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을 차갑게 식히고, 주방에는 파티 음식이 가득하고, 모두가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연말 풍경. 그러나 점령지 폴란드에서는 이런 장면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였습니다. 독일 점령 당국은 새해 전야조차 폴란드인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1939년 9월의 폴란드 침공 이후, 그들은 무려 '새해 축하' 자체를 금지해 버렸습니다.
전쟁 전 도시들에서는 진짜 샴페인이 흐르는 새해 전야 파티와 카니발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 신나게 놀았고, 각 직업 집단들은 자신들만의 송년회를 열어 화제를 모으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애도에 잠겨 있고 점령자들이 가혹한 제한이라는 찬물을 끼얹는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새해를 축하할 수 있었을까요?
금지된 새해 전야
크라쿠프 시 행정관은 SS 및 경찰 부대 지휘관의 지원을 받아 거의 모든 것을 금지했습니다. 12월 31일부터 1월 1일까지 이어지는 통행금지는 저녁 10시에 시작되었고, 자정에 이웃에게 새해 인사를 나누는 경우에도 단 한 건의 예외도 없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개인·공공 장소를 불문한 모든 무도회와 춤 행사가 금지되었습니다. 술 판매 역시 엄격하게 통제되었습니다.
총독부(일반정부) 관할 전역에서는 새해 전야 저녁 8시부터 현지 주민에 대한 술 판매와 배포가 완전히 금지되었습니다. 물론 독일인들은 불꽃놀이를 비롯해 새해를 알리는 모든 형태의 축하 행위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거리에서 독일군의 총탄에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데, 어찌 축하할 수 있겠습니까?
그해 12월 마지막 날 폴란드 가정에 감돌던 분위기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즐거움을 원했지만, 머릿속 한구석에는 언제나 거리의 총성과 대량 학살 소식이 울리고 있었습니다. 이후 몇 해가 지나도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애도의 기운 속에서…
7개월 뒤 바르샤바 봉기에서 간호사로 활약하게 되는 한나 부스팅게르보지츠카(Hanna Wustinger-Wodzicka)는 1943년의 새해 전야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분위기는 극도로 긴장되어 있었다. 거리 처형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노약자와 정신적으로 여린 이들에게는 자유에 대한 희망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분위기가 좀 풀리기를 바라며 우리는 새해 전야 모임을 열기로 했다. 레코드에 맞춰 춤을 추었지만, 크게 신나지는 못했다."
"어떤 이들은 브리지를 두었고, 어떤 이들은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자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정이 되자 불꽃 대신 피아노로 최대 음량으로 연주되는 '도브로프스키의 마주레크', 곧 폴란드 국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놀랍게도 누군가 독일인에게 고발하지 않았는지, 게슈타포는 결국 문을 두드리지 않았습니다.
밀주에 담긴 '평범함'에 대한 그리움
호화롭게 차려진 식탁에서 벌이는 클래식한 축하는 꿈도 꾸기 어려웠습니다. 예전에는 빠질 수 없던 샴페인은 이제 사치품이 되었습니다. 물론 검은시장에서 다른 고급 주류와 마찬가지로 비싼 값을 치르면 구할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유한 사기꾼과 협박범, 협력자들을 위한 상품이었습니다. 평범한 폴란드 가정에서는 점령지에서 몰래 만들어진 밀주가 그나마 '그럴듯한 술'의 대용품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치 선전용 엽서. 평범한 사람들이 참혹한 현실에 지쳐 무너져 가는 동안, 제3제국은 성탄절을 호화롭게 축하했습니다.
1931년 소스노비에츠(Sosnowiec)에서 태어난 마치에이 도브지츠키(Maciej Dobrzycki)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우리 동네는 밀주로 유명했다. 이미 우리 집에서 만든 밀주는 최고 브랜드였다. 세입자였던 J씨는 이 분야의 챔피언이라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밀주만 있으면 뭐든 '구할' 수 있었고, 덕분에 가난이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다."
지하 저항군 병사들도 소속을 불문하고 술자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국내군(아르미아 크라요바)이든 인민위대든 명절은 술과 함께 보냈습니다. 숨어 지내야 했던 바르샤바 봉기 참전 용사 얀 M. 야쿠바셰크(Jan M. Jakubaszek)는 생애 마지막 성탄절을 친구들과 함께 직접 만든 밀주로 보냈습니다.
새해를 맞이할 때도 같은 밀주를 잔에 따랐음은 두맙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회고록 『전쟁의 마지막 해』에서 그 제조법마저 공개했습니다.
"거친 방법이지만 결과는 좋았다. 우리는 세 개의 그릇을 사용했다. 첫 번째는 발효 원액을 담아 불 바로 위에 올려두고, 두 번째는 알코올을 받는 그릇, 세 번째는 알코올이 응결되는 차가운 물을 담은 그릇이었다."
책 소개
이 글은 알레산드라 자프루트코야니차(Aleksandra Zaprutko-Janicka)가 책 『주방에서 본 점령기』("Okupacja od Kuchni")를 집필하며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주방에서 본 점령기』는 몰래 돼지를 잡으면 아우슈비츠로 끌려갈 수 있었던 시대, 다세대 주택 마당에서 채소를 재배하던 시대, 쓰다 남은 커피 찌꺼기가 검은시장에서 거래되던 시대를 생생하게 그린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1939~1945년의 오리지널 레시피와 실용적인 생존 요령이 가득한 놀라운 요리책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