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이런 폭군! 러시아 차르는 어떻게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었을까

러시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차르가 감기에 걸리면 온 러시아가 기침을 한다." 과연 그럴 만도 했습니다. 러시아인들에게 차르는 다름 아닌 '국가적 신'이었으니까요.

중세와 근대가 교차하던 시기, 폴란드 국왕들은 러시아 차르에게 왕실 칭호가 수여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없었습니다. 합스부르크의 첩자들이 폴란드를 몰래 거쳐 모스크바로 들어가 동방의 군주에게 왕관을 전달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완전히 근거 없는 것이었습니다. 차르들은 왕관을 꿈꾼 적조차 없었습니다. 1489년 이반 3세가 합스부르크 황제 프리드리히 3세로부터 왕실 칭호 수여 제안을 받았을 때도, 그는 "나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이므로 그 어떠한 추가적인 확인도 필요하지 않다"며 이를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해 우리를 경고하는가"

이런 폭군! 러시아 차르는 어떻게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었을까

성가족과 함께 있는 니콜라이 2세 차르. 아니… 사실은 자신의 가족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당시 러시아 통치자들은 로마 황제들과 직계 혈통으로 이어져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는 그들의 혈관에 성스러운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이반 4세는 스웨덴 국왕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후손이다. 그대는 어찌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경고하는가." 이후 페트르 2세의 대관식에서도 러시아 군주와 아우구스투스 사이의 혈연 관계가 다시 한번 강조되었습니다.

권력의 신성화는 러시아를 다른 나라와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이었습니다. 차르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통치에 특별한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시간이 갈수록 발전하고 심화되어, 차르는 특별한 카리스마를 지닌 이른바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성상'이 되었습니다.

옥좌 위의 성인

차르는 '정의의 태양'이라 불렸습니다. 이는 그동안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사용되던 용어로, 예배 의전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이었습니다.

1663년 동방 총대주교들이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에게 보낸 서한에서는 차르에 대한 충성이 공식적으로 종교적 의무로 인정되었습니다. 차르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리므로, 충성스러운 백성이 아니라면 기독교인일 수 없다는 설명까지 덧붙여졌습니다.

이런 폭군! 러시아 차르는 어떻게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었을까

바실리 3세의 차르 대관식. 인물 뒤에 그려진 후광(光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차르는 점차 총대주교, 즉 교황에 필적하는 동방 교회의 수장의 권한까지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차르 알렉세이는 1646년 백성들에게 금식 준수를 명했고, 1647년에는 솔로베츠키 수도원의 수사들이 술을 소지하는 것을 금했으며, 1648년에는 모든 이교적 놀이와 미신을 근절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지상의 구원자

이런 폭군! 러시아 차르는 어떻게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었을까

차르로서의 그리스도. 아니면 그리스도처럼 포장된 차르?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차르의 호칭에 공식적으로 '성인'이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통치자는 '지상의 구원자'이자 '지상의 신'으로 불렸습니다. 차르의 초상화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차르의 생일과 대관식 날짜는 교회에서 큰 경건함으로 기념되었습니다.

서민들은 차르를 성인처럼 숭배했으며, 집 안에 성인들의 성상 곁에 차르의 초상화를 걸어두곤 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신성화는 차르들의 초상화 자체에서도 드러났는데, 그 형태가 마치 성인의 성상을 연상시켰습니다. 권력, 재판권, 결정권 등 자신의 권능을 통해 차르는 러시아인들에게 또 하나의 신이 된 것입니다.

권력의 종교적 차원은 입법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컨대 16세기에는 백성들이 차르 비판 발언을 고발해야 할 의무가 있었고, 이를 어길 경우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하나님을 모독할 수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