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 그림, 거리 해프닝, 그리고 권력에 대한 풍자 — 이것이 그가 공산주의 체제와 싸우던 방식이었다. 그는 스스로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의 계획경제가 없었다면, 세계도 예술도 메이저도 이런 수준으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데마르 '메이저' 피드리흐는 대체 누구인가?
브로츠와프 요새의 사령관
1980년대 폴란드는 파업과 시위, 노조 '솔리다르노시치', 또 한 번의 경제 위기, 그리고 마침내 원탁회담의 시대였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일부는 거리에서 충돌했고, 또 다른 이들은 야권의 대안 운동을 만들어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브로츠와프 신문화 운동에서 탄생해 폴란드 각 대도시로 확산된 학생 해프닝 운동, '주황색 대안(Orange Alternative)'이다.
이 운동을 이끈 사람은 역사학도 출신의 발데마르 '메이저' 피드리흐로, 다채롭고 논란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저항의 수단으로 유머를 활용하는 방식을 매우 일찍부터 사용했다. 군 징집 위원회에 소환되었을 때 소령(major) 제복을 입고 나타나 복무에 대한 열정을 과장되게 연기한 끝에 정신 이상자로 판정받아 결국 입대를 거부당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이때 그는 '브로츠와프 요새 사령관'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후 주황색 대안의 모든 활동 역시 풍부한 상상력과 유머로 일관되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난쟁이는 이미 세상에 있다
계엄 기간 메이저와 그의 운동이 벌인 가장 유명한 활동 중 하나는, 경찰이 반공 구호를 덧칠한 자리마다 벽에 난쟁이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이었다. 점점 더 많이 등장하는 난쟁이들은 주민들 사이에서 수많은 추측과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곧 일종의 암호가 되었으며 이윽고 주황색 대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메이저는 난쟁이를 그린 죄로 두 차례 체포되었다. 체포 중 한 번은 선언문을 내놓으며 자신의 예술을 '변증법적 회화'라 명명했다. "테제는 글씨요, 안티테제는 얼룩이며, 난쟁이는 그 종합이다." 그는 스스로를 마르크스와 헤겔의 가장 위대한 후계자라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피드리흐는 대중이 자발적으로 따라 나서는 더 큰 사회적 호응을 기대했다. 대중이 그의 뒤를 따르지 않는 상황에 '속상해진' 그는 여권 발급 사무소에 자메이카행 여행 허가를 신청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물론 답장은 오지 않았다.
브로츠와프 스몰루호프스키 22번지 건물 벽에 그려진 난쟁이. 발데마르 '메이저' 피드리흐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CC BY-SA 3.0)
늦게 도착한 화장지와 생리대
주황색 대안 회원들은 가장 사소하고 터무니없는 이유로 체포되는 것을 오히려 목표로 삼았다. "왜 난쟁이들의 불법 집회에 참석했습니까?"라고 묻는 경찰관을 어떻게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는가? 피드리흐는 서방 세계에 국내 상황을 알리는 데에는 반체제 인사들이 저술한 어떤 책이나 논문보다도, 인민폴란드에서 화장지나 생리대(그토록 구하기 어려운 물품!)를 나눠주다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훨씬 강력하다고 믿었다.
실제로 1988년 여성의 날을 맞아 거리에서 생리대를 나눠주다 '즉석'에서 두 달간 구금된 피드리흐 사건은 국제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영화감독 안제이 바이다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그의 석방을 위해 적극 개입했다.
유머의 칼날은 여전히 날카롭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발데마르 '메이저' 피드리흐는 23건의 해프닝을 주최하거나 공동 주최했다. 그중 가장 큰 규모는 1988년의 '난쟁이 혁명'으로, 당국이 주최한 애견 쇼 참가자들마저 자발적으로 합류했다. 행렬의 선두에는 커다란 용 분장을 한 남자가 서 있었고, 군중은 "야루젤스키, 바벨의 용!"을 외쳤다. 이 행렬이 유제프 피니오르의 집 앞을 지나간 것이 당국이 그를 석방하기로 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며칠 뒤 석방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위장의 날', '민병대의 날', '10월 혁명' 등 그 밖의 활동도 이어졌다. 이렇게 한 무리의 젊은이들은 비민주적 체제에서 권력의 가장 강력한 도구였던 공포를 마침내 극복해냈다. 발데마르 피드리흐는 1990년 이후에도 해프닝 활동을 계속했다.
발데마르 피드리흐, 우치 2009 (CC BY 3.0)
* 사회주의 초현실주의 활동가들이 조롱적으로 활용한 카를 마르크스의 명제로, 신문화 운동과 주황색 대안의 활동 이념적 기반이 된다.
참고 문헌
- Waldemar "Major" Fydrych, Lives of Orange Men, Orange Alternative, 2001.
- 공동 저술, Orange Alternative – A Happening into Communism, International Cultural Center,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