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전차와 보병은 보루이스코 마을에 강력하게 요새화된 독일군 진지를 공격했다. 그러나 적군은 필사적으로 진지를 사수했다. 여러 차례 실패한 공격 끝에 제1바르샤바기병여단이 전투에 투입되었다. 1945년 3월 1일, 울란(창기병)들은 폴란드군 역사상 마지막 돌격을 감행했다.
마지막 폴란드 울란들
폴란드 제1독립기병여단은 1944년 3월 말 우크라이나 트로시아니에츠에서 창설되었다. 초대 여단장은 폴란드계 러시아인인 브와디미르 라지바노비치 중령이었으며, 이듬해 2월 중순 콘스탄티 그리제프스키 중령으로 교체되었다. 1945년 2월 19일, 이 여단은 폴란드 수도를 위한 전투에 참전한 공로로 '바르샤바'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부대 인원은 약 3,500명으로, 그중 75%가 전쟁 전 폴란드 기병 연대 출신 병사들이었다. 조직상으로는 제2·제3기병연대와 지원 부대로 구성되었다. 기병들은 전쟁 전 형식의 군복을 입었고, 개인 화기는 소련제 사브르인 소위 '샤슈카'와 모신 카빈총이었다. 여단의 중장비로는 76.2mm 대전차포 20문, 37mm 대공포 6문, 82mm 박격포 24문, 그리고 대전차총과 기관총을 갖추고 있었다.

제1바르샤바독립기병여단 병사들의 대다수는 1939년 이전부터 복무를 시작한 베테랑 기병들이었다.
그러나 폴란드인들은 배정받은 말들을 그리 탐내지 않았다. 처음에 여단은 '몽골'이라 불리는 왜소한 스텝마를 공급받았는데, 특히 전쟁 전 기병 출신들에게 이 말들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말에 올라타면 다리가 지면에서 10cm나 떨어져, 나자렛에서 예루살렘까지 나귀를 타고 가던 예수님처럼 보였다." 다행히 폴란드 국내 진입 이후 연대들은 점차 더 큰 말들, 주로 트라케너 종마로 교체해 나갔다.
포메른 방벽
보루이스코 마을(독일명: 쇤펠트, 1947년부터 젠스코)은 이른바 포메른 방벽(Pommernstellung) 방어선의 일부였다. 교회 첨탑과 증류소 굴뚝이 하늘로 솟아 있는 이 작은 마을은 해당 방어선에서 가장 강력한 독일군 방어 거점 중 하나였다. 흙과 목재로 만든 야외 진지와 각 농가에 배치된 견고한 저항 거점들이 마을을 방어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근거리에서 전차에 치명적인 휴대용 대전차 유탄발사기인 판처파우스트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지형 자체도 방어에 유리했다. 마을로 통하는 접근로는 각종 함정을 설치하기에 완벽한 깊은 계곡들로 뒤덮여 있었다. 마을에는 독일 제163보병사단 소속 두 연대의 숙련된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폴란드 기병여단은 1945년 2월 말 보루이스코 인근에 도착했다. 그 전까지 이 진지는 폴란드 제1·제2보병사단 병력의 공격을 모두 격퇴시켰다.
면밀히 준비된 또 다른 공격이 1945년 3월 1일로 예정되었다. 오전 8시 30분부터 200문이 넘는 폴란드 포와 박격포가 마을의 독일군 진지 포격을 개시했고, 이후 강습 항공기가 작전에 투입되었다. 30분 후 제2보병사단 제5연대의 보병이 공격에 나섰고, 이윽고 제1전차여단의 T-34-85 전차 4대와 제13자주포연대의 SU-85 자주포 여러 문이 지원했다. 불행히도 강력하고 집중적인 기관총 사격에 폴란드군은 엎드릴 수밖에 없었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판처파우스트 사수들도 한가로지 않아 전진하던 T-34-85 2대를 파괴했다. 동시에 공격받은 인근 마을 자빈(Groß Sabin)의 함락에도 실패했다.
결정적 공격
이 패배에도 불구하고 폴란드군은 오후 3시에 재차 공격을 계획했다. 이번에는 지친 제5연대 외에 충분히 휴식을 취한 제4보병연대가 전투에 투입되기로 했다. 이들의 작전은 T-34-85 전차 14대(기계화보병 탑승)와 SU-85 자주포 5문이 지원했다. 폴란드 기병도 작전에 합류하기로 했다. 제1바르샤바기병여단에서는 180명의 창기병으로 구성된 전투 기마 집단과 76.2mm 포 1개 포대, 중기관총 및 박격포 소대가 분리 배속되었다.
집단의 지휘관은 발레리안 보그다노비치 소령이었고, 즈비그니에프 스타라크 소위와 미에치스와프 스피사츠키 소위가 두 개 스쿼드론의 지휘를 맡았다. 이는 정말로 훌륭한 편성이었다. 창기병들은 여단 최정예 병사들로 선발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즈비그니에프 스타라크 소위는 용감하고 활동적인 그루지엔츠 기병학교 졸업생이자 1939년 폴란드 전역 참전 용사였다.

