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섞여 나오는 기침 소리, 그리고 특별히 제작된 열차로나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쌓여가는 시신들. '스페인 독감'이라 불리던 그 전설적인 역병은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떻게 퍼져나갔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국채 시장과는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요?
이 유행병은 사실상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인구의 약 30%가 감염되었으며, 14세기 흑사병 이후 처음으로 벌어진 팬데믹이었습니다. 스페인 독감은 매우 참혹한 대가를 치렀는데, 무려 1차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특수한 유형의 독감은 빠르게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바이러스의 발원지를 스페인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이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단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국가들이 언론 보도를 철저히 검열했기 때문입니다. 중립국이었던 스페인만이 검열을 하지 않았고, 스페인 언론은 팬데믹에 대해 자유롭게 보도했습니다. 민심과 지친 병사들의 사기가 꺾일 염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병의 근원지는 결코 거기서 찾을 수 없습니다.
바이러스의 잠재적 발생지는 세 곳으로 꼽힙니다. 미국 캔자스주 해스켈군(Haskell County), 프랑스, 그리고 중국입니다.
미국 중부에서 최초의 공식 경고가 나왔습니다. 지방 의사 로링 마이너(Loring Miner)는 하루 만에 18명이 원인 불명의 질병에 걸리고 그중 3명이 사망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스페인 독감이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카운티를 방문했던 군인들은 곧 군기지로 복귀했고, 바이러스는 밀집된 기지 안에서 훨씬 빠르게 번졌습니다.
두 번째 가능성은 프랑스입니다. 영국의 바이러스학자 존 옥스포드(John Oxford)는 1916년 프랑스 남부의 영국군 기지에서 독감 집단 발생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당시 환자 관리 모습
세 번째 후보는 중국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유럽에서 역병이 만연하기 몇 달 전, "독감과 비슷한 기이한 유행병"이 중국에서 발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정확히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바이러스가 두 차례의 파동으로 막대한 피해를 낸 것은 분명합니다. 첫 번째 파동은 비교적 온건했지만, 두 번째 파동은 극도로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죽어가던 병사들
역병은 전선의 병사들 사이에서 훨씬 빠르게 퍼졌습니다. 흥미롭게도 감염자 수 자체는 병사와 민간인이 비슷했지만, 병사들의 사망률은 훨씬 높았습니다. 원인은 환자들을 치료하던 비좁은 공간이었습니다. 감염자들은 걸어 놓은 천으로만 격리되어 있었고, 바이러스에게는 이차 감염을 일으키기에 완벽한 조건이었습니다.
두 번째 파동의 초기 보고가 나온 캠프 드번스(Camp Devens)에서는 처음에 하루 90명의 환자가 진료소를 찾았습니다. 이후 그 숫자는 500명까지 치솟았고, 한때 수용 인원 1,200명짜리 진료소에 6,000명이 넘는 환자가 몰렸습니다. 한 위생병은 바이러스의 확산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우리는 그것과 함께 먹고, 그것 속에서 살고, 그것과 함께 자고 꿈을 꿉니다. 하루 16시간 동안 그걸 마시고 숨 쉬는 건 말할 것도 없죠."
사망자가 너무 많아 한 병영은 급히 영안실로 용도가 바뀌었고, 시신들은 특별 열차로 실려 나갔습니다. 위생병의 증언에 따르면 시신들은 끔찍하게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나라의 군복을 입은 젊고 건장한 수백 명의 남성들이 열 명 이상씩 무리 지어 진료소로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침상이 전부 채워질 때까지 눕혀졌고, 그 사이에도 새로운 환자들이 계속 밀려 들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곧 푸른빛으로 변했고, 끔찍하게 기침하며 피를 토해냈습니다. 아침이 되면 시신들은 장작처럼 영안실에 쌓여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군 기지에서도 역병의 양상은 비슷했습니다. 몇 건의 감염이 수백, 수천 명으로 번져갔고, 5~6주 후 역병은 갑자기 잦아들었습니다.
채권 시장과 바이러스
1918년 봄, 뉴욕은 전쟁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국채 '자유 채권(Liberty Bonds)'의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프로모션에는 배우 더글러스 페어뱅크스(Douglas Fairbanks) 같은 유명 인사들이 군중을 끌어모으는 화려한 퍼레이드가 동반되었습니다. 9월에는 필라델피아에 약 10만 명의 노동자와 애국 시민들이 운집했습니다. 제러미 브라운(Jeremy Brown)은 저서 『플루: 100년의 싸움』에서 이렇게 씁니다.
"사람들이 더 잘 보려고 목을 빼며 움직이는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겼습니다. 자유 행진은 무엇보다 먼저 바이러스를 풀어놓았습니다."
퍼레이드가 끝난 지 단 이틀 만에 1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습니다. 교회, 극장, 학교가 문을 닫았고, 길거리 침 뱉기조차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도시의 유일한 영안실은 겨우 30구 조금 넘는 시신만 수용할 수 있었고, 수백 구의 시신이 금세 몰려들었습니다.
"남아 있는 관 하나하나마다 시신 열 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악취가 사방에 가득했습니다. 지역 목공들은 평소 일을 내려놓고 종일 관만 만들었고, 일부 장의사들은 요금을 600% 이상 올렸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벌어진 일은 미국 전역에서 반복되었습니다. 바이러스는 결국 사실상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출처 및 참고 자료
이 글은 짧고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다룬 자료로, 다음 저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제러미 브라운, 『플루: 100년의 싸움』,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출판부,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