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항공 참사, 힌덴부르크호의 몰락

화염에 휩싸인 힌덴부르크호

같은 비행선은 1년 전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에도 모습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취역 첫해에만 30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비행하며 대서양을 열일곱 번 횡단하는 등 뛰어난 성능을 입증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비행은 처참한 결말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비행선의 황금기

지금 돌아보면 믿기 어렵지만, 당시 비행선은 운송 산업은 물론 군사 분야에서도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이 거대한 기계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도 동원되었는데, 독일군은 이를 장거리 폭격기로 활용했습니다. 길이가 무려 226.5미터에 달하는 유명한 LZ-104 모델은 1톤이 넘는 폭탄을 실을 수 있었고, 기관총 4정도 탑재하고 있었습니다.

설계자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의 이름을 따 '체펠린'이라 불린 이 비행선들은 두랄루민과… 놀랍게도 동물의 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동물 장은 부피 가스를 가두는 밀폐 코팅 재료로 탁월했는데, 배 한 척을 만드는 데 약 25만 마리 소의 장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쉽게 꿰뚫릴 수 있는 재료로 만든 구조물이 격추되지 않았다는 점은 의외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체펠린이 전장에서 지닌 최대 강점, 즉 비행 고도가 작용했습니다. 연합군 전투기의 상승 한계가 3.5킬로미터 수준인 반면, 비행선은 최대 7킬로미터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설령 포탄에 명중당하더라도 비행선에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그런 고고도에는 산소 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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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첫 착륙하는 힌덴부르크호

파편 고폭탄을 활용하려는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연합군은 전투기에 위를 향한 기관총을 장착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전투기 측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전적(0승 15패)이 이 계획마저 좌초시켰습니다. 유일하게 격추된 사례는 1915년 칼레 야간 폭격 후 귀환하던 LZ-37을 추적한 영국 왕립해군 항공대 조종사 레지널드 알렉산더 존 워니포드의 습격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독일 비행선은 이미 손상된 상태로 저공 비행 중이었고, 워니포드는 그 위로 날아올라 상공에서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연합군이 화려한 승리를 거둔 것은 존 포머로이가 니트로글리세린을 충전한 특수 미사일을 소이탄과 교차 발사하는 방식을 개발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 방식은 공기 중 산소가 희박한 조건에서도 비행선 내부의 수소를 발화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1916년 9월 2일, 새로운 탄약 덕분에 드디어 독일 비행선이 격추되었는데, 조종석에는 윌리엄 리프 로빈슨 중위가 앉아 있었습니다. 이후 체펠린은 더 이상 전장에서 유효한 병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기술의 기적, 대서양 정복자—그러나 폭발성 풍선

1937년 5월 힌덴부르크호의 비극적 비행은 시작부터 평범해 보였습니다. 비행 방향과 반대로 부는 바람을 무시할 만큼 대서양 횡단은 순조로웠습니다. 이른 오후, 뉴욕 상공을 지난 비행선은 목적지인 뉴저지주 레이크허스트 기지에 접근했습니다. 기내에는 승무원 61명과 승객 36명이 탑승해 있었습니다. 문제는 착륙 단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파테 뉴스 해설자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레이크허스트에 접근하던 힌덴부르크호는 하늘을 지배하는 거인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곧 운명의 거대한 손아귀에 든 장난감에 불과함이 드러났습니다. 운명은 이 끔찍한 비극의 무대를 미리 준비해 둔 듯했습니다. 비행선은 우아하게 파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비행선은 레이크허스트 상공을 원을 그리며 맴돌았고, 비행 자세를 바로잡으려는 듯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밸러스트(고중량 물)를 버렸습니다. 밸러스트가 다시 투하될 때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긴장에 사로잡혔습니다. 그것은 매우 이례적인 광경이었으니까요.

