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죽어도 값진 새해 전야? 19세기 폴란드인들의 기이하고 위험한 연말 풍습

흑마법, 악마의 장난, 심지어 죽은 자들의 귀환까지. 이것이 새해 전야 전통이 자리 잡기 전, 조상들이 즐기던 방식이었다. 믿기지 않는가? 19세기 폴란드에서 한 해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직접 확인해보자. 단, 이 유희에 목숨을 치르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기 바란다.

대부분의 19세기 폴란드인들은 서로 비슷한 방식으로 새해 전야를 보냈다. 해질녘에 예배에 참석한 뒤 캐롤을 입에 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크리스마스 이브 만찬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엄숙한 저녁 식사를 마칠 때까지 앉아 있었다. 그러나 저녁의 나머지 시간은 종교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늙은이인가, 혼혈아인가?

처녀들은 가장 큰 방에 모여 성 안드레아 축일 때처럼 점과 주술을 시작했다. 그릇이나 양동이에 물을 붓고 그 위에 호두 껍데기를 띄웠는데, 작은 배들이 서로 다가오면 그 처녀는 곧 결혼할 독신남을 만난다는 징조였다.

죽어도 값진 새해 전야? 19세기 폴란드인들의 기이하고 위험한 연말 풍습

한 해의 마지막 밤은 여러 면에서 성 안드레아 축일과 닮았다. 헨리크 시미라츠키의 그림 <성 안드레아의 밤>(1867, 퍼블릭 도메인).

자정이 되면 처녀들은 집을 나와 울타리로 달려갔다. 각자 말뚝 하나를 잡고 재빨리 초가지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잡아온 것을 살펴 미래의 남편이 어떤 사람일지 점쳤다. 키가 큰 남자, 작은 남자, 반듯한 남자, 굽은 남자, 마른 남자, 뚱뚱한 남자… 만약 썩은 나무 조각을 건졌다면 늙은 남자를 만날 운명이라는 뜻이었다.

노처녀들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자 얼지 않은 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얼음장 같은 물에 손을 담그고 바닥까지 뻗은 뒤, 집에 돌아와 손에 쥔 것을 확인했다. 자갈의 개수가 짝수면 곧 시집갈 징조였고, 홀수라면 한 해를 더 혼자 살아야 했다. 만약 살아 있는 벌레를 잡았다면, 다음 새해 전야가 오기 전에 임신해 사생아를 낳아 자신과 가족에게 망신을 안긴다는 불길한 의미였다.

신발 던져 미래를 본다

신발을 던져 점을 보는 풍습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젊은 여성들은 문을 등지고 앉아 신발을 어깨 너머로 던졌다. 신발이 문 쪽을 향하거나 거꾸로 떨어지면 그 처녀는 곧 결혼하기 위해 집을 떠날 것이라 믿었다.

남성들은 반대로 왼쪽 신발을 오른쪽 발에 신은 채 잠들었다. 이 특별한 밤에 꾸는 꿈은 가까운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시간 여행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남성 청년들이 술을 피하지 않았던 터라, 세상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광경까지도 꿈에 나타나곤 했다.

죽어도 값진 새해 전야? 19세기 폴란드인들의 기이하고 위험한 연말 풍습

왼쪽 신발. 새해 전야에는 … 오른쪽 발에 딱 맞았다(사진: Janek Pfeifer, CC BY-SA 3.0).

눈을 잃을까, 목숨을 잃을까?

다른 가족들은 밀랍이나 납을 녹여 점을 쳤다. 뜨거운 액체를 얼음물이 담긴 그릇에 부어 응고된 형태로 미래를 읽어내는 방식이었다. 너무 쉽게 끝나지 않도록, 반드시 정해진 방식대로 진행해야 했다.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은 사람은 머리 위에 물그릇을 올려야 했고, 녹인 액체를 붓는 사람은 특정한 모양이나 형상을 의도하지 않도록 눈을 감고 부어야 했다.

