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는 문화 전반에서 폭넓게 활용되는 캐릭터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뱀파이어의 모습은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드라큘라가 뱀파이어 가문의 시조는 아니었다. 그 조상은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려워하던 곳, 즉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찾을 수 있다.
뱀파이어를 정의하자면, 비참하게 죽은 사람의 망령이거나 살아 되살아나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시체라고 할 수 있다. 뱀파이어로의 변신은 환생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죽은 자의 영혼이 새로운 육체에 들어가거나 기존의 몸으로 변모하여 정체성과 자율성을 유지한 채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도 뱀파이어가 된 자들은 요절한 자들의 불안한 영혼으로 여겨졌다. 플라톤은 그들의 영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 것, 저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 무덤과 묘지 주변을 떠돌며 혼 같은 그림자와 환영처럼 배회한다고들 한다. [...] 그곳을 떠도는 것은 용감한 사람들의 영혼이 아니라 악한 자들의 영혼으로, 첫 삶의 악행을 참회하기 위해 그런 곳을 방황해야만 하는 것이다."
피에 굶주린 미녀들
고대 문화에서 뱀파이어는 인간을 유혹해 잡아먹는 여성 악마로 그려졌다. 이들은 지하세계와 마법의 여신 헤카테의 권속이었으며, 엠푸사, 라미아, 스트리가, 서큐버스로 알려져 있었다. 이들의 임무는 남자를 유혹해 희생자의 피와 살점을 빨아먹고, 보호자 없이 방치된 아이들을 죽이거나 납치 또는 잡아먹는 것이었다.
고대의 뱀파이어들은 지하세계와 마법의 여신 헤카테의 권속이었다.
갈림길의 삼면상 헤카테.
이들 모두 밤의 악마와 연관된 존재로 변신하는 능력을 지녔다. 이러한 변신 능력을 고려하면 신화 속 세이렌 역시 뱀파이어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이미 이 여인새들은 선원들을 파멸로 유인하고 자신들의 섬에서 그들의 뼈를 주워 모았다.
걸어 다니는 시체
2세기 로마 역사가 트랄레스의 플레곤이 남긴 유명한 이야기도 있다. 그는 요절한 소녀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무덤에서 일어난 소녀는 밤마다 부모 집에 살던 청년을 찾아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소녀의 가족은 숨어서 그녀를 기다렸다가 포옹으로 맞이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소녀는 슬프도록 그들의 호기심이 잔인하다고 지적하며 이제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 뒤 쓰러져 죽었다. 다음 날 가족이 무덤을 열었을 때,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보호 마법
고대인들은 되살아난 시체와의 싸움에서 홀로 방치되지 않았다. 고대 로마에는 뱀파이어 퇴치를 전담하는 사제단이 있었고, 라미아와 스트리고이에게 노출될 수 있는 장소에 시신을 두는 것을 금지하는 법전도 존재했다.
고대의 뱀파이어는 희생자를 유혹해 죽이기 위해 아름다운 여인으로 그려졌다.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 『라미아』(1909)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뱀파이어와의 싸움에서 사람들에게는 문, 경첩, 건강의 여신 카르나가 힘을 보탰다. 스트리가가 집안 아기들을 공격하는 것은 딸기나무 열매가 달리는 관목인 아르부투스 잎으로 문설주를 세 번 두드리고, 특별히 준비한 물로 문지방에 물을 뿌리고, 태어난 지 두 달 된 올빼미의 생내장을 바치며 특별한 기도를 함으로써 막을 수 있었다.
"밤의 새들이여, 아이들의 내장을 거두어 가소서. 작은 아이에게서 작은 제물이 옵니다."
"부디 마음에는 마음을, 내장에는 내장을 받아 주소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이 목숨을 바칩니다."
이처럼 산 자로 돌아온 시체에 대한 두려움은 고대인의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놀랍게도 2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그리는 뱀파이어의 모습은 고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참고 문헌
- E. Petoia, 『Vampires and Werewolves. Sources, history, legends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 day』, Kraków 2004.
- N. Suckling, 『Wampiry』, Warszawa 2010.
- W. Warde Fowler, 『The Roman Festivals of the period of the Republic.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the religion of the Romans』, Port Washington, N.Y./London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