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 비소(살균), 수은... 이것은 독극물 목록이 아니라, 옛날 미인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물질들의 명단입니다. 이들은 돈과 시간, 편안함을 잃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건강, 나아가 생명마저 바쳤습니다. 아름다움과 영원한 청춘을 좇기 위해 과연 무엇까지 견뎌야 했을까요?
"아름다움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오래된 속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희생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는 말해주지 않죠. 오늘날에도 완벽한 피부, 늘씬한 몸매, 젊은 외모에 대한 꿈은 종종 상식을 이깁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시술들은 과거 여성들이 견뎌야 했던 것들에 비하면 온화한 편입니다. 당시 여성들은 자신도 모르게, 혹은 개의치 않고 매일 수많은 위험한 물질을 사용했습니다. 대체 무엇으로 스스로를 중독시켰던 걸까요?
납으로 만든 완벽한 피부
납은 화장품 역사에서 길고 '악명 높은' 궤적을 남겼습니다. 눈을 아몬드형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사용하던 검은 아이라이너 일종인 콜(kohl)의 성분이기도 했지만, 주된 용도는 피부를 하얗게 미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고대 이집트인과 로마인이 이렇게 했습니다. 흠 없는 얼굴을 유지하기 위해 '세루사이트(cerusite)' 혹은 '베네치아 화이트'라고 불리는 강독성 백색 안료를 발랐죠. 메이크업 전문가 리사 엘드리지(Lisa Eldridge)는 저서 『페이스페인트: 메이크업의 역사』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순수한 납 함량 덕분에 매트한 마감과 새틴 같은 결을 내는 베네치아 세루사이트는 가장 탐나는 화이트 파운데이션이 되었습니다.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던 유럽 귀족들이 특히 애용했습니다. 문제는 세루사이트를 많이 쓸수록, 그 불쾌한 부작용을 가리기 위해 더 많이 발라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장기간 사용하면 피부 변색이 일어나 안색은 회색빛으로 어두워지고 생기를 잃어 노란색, 녹색, 보라색 기운으로 변하며, 결국 얼굴이 마른 오래된 과일처럼 보이게 됩니다. 지속적인 사용은 충치, 입 냄새, 탈모, 심하면 폐의 영구적인 손상까지 초래했습니다.

니논 드 랑클로.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은 화장품은 주근깨를 제거한다고 알려졌다. (사진: 퍼블릭 도메인)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를 필두로 한 르네상스의 미인들은 유해한 화장품에 열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납 화장은 이들 사이에서 치명적인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죠. 납 화장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의 부작용은 눈에 띄게 드러났음에도, 이런 제품들은 대중에게 빠르게 팔려나갔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니논 드 랑클로의 블룸(Bloom of Ninon de L'Enclos)" 같은 제품이 시장을 넘쳤습니다. 주근깨와 흉터를 없애고 얼굴, 목선, 손 피부를 비상하게 하얗고 매끄럽게 만든다고 선전되었죠. 이 유명한 제품은 17세기 궁정 미녀 안나 '니논' 드 랑클로의 이름을 따 지어졌으며, 그녀의 처방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전해집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본인도 즐겨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제품의 인기는 19세기 내내, 특히 귀족과 예술가 사이에서 이어졌습니다.
비소 목욕
완벽하게 매끄럽고 하얀 피부를 '보장'하는 또 다른 신기한 제품은 바로... 비소였습니다. 극도로 독성이 강한 이 물질은 적혈구를 파괴했습니다. 원하는 창백한 피부를 주긴 했지만, 사용 자체가 치명적이었죠. 17세기 줄리아 토파나(Giulia Tofana)는 이 위협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이용했습니다. 그녀는 팔레르모, 나폴리, 로마 사람들에게 놀라운 비소 분말을 팔아 큰 재산을 모았습니다. 제품 이름은 '아쿠아 토파나(Aqua Tofana)'. 제작자 본인은 자신이 독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600명이 넘는 희생자, 그중 여섯 명은 자신의 남편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이 이탈리아 사업가는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복용용 비소 제품이 미국 시장을 뒤흔든 것은 20세기 전후였습니다. 대개 "로즈 박사의 프랑스 비소 미백 정(Dr Rose's French Arsenic Complexion Wafers)"이나 "맥켄지 박사의 개량형 무해 비소 미백 정(Dr. McKenzie's Improved Harmless Arsenic Complexion Wafers)"처럼 존재하지도 않는 의사의 이름을 내걸었죠. 사람들은 이를 무해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제조업체들에 따르면 피부를 빛나고 탄력 있고 매끄럽게 만들어준다고 했으니까요.
