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수많은 규칙을 무너뜨립니다. 종교가 정한 음식 금기도 예외가 아닙니다. 폴란드의 역사 속에는 돼지고기가 유대인의 금지 식품 목록에서 사라졌던 시기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나치 점령하의 바르샤바 동물원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배급표로 보는 점령하 바르샤바의 굶주림
점령된 바르샤바의 하루 식량 배급 목록만 들여다봐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것입니다. 정상적인 식사를 기대할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독일인들뿐이었습니다. 그들의 하루 배급량은 2,613칼로리였습니다. 반면 스스로 생계를 꾸리지 못하면 폴란드인과 유대인은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고, 실제 배정된 식량은 각각 669칼로리와 184칼로리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교의 코셔(정결) 음식 규정이 빠르게 사실상 무효화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동물원 부지에 세워진 비밀 양돈장
종교적 음식 제한의 철폐는 곧 유대인이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였습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베이컨 한 조각은 금보다 귀했고, 문자 그대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게토에 갇힌 친구들을 돕고 싶었던 바르샤바 동물원장 얀 자빈스키(Jan Żabiński)는 아내 안토니나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냈습니다.
게토의 모든 사람이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남자, 여자, 노인, 아이 모두 예외가 없었습니다.
코끼리나 하마, 들소의 남은 부위를 먹는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면 안심해도 좋습니다. '귀중한' 동물들은 나치에 우호적이었던 베를린 동물원장 루츠 헤크(Lutz Heck)에 의해 이미 독일로 옮겨져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자빈스키 가족은 넓은 동물원 부지를 최대한 활용해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이앤 애커먼(Diane Ackerman)의 책 『아질(Azyl): 바르샤바 동물원에 숨겨진 유대인 이야기』에 소개된 이 계획은 놀랄 만큼 단순하고도 완벽했습니다.
국내군 중위였던 얀은 점령 당국이 동물원 시설의 관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이롭다고 판단하도록 만드는 공식적인 위장 명분을 고안해냈습니다. 독일군은 거대한 군대를 먹여야 했고 돼지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자빈스키는 루츠 헤크에게 전직 동물원 부지에 대규모 양돈장을 설립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혹독한 환경에서 돼지를 키우려면 낡아가는 건물과 부지를 관리해야 하고, 이는 전 직원 가운데 일부라도 다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얀은 돼지 사료로 쓸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한다는 핑계를 삼아 '비밀 메시지와 베이컨, 버터를 전달하고 지인들의 부탁을 처리'할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얀 자빈스키의 이야기는 다이앤 애커먼의 저서 『아질』에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게토로 전해진 특별한 소포
천재적인 동물원장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부부는 여전히 동물원 시설을 관리할 수 있었고, 직원들과의 연락을 끊지 않았으며, 나아가 굶주리는 사람들까지 구할 수 있었습니다.
양돈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첫 돼지들은 첫 전쟁 겨울이 끝날 무렵 덴마크에서 운송되었고, 이미 1940년 3월에는 비육장이 본격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돼지들은 전쟁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최선의 먹이, 즉 식당과 구내식당, 병원에서 나온 음식물 찌꺼기로 사육되었습니다.
유대인 지원 활동에서 얀 자빈스키는 아내 안토니나(사진에서 남편 뒤 오른쪽)의 든든한 조력을 받았습니다.
성과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 나타났습니다. 여름에는 수백 마리의 돼지 새끼가 태어났고, 덕분에 독일인들뿐 아니라 자빈스키 가족과 담벼락 반대편 게토에 남겨진 친구들까지 먹을 것이 충분해졌습니다. 애커먼은 이 장면을 책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게토의 친구들을 위한 소포를 주방 식탁에서 포장하던 안토니나는, 얀이 양돈장의 쓰레기 수거를 나설 때마다 아무도 그의 주머니나 양동이를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양돈장의 사료를 게토로 가져가는 역설에 그는 어쩐지 재미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유대인에게 돼지고기를 나누는 일이 다소 불경하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코셔 음식 규정은 이미 한참 전에 폐지된 상태였고, 모두는 그 드물고 귀한 단백질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었습니다(...).
이렇게 동물원을 위장한 양돈장은 단순한 식량 공급처를 넘어, 자빈스키 부부가 게토의 유대인들을 비밀리에 피신시키는 통로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들은 수백 명의 목숨을 구했으며, 그 공헌을 인정받아 얀과 안토니나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열방의 의인(Righteous Among the Nations)' 칭호를 받았습니다.
출처
- Diane Ackerman, 『아질(Azyl): 바르샤바 동물원에 숨겨진 유대인 이야기』,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