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믿기 힘든 전쟁의 식탁, 점령기 폴란드 사람들이 먹었던 충격적인 음식 10가지

진정한 굶주림 앞에서는 먹을 수 없는 것이 없습니다. 점령기 폴란드의 수백만 주민이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조부모 세대는 대체 어떤 것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을까요?

전쟁이라는 극한의 현실 속에서 폴란드 사람들은 비상식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고, 손에 닿는 무엇이든 배에 넣어야 했습니다. 전쟁 중 우리 할머니들이 기적처럼 요리해 낸 기묘하고 놀라운, 때로는 역겨울 정도의 음식 열 가지를 소개합니다.

비둘기

오늘날 폴란드 도시 풍경에서 '하늘 쥐'라 불리는 비둘기를 빼놓기 어렵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에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의 운명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국물용 닭 한 마리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도시 주민들은 거리의 새들에게 탐스러운 시선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창턱에 곡식 몇 알만 뿌려두면 그만이었습니다. 1929년생 바르샤바 출신 얀 리바크의 증언처럼 말입니다.

"[…] 창문은 끈으로 고정해 두었습니다. 비둘기가 창턱에 올라서면 할머니나 어머니가 끈을 당겼습니다. 비둘기는 집 안으로 들어왔고, 이윽고 냄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믿기 힘든 전쟁의 식탁, 점령기 폴란드 사람들이 먹었던 충격적인 음식 10가지

감자마저 바닥나면, 허기는 다른 무언가로 달래야만 했습니다.

배급빵

흙투성이에, 검고, 쓰고, 부스러지는 빵. 점령기 '통밀빵'을 묘사하던 형용사들이지만, 이 빵의 실제 맛과 식감을 다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빵이라기보다는 질 나쁜 석탄 덩어리에 가까웠고, 소화기관은 이 대체품을 받아들이는 것을 격렬히 거부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항의'에서 또 다른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배속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뿜는 바람에, 배급빵 한 덩어리면 진짜 콘서트가 벌어졌으니까요.

까마귀

까마귀는 비둘기만큼 자주 잡아먹히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비둘기보다 영리해서 곡식과 창문을 이용한 방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더 교묘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역사적 호기심'의 한 독자가 그 방법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에서 주최한 전시 음식 시식회 소식 아래, 한나 여사는 새 사냥에 관한 가족의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열네 살 소년은 잊혀져 있던 공기총을 들고 나섰고, 바르샤바 마리몬트에서 저녁 식사용으로 까마귀 두 마리를 쏘아 잡았습니다.

그 시절다운 일화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사냥한 것 자체에는 조금도 화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저녁은 저녁이니, 배를 채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요.

아버지가 분노한 것은 공기총을 멋대로 사용한 점이었습니다. 독일군이 무기의 존재를 알게 되면 비참한 최후가 기다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

우리 전통에서 말은 인간의 친구로서 매일 노동을 돕고, 필요할 때는 적과의 싸움에서도 값진 공헌을 하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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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점령기에는 최근까지 애완동물이었던 것까지 포함해 모든 것이 먹혔습니다.

전쟁 중 폴란드인들은 살기 위해 고정관념을 버려야 했습니다. 말고기는 식탁의 단골손님이 되었습니다. 물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기병 전통을 따르며 애마를 접시에 올리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말고기 커틀릿을 실컷 즐겼습니다. 바르샤바 봉기 당시 말고기는 너무 귀해져서, 폴란드인과 독일인이 총알을 아끼지 않으면서 죽은 말의 사체를 두고 다투기도 했습니다.

쐐기풀

주부가 폴란드 요리에 쓰이는 정원 채소를 다 써버렸거나, 시장에 팔아 넣을 등유 값을 마련했다면, 근처에서 대체품을 찾아야 했습니다.

폴란드 여성들은 남다른 재치를 뽐내며 잡초조차 요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창의력만 있으면 쐐기풀과 명아주로 시금치 같은 나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밖에 나가 어린 순을 따 와 집에서 진짜 시금치 잎처럼 데친 뒤 마늘과 함께 먹으면 그만입니다.

