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는 여러 명의 아내를 두었다. 그러나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아내들이 아니라 그의 연인, 오레스티스 출신 파우사니아스였다. 왜일까?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암살 사건을 저지른 인물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파우사니아스는 필리포스의 호위 병사였다. 뛰어난 미모로 군주의 관심을 끌었지만, 정열적인 왕은 금방 질려 새로운 총애인을 찾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역시 같은 이름 '파우사니아스'를 가진 인물이었다. 어쩌면 필리포스는 이 이름에 특별한 애착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레스티스 출신의 병사는 조용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경쟁자를 집요하게 괴롭혀 상대가 자살 충동까지 느낄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

여러 아내를 두었던 필리포스 2세는 결국 연인의 손에 죽음을 맞았다. 사진은 아이가이 경기 대회에서 파우사니아스가 왕에게 검을 휘두르는 장면이다. 이 범죄가 일어난 이유를 우리는 과연 알고 있을까?
새로운 총애인은 왕에게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적어도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은 없다. 대신 친구인 아탈로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탈로스는 마케도니아의 유력한 장군이자 필리포스의 아내 중 한 명의 숙부였다. 친구는 당장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그 불행한 청년이 전투에서 전사하자, 아탈로스는 그의 말을 떠올렸다. 젊은이 스스로 명예로운 죽음을 찾았으며, 그 원흉은 오레스티스의 파우사니아스라고 확신한 것이다.
나귀 몰이꾼들에게 성폭행당하다
이 이야기가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의 시나리오 같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여기서 아탈로스는 잔혹한 복수자로 변신한다. 기원전 344년 어느 저녁, 그는 오레스티스의 파우사니아스를 잔치에 초대했다. 그곳에서 그를 일부러 술에 취하게 한 뒤 공개적으로 성폭행했고, 이후 청년을 나귀 몰이꾼들에게 넘겨 똑같이 잔혹하게 다루게 했다.

필리포스 2세는 아르게아스 왕조의 출신이었다. 그는 마케도니아 군대를 혁신적으로 개편했을 뿐만 아니라, 연이은 군사적 승리를 통해 국토를 크게 확장한 인물이었다. 그의 유산은 아들 알렉산더 대왕에게 계승되었다.
성폭행과 구타를 당한 불행한 남자는 필리포스에게 호소했다. 자신에게 성관계를 강요하고 모욕한 사람들을 처벌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주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성폭행을 주도한 아탈로스가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왕은 그를 소원해지고 싶지 않았고, 특히 원정을 포함한 먼 군사적·정치적 계획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오레스티스의 파우사니아스 자신도 결코 성인(聖人)은 아니었다. 그는 앞서 경쟁자를 자살로 몰아넣은 전력이 있었다. 결국 필리포스는 이 문제를 조용히 덮어버렸다. 자신의 총애인이 되려면 어느 정도의 희생과 강한 멘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년에 걸친 복수의 준비
그러나 파우사니아스는 포기하는 법을 모르는 인물이었다. 그는 복수를 계획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아탈로스가 아니라 마케도니아 왕 자신이었다. 암살 계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그를 지원했다고 전해진다.
디오도로스 시쿨루스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파우사니아스는 학식 있는 소피스트 헤르모크라테스에게 영감을 받았다. 그는 위대한 인물을 '제거'하기만 해도 명성을 얻을 수 있으며, 역사는 희생자와 물론 그의 살해자 모두를 기억할 것이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필리포스의 전처 올림피아스도 '전 남편'에 대한 분노로 이 음모에 한몫 보탰다고 한다. 그리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본인도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의 적절한 구절을 인용하며 파우사니아스에게 복수를 부추겼다는 설까지 있다.
복수는 성폭행 몇 년 후에 실현되었다.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가 자신의 부와 페르시아 원정 계획으로 모두를 압도하려 했던 아이가이 경기 대회에서였다. 여전히 왕실 호위병 신분이었기에 왕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었던 파우사니아스는 갑자기 왕에게 달려들어 검으로 그를 찔렀다가 곧바로 도주했다.
여러 마케도니아인들이 범인을 추격해 창으로 찔러 죽였다. 산 채로 붙잡아 단독 범행인지 공범이 있는지 자백을 받아낼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이 순간 진실은 영원히 묻히게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아버지의 목숨과 관련된 음모에 연루되었는가? 필리포스 2세 암살 직후 파우사니아스가 즉각 살해되면서 이 질문에 답할 길은 막혔다. 왕의 총애인이 이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만든 배후가 누구인지, 우리는 추측할 수밖에 없다.
필리포스는 세상을 떠났고, 알렉산드로스가 뒤를 이었다. 조사 결과 파우사니아스의 행적이 입증되었고, 그의 공범으로 지목된 몇몇이 처형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완전히 부차적인 인물들이었다. 필리포스의 제국 침공을 두려워한 페르시아가 파우사니아스의 배후라는 설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왕의 죽음으로 권력의 길이 열린 가장 가까운 친족들 속에서 암살의 배후를 찾으려 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맺음말
이 글은 저자가 최신 저서 『수치의 시대: 고대의 섹슈얼리티와 에로티시즘』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