그러나 비소를 장기간 섭취하면 전반적인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금방 드러났습니다. 신경계와 신장 손상, 탈모, 출혈, 실명, '비소 각화증'이라 불리는 피부병, 백반증 등이 그 결과였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대가는 컸습니다. 미국 언론에는 비소 섭취로 실명한 인디애나폴리스의 젊은 숙녀에 대한 이야기도 실렸습니다. 1911년에는 세인트루이스의 18세 소녀 힐데가드 월튼이 '기적의' 제품 몇 상자를 먹고 사망했습니다.
비소를 미용에 사용하는 관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배우이자 작가였던 롤라 몽테즈(Lola Montez)는 저서 『미의 기술(The Arts of Beauty)』에서 비소 농도가 높은 물에 정기적으로 목욕하던 체코 여성들을 소개했습니다. 이런 목욕이 "피부에 투명한 흰빛을 더해준다"고 했지만, 동시에 대가가 크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들은 평생 비소 온천에 몸을 담가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 다가온다"고요.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 '키르케'. 줄리아 토파나의 초상으로 잘못 알려지곤 한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수은의 은은한 광채
수은은 이미 르네상스 화장품에서 인기 있는 성분이었습니다. 과산화벤조일이 발명되기 전에는 여드름 흔적과 색소침착을 없애는 데 쓰였습니다. 매독 치료에도 사용되어, '비너스와의 하룻밤이 평생의 수은의 포옹으로 돌아온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죠. 게다가 극독성 물질인 안티머니(안티모니)와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 신경과민, 기분 변화, 탈모와 치아 상실, 두통, 불면증 등이 뒤따랐습니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여성들은 수은 없이는 못 살았습니다. 하얗게 미백한 얼굴 위에 진한 색소를 겹겹이 발랐죠. 진사(신홍)라고 불린 황화수은은 수 세기 동안 안료로 사용되었습니다. 독성 수은은 두꺼운 납 화장층을 뚫고 들어가 혈류로 스며들어 색소침착이나 피부 박리를 일으켰고, 그럴 때마다 또 한 겹의 화장으로 덮어야 했습니다.
이탈리아 여성들도 비슷한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리사 엘드리지는 저서 『페이스페인트: 메이크업의 역사』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당대 베네치아의 미인들, 패션계의 거장이었던 프랑스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 역시 수은(색소침착과 주근깨를 옅게 하는 믿을 만한 성분)과 비소, 그리고 약간의 사향을 섞은 혼합물을 사용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향과 그 성분은 색소 저하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화장품에 돈을 많이 쓸수록 오히려 더 못생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비범한 정치적 직관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미백 화장에 대한 집착 앞에서는 그 직관이 명백히 실패했다. (사진: 퍼블릭 도메인)
대가는 컸지만 당대의 미인들은 이를 개의치 않았습니다. 수은 화장품의 은은한 광택이 젊음, 순수함, 빛나는 피부라는 원하는 효과를 주어줬으니까요.
광채 피부를 위한 라듐 팩
1898년 마리와 피에르 퀴리가 라듐을 발견하면서 미인들을 위한 새로운 '유혹'이 등장했습니다. 사업심이 강한 상인들은 곧 방사성 원소의 완전히 새로운 용도를 내놓았습니다. "라듐 에너지 안에는 청춘과 아름다움이 솟아나는 샘이 있다!" — 1918년 라디오(Radior) 화장품의 광고문은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1930년대에는 프랑스에서 토-라디오(Tho-Radia) 브랜드가 설립되었습니다. 브랜드명은 두 방사성 화합물, 즉 염화토륨과 브롬화라듐에서 따왔습니다. 제조업체는 여성들에게 탄력 있는 피부, 슬림한 몸매, 모든 피부 트러블 제거, 노화 징후의 지연, 신선하고 젊은 안색을 약속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화장품이 계속 쏟아져 나왔습니다. 1920년대에는 방사성 점토를 팩 형태로 만든 제품이 인기를 끌었는데, 케몰라이트(Kemolite) 브랜드 등이 판매했습니다.

