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하룻밤에 천금이 오가던 여인들, 르네상스 이탈리아를 빛낸 전설의 쿠르티자나 3인

지식인, 부유한 여인, 예술가들의 뮤즈 — '밤의 여왕'이라 불린 그녀들. 키스 한 번에 천금이 오갔고,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지금부터 르네상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세 명의 쿠르티자나를 만나보겠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매춘업은 논란의 대상이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르네상스 시대에는 성매매가 큰 금기가 아니었고, 교양 있고 영향력 있는 쿠르티자나들은 최상류 사회를 누비며 어마어마한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1409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로마에는 열두 명의 주민당 쿠르티자나 한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문화와 예술이 절정에 달했던 이 시대, 이 여성들은 '교제'에서 얻을 수 있는 많은 이익을 위해 교양과 예절을 갈고닦았습니다. 그중 가장 세련되고 우아한 이들, 즉 코르티지아네 오네스테(cortigiane oneste), 이른바 '명예로운 쿠르티자나'는 왕공족과 교회 고위 인사들의 연인이 되었고 예술가들의 뮤즈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부유하고 독립적이었으며, 자신의 저택에서 애호가들을 직접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툴리아 다라고나(Tullia d'Aragona) – 추기경의 딸

르네상스의 뛰어난 쿠르티자나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가 바로 툴리아입니다. 예술가이자 시인, 철학자였던 그녀는 미모와 영향력을 겸비한 쿠르티자나와 추기경 로도비코 다라고나(Lodovico d'Aragona)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추기경은 딸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성씨를 물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까지 시켜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배려했습니다. 툴리아는 음악, 노래, 무용을 배웠고 외국어도 익혔습니다.

아버지가 로마를 떠난 뒤(그는 보르자 가문이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녀의 처지는 어려워졌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여러 곳을 떠돌았지만,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춤과 노래로 사람들을 매료시킨 그녀는 클레오파트라에 비유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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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토 다 브레시아, 『살로메로서의 툴리아 다라고나』

아름답고 재능 있는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미쳐갔습니다. 구애를 거절당한 애호가 한 명은 질투심에 단검으로 그녀의 가슴을 찌르기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상처는 치명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평생 질투와 싸워야 했는데, 그중에는 그녀의 미모와 성공을 질투하는 다른 쿠르티자나들의 시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툴리아는 이탈리아 화가 모레토 다 브레시아(Moretto da Brescia)의 붓빛으로 초상화에 남겨졌습니다.

베로니카 프랑코(Veronica Franco) – 시인이자 지식인

아마도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 쿠르티자나는 베로니카 프랑코일 것입니다. 뛰어난 지식인이었던 그녀는 언어와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지녔습니다.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기에, 그녀는 직업이 주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그녀는 기꺼이 남성들의 문화와 학문의 세계에 뛰어들었고, 배우는 것을 갈망하며 무지를 경멸했습니다. 그녀는 한 애호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 사랑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여기는 모든 이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학문을 공부한다는 것을 당신도 알 것입니다. (...) 운명이 허락했다면, 나는 진정한 아카데미의 평화롭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베로니카는 또한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만토바 공작 굴리엘모 곤차가에게 바친 시집 『테르체 리메(Terze rime)』와 수많은 소네트를 남겼습니다. 문학 작품에서 여성의 주제를 자주 다루었으며, 다른 쿠르티자나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돕는 활동에도 힘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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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프랑코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쿠르티자나 중 한 명입니다

그녀의 몸값은 상당했습니다. 유명 쿠르티자나의 키스 한 번에 값은 크라운 4~5개(하녀가 여섯 달 동안 벌어야 하는 돈이었습니다)였고, '전체 거래'의 값은 크라운 50개에 달했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후대에도 영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마거릿 로젠탈의 책 『정직한 쿠르티자나(The Honest Courtesan)』와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위험한 아름다움(Dangerous Beauty)』에서 그녀의 삶이 조명되었습니다.

임페리아 코냐티(Imperia Cognati) – 라파엘로의 뮤즈

비아조 팔라이(Biagio Pallai)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신 마르스는 로마인들에게 제국을 주었고, 여신 비너스는 '임페리아'를 주었다." 임페리아 코냐티는 르네상스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부유한 쿠르티자나 중 한 명입니다. 그녀의 애호가 서클에는 교황청 관리, 추기경, 예술가 등 로마 엘리트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임페리아는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습니다. 독일인 애호가는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크라운 100개를 지불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애호가들을 맞이하던 웅장하고 아름다운 저택의 주인이기도 했습니다. 일화에 따르면, 스페인 출신 손님이 화려한 저택 안에서 침을 뱉을 만큼 흉한 장소를 한참 찾아 헤맸는데, 유일하게 발견한 곳은 하인의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친구 서클에는 라파엘로 산치오 본인이 있었고, 라파엘로는 그녀의 모습을 여러 차례 그림에 담았습니다. 『파르나소스』에 그려진 사포(Sappho)와 『갈라테아의 개선』 속 인물이 그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사도 궁전 벽화의 칼리오페(Calliope) 역시 그녀로 여겨집니다. 또한 라파엘로 또는 그의 제자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누워 있는 비너스로 묘사된 임페리아의 초상화도 남아 있습니다.

하룻밤에 천금이 오가던 여인들, 르네상스 이탈리아를 빛낸 전설의 쿠르티자나 3인

임페리아 코냐티, 『갈라테아의 개선』 속 모습

그녀의 죽음의 정황은 미스터리에 싸여 있습니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자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당시 나이는 26세에서 31세 사이로 추산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재산 중 상당한 금액을 로마의 스트라다 델 포폴로 거리를 포장하는 데 썼습니다. 이곳은 그보다 형편이 좋지 못한 '동료들'이 몸을 팔던 거리였습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연인들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영감을 주었습니다. 베네치아 여행기를 남긴 영국 여행가 토머스 코리앳(Thomas Coryat)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 사랑의 요정 칼립소들의 매력은 무한하여, 그 명성은 가장 먼 기독교 국가들에서까지 수많은 이들을 베네치아로 불러모았습니다. 그들의 궁전 중 하나에 들어서면 (...) 마치 비너스의 낙원에 들어선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 쿠르티자나는 여왕이자 사랑의 여신처럼 화려하게 차려입고 나타나, 마치 파포스, 크니도스, 키테라—비너스 여신의 옛 거처—에서 방금 도착한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녀의 얼굴은 아름다움의 정수로 장식되어 있으니 (...)"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이탈리아의 쿠르티자나들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누릴 수 없는 발전의 발판을 스스로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유명 쿠르티자나들의 시대는 막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교황 비오 5세가 이들을 근절하기 위한 결연한 투쟁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시간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1. Nickie Roberts, 『역사 속의 매춘부: 서구 사회의 성매매』(Whores in History), Alfa 출판사, 1997
  2. Monica Garcia Massaque, 『창관의 역사: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유흥업소』, Bellona, 2009
  3. K. 흘렌도프스키, 『로마, 르네상스의 사람들』, Book and Knowledge 출판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