역사상 가장 극적인 항공 참사, 힌덴부르크호의 몰락

추락 후 힌덴부르크호의 잔해

마침내 계류 로프가 내려졌습니다. 파테 뉴스 카메라맨 윌리엄 디키가 촬영한 이 장면에는 비행선의 폭발이 담겨 있습니다. 탑승자들은 불타는 지옥에서 몸을 피하기 위해 뛰어내렸습니다. 힌덴부르크호는 1분도 채 되지 않아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행선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기체에 담긴 수소가 거대한 불덩이로 변해 힌덴부르크호가 지면으로 추락하기까지는 수십 초(32초, 35초, 37초 등 보도에 따라 다양합니다)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군과 소방대가 구조에 나섰지만, 모두를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구조물에는 그을린 뼈대만 남았습니다. 기적적으로 62명—승객 23명을 포함해—이 구조되었습니다. 부상자들은 인근 레이크우드 병원으로 옮겨졌고, 상태가 허락하는 대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뉴욕 시내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추락에서 큰 부상 없이 빠져나온 승무원들은 레이크허스트 기지 장교 식당에 임시 수용되었습니다. 곧바로 추락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5월 10일 유니버설 뉴스릴은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13세의 데크 승무원 베르너 프란츠, 생존자 중 최연소인 그는 곧 교통부 조사에 응하게 됩니다. […]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최악의 항공 참사의 정확한 원인이 결코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가 결코 잊지 못할 힌덴부르크호 위에는 물음표 하나가 떠 있을 것입니다.

참사의 경위에 관해서는 여러 가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짐작할 수 있듯 그중에는 음모론, 즉 사보타주(파괴 공작)설도 있었습니다. 체펠린 비행선 제작사의 경영자 휴고 에크너는 누군가 소이탄을 사용한 저격수가 힌덴부르크호를 격추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그 이전에 협박 편지를 받은 바 있었고, 참사 소식을 접하자마자 추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비행선은 처음 알려준 것처럼 '폭발'한 것이 아니라 '불타 없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추측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즉, 누출된 가스를 정전기 방전의 불꽃이 붙였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입니다.

힌덴부르크호를 무너뜨린 것은 무엇인가

다른 전문가들은 에크너의 설명에 납득하지 않았습니다. 힌덴부르크호의 선장 막스 프루스의 견해에 따르면 원인은 반드시 사보타주여야 했습니다. 비행선은 그전에도 수없이 운항했고, 폭풍우를 뚫고도 무사히 돌아온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대 비행선의 여행은 매우 안전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레이크허스트 기지 사령관 찰스 로젠달은 아예 사보타주의 가능성을 상세히 다룬 책 『비행선은 어떻게 되는가』(1938)까지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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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에서 살아남은 힌덴부르크호 승무원들

용의자로 지목된 이들은 주로 행동이 수상하다고 알려진 독일 출신 곡예사 요제프 슈페와, 직공 에리히 슈펠이었습니다. 슈펠은 반나치 신념을 지닌 여성과 교제 중이었고, 사진 기술에 능통했으며(음모론자들에게 이는 곧 전구, 즉 잠재적 점화 장치를 다룰 줄 안다는 의미였습니다), 점화가 일어난 플랫폼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조사 당국은 슈펠이 근무하던 네 번째 가스 탱크 근처에서 도화선 잔해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슈펠 본인은 화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보타주설은 결국 기각되었습니다(히틀러가 에크너의 코끝을 세워주기 위해 직접 비행선 파괴를 명령했다는 또 다른 주장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편 정전기 방전설에는 새로운 추측들이 덧붙여졌습니다. 하나는 힌덴부르크호가 번개를 맞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엔진 고장이 발화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의 최초 연료가 무엇이었는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산소와 섞인 수소였는지, 아니면 기체 표면에 칠해진 도료였는지 말입니다.

어느 쪽이든 유니버설 뉴스릴 기자의 진술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추락의 실제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기자는 보도에서 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항공으로 대서양을 정복하려는 가장 최신의 시도였습니다. 비극이 진보를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재 속에서 지식이 태어나고, 운명에서 교훈이 나와 더 크고 더 나은 하늘 정복의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비극으로 희생된 이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참고 자료

  • 1937-05-10 Special Release - Zeppelin Explodes Scores Dead, Universal Newsreel, 1937년 5월 10일 (2020년 9월 30일 확인)
  • Hoehling, A. A., Who Destroyed The Hindenburg?, Boston, Little, Brown and Company
  • Tragedy of the Hindenburg, British Pathé, Pathé News, 1937 (2020년 9월 30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