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공산 정부는 어떻게 폴란드 국민의 저축 3분의 2를 훔쳤는가?

1940년대 말, 폴란드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서서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공산당 정권은 막 6개년 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목표는 국가 산업화를 결정적으로 가속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실행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기에 자연스럽게 질문이 제기되었다. 이 모든 돈은 대체 어디서 구할 것인가? 가장 쉬운 방법은 시민들에게서 뜯어내는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정권에게 약탈당했다고 원망하지 않도록 궁리해야 했다. 이상적으로는 도시와 농촌의 근로 대중이 도둑에게 감사까지 올린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선택된 처방은 놀랄 만큼 단순했다. 사람들이 약탈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큰 은혜를 입었다고 믿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폴란드 공산주의자들은 1950년 가을, 즈워티 화폐 개혁을 계기로 폴란드인들의 저축 3분의 2를 가져갔다.

"약탈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조치입니다"

공산 정부는 어떻게 폴란드 국민의 저축 3분의 2를 훔쳤는가?

화폐 개혁과 관련하여 10만 구 즈워티 이상의 저축을 보유한 모든 사람은 재산의 3분의 2를 잃었다. 사진은 폴란드 영화 뉴스영화(Polish Film Chronicle)의 한 장면이다.

'인민 폴란드'라 불리던 체제의 지배자들은 폴란드인들의 '선'을 걱정한다며, 이 모든 작전을 철저히 비밀리에 준비했다. 국민들에게 계획된 '현금 강탈'에 대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이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 1950년 10월 28일 토요일, 통화제도 변경에 관한 법률안이 세임 의장단에 상정되었다.

이 수수께끼 같은 명칭 뒤에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즈워티 액면가 개혁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표결은 늦은 밤에 진행되었고, 의원들은 세임 건물에서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전화 사용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특별 조치들이 놀랍지 않은 이유는, 목표가 바로 시민들에게서 당시 기준 약 7억 5천만 달러(오늘날 가치로 약 70억 달러!)를 떼어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강도질이라 불러야 마땅한 이 사기의 핵심은 구 즈워티를 신 즈워티로 '불등가' 교환한 데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물가·임금·채무·은행 및 저축 예금(단, 10만 구 즈워티까지만)은 100 대 3의 비율로 환산된 반면, 국민이 직접 소유한 현금은 100 대 1의 비율로 교환되었다.

공산 정부는 어떻게 폴란드 국민의 저축 3분의 2를 훔쳤는가?

1950년 화폐 개혁 사기를 통해 공산당 정부는 당시 기준 약 7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사진은 화폐 교환 장면을 담은 폴란드 영화 뉴스영화의 한 프레임이다.

이 금융 사기의 희생자에는 1945년 '국가 재건 보너스 대출'을 매입한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아울러 정부는 시민들이 외화와 금, 백금을 소유하는 것 자체를 금지했다.

외환 범죄에 대한 처벌도 한층 강화되었다. 외화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15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었고, 외환 거래 적발 시에는 사형이 선고될 수 있었다!

물론 공산당은 어떤 수를 써서든 이 작업 전체가 오로지 국민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려 했다. 그리하여 법안이 세임을 통과한 다음 날부터 언론과 라디오를 통한 본격적인 선전 공세가 시작되었다. 우선 새 폴란드 화폐의 가치가 금에 연동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이 새 화폐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만연한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것이라 역설했다.

그다음으로는 당연히 '계급 논리'가 등장했다. PKO에 예치되지 않은 저축은 투기와 착취의 요소만을 지닌다는 것이었다. 당시 언론은 이렇게 썼다.

화폐 개혁의 시행은 투기 분자들이 유린한 자본의 상당 부분을 박탈할 것이며, 노동 인구의 이익을 위한 시장 상황의 추가적 개선으로 반드시 이어질 것이다.

공산 정부는 어떻게 폴란드 국민의 저축 3분의 2를 훔쳤는가?

화폐 개혁을 계기로 시민들은 외화와 금, 백금을 소유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금지 위반에는 다년형 징역은 물론 사형까지 선고될 수 있었다. 사진은 PPKF 뉴스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이 '논거'는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투기꾼들은 가혹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넘겨줄 생각이 없던 금과 외화에 저축을 계속 투자했다.

동시에 당국은 화폐 개혁이 경제 상황의 추가 개선을 촉진하고 평균적인 노동자의 생활 수준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라 주장했다.

급행 열차처럼 빠른 교환, 그리고 초라한 성과

공산 정부는 어떻게 폴란드 국민의 저축 3분의 2를 훔쳤는가?

이 글의 영감은 비톨트 시엥키에비치(Witold Sienkiewicz)의 글이 담긴 앨범 『1944년 이후의 폴란드, 최신사』(Demart 출판사, 2011)에서 비롯되었다.

선전 공세와 거의 때를 같이해 구 즈워티를 새 즈워티로 바꾸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최소한의 디테일까지 준비되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 교환 작업은 겨우 일주일 남짓 지속되었다(1950년 10월 30일~11월 8일), 그리고 전국 각지에 새 화폐를 배포하는 데는 군대가 동원되었다.

그렇다면 화폐 교환이 인플레이션을 잡고 경제 상황을 개선했을까? 물론 답은 '아니오'다. 비톨트 시엥키에비치가 저서 『1944년 이후의 폴란드, 최신사』에서 지적했듯이,

[이미] 1951년에 즈워티 가치의 큰 폭락이 나타났다. 6개년 계획 시행과 관련된 국가의 막대한 재정 수요는 추가적인 화폐 발행으로 이어졌고, 그 규모는 1949년부터 1955년 사이 두 배로 불어났다. 이는 평균 19%의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했다.

보다시피,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70억 달러를 훔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