실제로 필자의 가족에서는 오히려 쐐기풀 나물이 더 맛있다는 믿음이 전해집니다.

개밀

점령기에 쓰인 또 다른 잡초는 개밀입니다. 베어도, 제초제를 뿌려도 잘 죽지 않아 뿌리뽑기가 극도로 어려운 이 풀이 점령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들어갔습니다. 화단에서 성가시게 자라던 개밀은 밀가루 원료로 거듭났고, 이 가루로 평범하게 구운 빵과 떡을 만들었습니다. 일반 곡물 가루에 섞어 쓰기도 했습니다.

개와 고양이

봉기 기간 동안 수도에 비축된 식량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났습니다. 미련을 가질 여유는 없었습니다. 일반 시민도, 봉기군도 먹어야 했으니까요.

폭발로 개가 죽으면 아무도 오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남은 애완동물의 사체를 손질해 냄비에 넣었고, 국에 넣을 고기 건더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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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시금치가 없으면, 돌아오는 길에 쐐기풀 몇 줌이라도 뜯으면 그만이었습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전의 애완동물들은 사냥당하기까지 했습니다. 봉기군들이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오면, 고기의 출처를 아는 동료들이 먹는 내내 종종… 야옹거리거나 멍멍 짖곤 했습니다.

여러 해 후, 참전했던 한 여성은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양이 고기가 제일 좋았습니다. 송아지 고기 같았습니다."

타데우시 부르코모로프스키도 자신이 무슨 고기인지 모른 채 기름에 조린 고양이를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별도의 글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습니다.

도토리

제대로 가공하면 도토리는 거의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었습니다. 가루를 만들고, 커피를 만들고, 감자처럼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도토리 가루로는 빵이나 납작빵을 구울 수 있었고, 삶아 우려내면 검은 커피 한 잔을 성공적으로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도토리 커피를 정확히 어떻게 만드는지는 저희 특별 가이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직접 목구멍으로 시험해 봤습니다. TVP 기자들에게도 맛보게 해줬습니다.

믿기 힘든 전쟁의 식탁, 점령기 폴란드 사람들이 먹었던 충격적인 음식 10가지

봉기 당시에는 말 사체 한 조각도 금값을 했습니다.

클로버와 자작나무 껍질

이 두 가지 색다른 재료는 이미 제1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 여성들이 활용한 바 있습니다. 어쨌든 수확 전 시기의 시골 마을에서는 많은 주부가 갈아둔 자작나무 껍질로 빵을 구웠습니다.

회고록에서는 새 곡식이 나오기 직전에는 빵에 밀보다 자작나무가 더 많이 들어갔다는 기록까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폴란드 여성들은 즉시 오랜 위기 시절의 레시피를 다시 꺼냈습니다.

연필과 신문

빵을 보관하던 서랍이 부스러기 하나까지 깨끗이 털리고 나면, 허기는 위장을 긁는 불쾌한 감각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이들은 단 한순간이라도 배부른 느낌을 받기 위해 무엇이든 했습니다.

점령기 폴란드 아이들은 신문을 먹기도 했습니다(처음에는 잉크가 묻지 않은 부분, 나중에는 잉크가 묻은 부분까지).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보구미우 야누시 주라프스키의 회상입니다.

"우리는 연필도 갉아먹었습니다. 나무 조각이 입안에 한동안 남아 있었으니까요. 그저 입을 움직이고, 입안에 뭔가 들어 있다는 즐거움만으로도 만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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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저자가 『주방에서 본 점령기』를 집필하며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주방에서 본 점령기』는 불법 돼지 도축이 아우슈비츠행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연립주 마당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쓴 커피 찌꺼기가 암시장에서 거래되던 시대를 생생하게 그린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1939~1945년의 오리지널 레시피와 실용적인 요령이 가득한 놀라운 요리책이기도 합니다.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