그 결과 끔찍한 사고와 고통스러운 화상, 심지어 실명이나 눈을 잃는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많은 처녀들이 이런 유희 탓에 아름다움을 잃었고, 흉퉁한 얼굴이 된 이상 예언된 밝은 미래도 급히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교회 성가집이나 성경을 펼쳐 점을 보는 주술도 있었다. 감은 눈으로 책을 펼친 뒤 왼쪽 또는 오른쪽 페이지의 몇 번째 구절을 읽을지 정하고, 이후의 일은 전부 운명에 맡겼다.

때로는 이렇게 얻은 예언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다른 때는 불행한 사람에게 창백한 공포를 안겼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 중에는 구약성서나 요한계시록의 구절을 읽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는 이도 적지 않았다.

돼지개인가, 고양이개인가?

집안의 어른들 역시 시골 마법에 푹 빠져 있었다. 짚 위에 놓인 마구리에 계란을 넣지 않은 특별한 반죽을 펴서 가축 모양의 인형을 빚고, 노릇노릇 황금빛이 돌 때까지 구웠다. 이 따뜻한 과자를 동물들에게 주어 잘 숨을 수 있게 했다. 일부 인형은 남겨두었다가 한 해 동안 아픈 가축에게 모든 병을 고치는 기적의 치료제로 주었다.

죽어도 값진 새해 전야? 19세기 폴란드인들의 기이하고 위험한 연말 풍습

과자를 조금만 잘못 빚어도 마당에는 괴물이 태어난다. 바츨라 할라르의 17세기 중반 판화에 나온 바실리스크(퍼블릭 도메인).

그러나 소에게 돼지 인형을, 닭에게 말 인형을 주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 이런 실수는 기형적인 새끼나 두 종이 섞인 미지의 잡종이 태어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온 농장에 나쁜 저주가 내린다고 믿었다.

마구리 밑에 깔았던 짚은 마법의 모자처럼 머리에 쓰였다. 이런 차림으로 사람들은 사다리를 거꾸로 올라 집 지붕에 오른 뒤 굴뚝을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하면 가까운 장래에 저승 사자가 찾아올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마리아 지우우코프스카(Maria Ziółkowska)에 따르면, 마주리아 지방 비엘바르크에서 한 용감한 대장장이가 굴뚝을 들여다보다 자기 얼굴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지붕에서 내려온 직후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양귀비 씨앗을 먹는 전통 역시 저승과 연결되어 있었다. 양귀비에는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힘이 숨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잠은 부분적인 죽음으로 여겨졌지만, 살아 있는 세계로 되돌아올 수는 있었다. 양귀비 씨앗은 죽은 자의 나라에서 온 보이지 않는 손님을 위한 음식이기도 했다.

죽어도 값진 새해 전야? 19세기 폴란드인들의 기이하고 위험한 연말 풍습

굴뚝에 올라타라… 그리고 죽어라. 새해 전야의 고전 코스 중 하나다(사진: vindicator, CC BY 2.0).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라

자정이 가까워지자 청년들이 집 앞에 나타나 시끄러운 볼거리를 시작했다. 청년들은 서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서서 채찍을 팔랑팔랑 휘날렸다. 집주인들은 그들의 놀라운 기량에 감사의 뜻으로 보드카를 대접하며 새해에 대한 축복을 전했다. 청년들이 이렇게 농작물의 풍년과 수확량을 보장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희는 채찍의 마지막 소리와 함께 끝나지 않았다. 주인들이 잠자리에 들면 청년들은 새해 전야 특유의 장난과 못된 짓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마을 문은 몰래 마을 밖으로 옮겨졌고, 가축은 이웃 농장으로 몰려갔으며, 심지어 수레가 통째로 집 지붕 위에 올려지기도 했다.

새벽에 이런 광경을 마주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씩 웃음을 터뜨렸지만, 곧바로 상당한 골칫거리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장난은 상상하기 힘든 손실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집주인이 초가지붕을 처음부터 다시 얹어야 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