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교과서가 말하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세계사 교과서라면 어떤 것이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심지어 날짜까지 명시하죠. 바로 1492년 10월 12일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사실은 과연 역사적 진실일까요?
'성공에는 아버지가 많고 실패는 고아'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에 관해서도 이 말이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신대륙 도착의 영광은 이미 고대 이집트인, 페니키아인, 템플 기사단, 심지어 아일랜드 수도사들에게까지 돌려진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흥미롭기는 하지만 너무 억측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최초의 유럽인 정착민, 바이킹
그러나 바이킹의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실제로 그들은 오늘날 캐나다와 미국 동해안 지역까지 도달했습니다. 이 시기의 핵심 정보원인 사가(북유럽 영웅 서사시)에 따르면 대략 서기 1000년경의 일입니다. 비야르니 헤를욀프손과 라이프 에릭손이 아메리카 발견자의 영예를 다투는 유력한 후보들입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이들은 신대륙에 자체 정착지까지 세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전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유는 지도만 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이킹 항로'로 아메리카에 가려면 먼저 아이슬란드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것 자체가 어렵고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이후 그린란드로 건너가고, 그린란드에서 배핀섬으로, 마지막으로 배핀섬에서 래브라도로 이동해야 하죠. 분명히 말하자면, 이곳들은 세계에서 가장 따뜻한 지역이 아닙니다.

라이프 에릭손은 아메리카 발견자 후보 중 가장 유력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게다가 뛰어난 조선 기술에도 불구하고 바이킹의 배는 장거리 항해에 완벽히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갑판이 트여 있었고, 이후의 범선들보다 적재 용량도 훨씬 작았습니다. 이런 배로 차갑고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정착지가 결국 소멸되고 북유럽 항해사들의 업적이 잊혀진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콜럼버스는 실제로 무엇을 발견했나?
그렇다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두 번째로' 발견했다고 해야 할까요? 문제는 이것조차 완전히 사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의 항해 경로를 살펴보면 답이 나옵니다. 그가 처음 목격한 육지는 바하마 제도의 한 섬이었습니다. 어느 섬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산살바도르(또는 워틀링섬)로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사마나케이설이 유력합니다. 이후 그는 쿠바로 향했고, 나중에는 히스파니올라(아이티)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에서 기함 산타마리아호를 잃으면서 콜럼버스는 스페인으로 귀환하기로 결정합니다. 눈치채셨겠지만, 그는 끝내 아메리카 본토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첫 항해의 성공 덕분에 빠르게 준비된 두 번째 원정에서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1493년 9월 2일, 17척의 배가 카디스항을 출발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오늘날 기준으로도 꽤 훌륭한) 기록적인 속도인 단 20일 만에 스페인 선단은 카리브해에 도달했습니다. 이번에 처음 상륙한 섬은 도미니카였고, 이후 소앤틸리스 제도의 다른 섬들도 차례로 발견되었습니다.
두 번째 원정에서 콜럼버스는 푸에르토리코, 쿠바(여전히 반도로 믿으며), 히스파니올라, 자메이카 연안을 탐사했습니다. 마침내 1496년 3월, 그는 유럽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고, 귀국 후에는 새 영토 통치 과정에서의 학대 혐의로 고발당했습니다. 거의 3년에 달하는 항해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대륙에 발을 딛지 못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 항해사가 아메리카 대륙의 땅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혐의를 해결한 뒤 떠난 세 번째 항해에서였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항로를 선택했고, 덕분에 1498년 8월 5일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파리아반도에 상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이미 선점의 영광을 차지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누군가 그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던 것입니다.

사진: 퍼블릭 도메인. 콜럼버스는 '인도'를 향한 원정에 세 번 스페인을 떠났습니다.
1497년 6월, 콜럼버스보다 1년여 먼저 존 카봇이 북아메리카 해안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영국 국왕을 섬긴 베네치아 출신 항해사였습니다. 이 업적은 확증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최초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진정한 신대륙 발견자 후보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브리스틀의 상인 로버트 손과 휴 엘리엇 등은 1494년에 이미 뉴펀들랜드 해안에 도달했다고 전해집니다. 더크 피닝, 한스 포트호르스트, 주앙 바즈 코르테레알이 이끈 덴마크-포르투갈 원정대는 무려 1472년, 그보다 더 일찍 도달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두아르트 파셰코 페레이라는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 체결 이전에 브라질을 발견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대륙에 대한 정보가 포르투갈이 조약 협상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얻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업적 중 어느 것도 확실하게 입증된 바는 없습니다.
성공의 비밀, 마케팅과 운
어쨌든 분명한 사실 하나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달한 최초의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가 발견자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을까요? 답은 탁월한 마케팅과 약간의 운입니다.
이 인기 항해사가 원정에서 돌아올 때마다 유럽은 큰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이국적인 새, 과일, 조개껍데기, 심지어 신대륙 주민들을 데려올 정도로 유럽에 화제를 몰고 왔습니다. 그의 이야기와 '전시품'들은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바다 건너로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았습니다. 특히 발견자 본인이 카리브해를 모든 부가 넘치는 땅으로 선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보고가 언제나 현실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지만… 듣기에는 참 좋은 이야기였죠.

콜럼버스의 원정대가 돌아올 때마다 스페인은 큰 환희에 사로잡혔습니다.
콜럼버스에게 행운이었던 또 하나의 요소는, 스페인이 그의 발견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국가였다는 점입니다. 1492년 그라나다 함락 이후 강화된 정치적 안정과 유리한 지리적 위치가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15세기 말 스페인은 새로운 땅을 효과적으로 개척할 인재, 충분한 자원, 필요한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요소가 스페인의 아메리카 급속 팽창을 결정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이 콜럼버스의 원정이었기에, 그는 신대륙의 발견자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그를 앞지른 다른 항해사들은 물론, 수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에 알래스카와 아시아를 연결하던 육교를 건넌 선사시대의 수렵채집인들마저 잊혀져 갔습니다. 사실 그들이야말로 역사 교과서에 신대륙 최초의 정착민으로 기록되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