1920~30년대 방사성 원소 기반 제품은 필수템(must-have)이었다. 크림부터 치약까지 화장품 전반을 망라했다. 흥미롭게도 활성 물질은 유아용품, 초콜릿, 콘돔, 담배에서도 발견될 수 있었다. 훗날 연구에서야 '빛나는' 안색이 때로 구토, 빈혈, 내부 출혈, 암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매끈한 피부에는 고통이 필요했다
여성들은 원치 않는 체모를 빠르고 쉽게 제거할 방법을 찾다가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것은 바로... 탈륨이었습니다. 1861년에 발견된 이 고독성 독극물은 처음에 성병, 곰팡이 감염, 이질, 결핵에 완벽한 치료제로 여겨졌습니다. 탈모제로 쓸 생각은 두피 곰팡이 치료제가 탈모를 일으킨다는 점이 발견되면서 떠올랐죠.
이 크림은 코렘루(Koremlu) 브랜드로 미국 시장에 출시되었습니다. 이미 1930년대에 이 제품의 유해성을 둘러싼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불행히도 당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 제품을 의약품으로 분류하지 않아 정부가 손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 시기 더 충격적인 사건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한 아이가 이 살인적인 제품을 바른 빵을 먹고 사망했고, 생산자를 상대로 한 민사 소송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습니다. 허사였습니다. 제조업체는 파산 선언으로 '자신을 구했습니다'. 결국 빠르고 쉬운 수익을 기대했던 사업가들은 탈륨의 사용이 쥐약으로만 한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아니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창백한 말』 속 살인범처럼, 살인 도구로 쓰거나 말이죠.

라디오(Radior)는 '방사성 광채'를 더해준다고 알려진 인기 제품이었다. 1918년 광고. (사진: 퍼블릭 도메인)
여성들에게는 이보다 덜 위험하지 않은 또 다른 제모법도 선택지로 주어졌습니다. 20세기 초에 발견된 X선을 이용한 제모 시술과 함께 습진, 여드름 치료가 제안되었던 것입니다.
절박했던 어떤 여성들은 몇 시간씩 X선에 몸을 노출시키기도 했습니다. 물론 털은 빠졌습니다. 하지만 보너스로 모세혈관이 터지고, 피부에 물집과 두꺼운 굳은살이 생겼습니다. 후자는 종종 당시에는 치료가 불가능한 종양으로 발전했습니다. 손해배상 청구가 이어지면서 이 짭짤한 사업도 결국 인기를 잃었습니다.
아름다움을 향한 질주
그렇다면 오늘날의 화장품 트렌드는 50년, 100년, 300년 전과 그렇게 다를까요? 완벽한 몸매, 젊고 매끈한 피부,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가진 모델들의 이미지가 광고로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하는 오늘날, 답은 '아니다'인 듯합니다. 이상을 좇는 여성들은 오늘날 자신의 피부에 신경독을 주입합니다. 안색을 밝히고, 주름을 없애고, 불필요한 털을 제거하기 위해 레이저를 이용한 고통스러운 시술도 참아냅니다.
바디 케어나 네일 케어 제품에 들어 있는 포름알데히드처럼 발암물질이면서 강한 독성을 지닌 화장품을 피부나 머리에 바르기도 합니다. 중금속을 화장품에서 제거하기 위한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합니다. 인기 브랜드의 립스틱에서는 납이, 마스카라에서는 수은이 검출되곤 합니다. 그럼에도 안전하다는 제조업체의 말을 우리는 믿어야 할까요?
참고 문헌
- Rajiv Shah, Kelly E. Taylor, Concealing Danger: How the Regulation of Cosmetics in the United States Puts Consumers at Risk, Fordham Environmental Law Review, Vol. 23, No. 1/2011.
- Aleksandra Zaprutko-Janicka, Beauty without preservatives, Znak Horyzont 2016.
- Agnieszka Bukowczan-Rzeszut, Barbara Faron, Seven deaths. How died in the olden ages, Astra 2017.
- Lisa Eldridge, Facepaint. Make-up history, trans. B. Zandman, Znak Horyzont 2017.
- Lola Montez, The Arts of Beauty; Or, Secrets of a Lady's Toilet, Dick & Fitzgerald 1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