제1바르샤바독립기병여단 장교들과 군견. 1945년 1월.
계획에 따르면 창기병들은 마을 외곽의 평탄하고 열린 지형을 돌격해 관건적인 시점에 전차와 보병의 작전을 지원해야 했다. 임무는 자살 행위처럼 보였고, 부여된 과업은 비합리적이었다. 심지어 1939년 9월에도 폴란드 기병들은 이런 방식으로 싸우는 경우가 드물었고, 대개 일반 보병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마지막 폴란드 울란들이 기관총으로 가득한 적진을 활짝 열린 들판에서, 전속력 질주하며, 사브르를 손에 들고 공격하라는 것이었다! 돌격의 지휘는 스타라크 소위가 맡았다.
이 추가적인 보병·전차 공격 역시 적에게 저지당했다. 보병들은 독일 기관총의 교차 사격 아래 엎드렸고, 전장은 불타는 폴란드 전차의 검고 기름진 연기로 뒤덮였다. 판처파우스트는 또다시 처참한 희생자를 냈다.
돌격
이 어려운 상황에서 울란들이 움직였다. 오후 3시 45분, 붉은 신호탄과 함께 스타라크 소위는 전쟁 전 방식의 역사적인 명령을 내렸다."창병! 사브르를 들어라!" 160~170명의 기병이 적에게 돌진했다. 전장 위의 연기는 그들의 움직임을 추가로 가려주어 독일군 진지에 근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여단 정치장교였던 스타니스와프 아르쿠셰프스키 대위는 목격한 돌격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것은 숨이 멎을 듯한 광경이었다. 말들은 미친 듯이 달려 몇 분 만에 갖가지 장애물로 가득한 2km가 넘는 공간을 돌파했다. 엔진의 굉음, 신호탄 폭발, 끊임없는 기관총 소리 사이로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다. (...) 스쿼드론들은 장애물을 뚫고 길을 막는 독일군을 베고 짓밟으며 돌파했다. 이 특별하고 번개 같은 공격에 놀라고 혼란스러워한 적들은 처음에 저항을 조직할 겨를조차 없었다. (...) 전방 초병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진지를 버린 채 건물 사이로 몸을 숨기려 했다."

포메른 방벽 전투 중 여단 병사들. 1945년 3월.
"소대들은 이제 거의 한 줄로 질주하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목이 찢어지도록 외쳤다. 우리의 맹렬한 공격 물결은 장관이었다. 우리는 걷는 보병을 추월했고, 전차를 지나쳤다. 이런 순간에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단 하나, 적에게 닿는 것뿐이다. 우리는 판처파우스트 사수들의 참호를 뛰어넘었고, 말들은 도랑을 넘었다. 몸을 내밀거나 도망치는 자는 누구든 사브르를 맞았다!" — 울란들의 선두에서 돌진했던 즈비그니에프 스타라크 소위의 회상
승리
울란들은 독일군 진지를 돌파했지만,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말들을 근처 수림에 숨긴 후, 기병들은 하마하여 마을 안의 독일군 저항 거점들을 차례로 공격했다. 기병 돌격이 만든 혼란을 틈타 보루이스코의 건물들에 접근한 폴란드 T-34-85 전차들의 효과적인 지원도 이어졌다. 약 1시간 후 적은 마을에서 완전히 축출되었다. 다음 날 아침, 제1바르샤바기병여단의 창기병들은 제2보병사단 동료들과 교대했다.

이 글은 에드바르트 코스파트-파우워프스키의 저서 『영광과 배신 – 1943~1945, 동부의 폴란드군』(Inicjał, 2010)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이 전투에서 기병 7명이 전사하고 10명이 부상당했다. 그날 폴란드군의 다른 부대들은 훨씬 큰 손실을 입었다. 140명이 전사하고 약 300명이 부상당한 것이다. 반면 적은 최대 500명이 전사했고, 폴란드군은 포로 50명을 생포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성과는 독일군 진지에 돌파구가 열려 제1폴란드군이 포메른으로 진격하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다.
제1바르샤바기병여단은 베를린 북쪽, 엘베 강에서 전쟁 행로를 마쳤다. 종전 직후 이 여단을 기반으로 더 큰 전술 단위인 제1바르샤바기병사단이 창설되었으나, 1947년 1월 이 부대는 해체되었다.
보루이스코의 영웅 즈비그니에프 스타라크는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기리고 있다. 이 용감한 기병은 바르샤바의 폴란드 승마 천년 기념비에 영원히 새겨졌다. 콧수염 기른 피아스트 전사 곁에서 사브르를 뽑아 들고 돌진하는 청동 창기병상이 바로 폴란드 기병 마지막 돌격의 지휘관이다. 1980년대 중반, 당시 대령이었던 스타라크는 이 기념비 제작자들의 모델이 되었다. 폴란드 기병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투 43곳의 이름을 새긴 청동 명판 중 하나에는 'BORUJSKO 1945'라는 문구도 함께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