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우리 증조할머니들이 상상했던 일들, 수세기에 걸친 성혁명의 역사

중세에는 낯선 사람과 나체로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며 삶은 훨씬 더 금욕적으로 변했는데, 수많은 매음굴이 없었다면 빅토리아 시대가 어떤 모습이었겠습니까?

오늘날 호텔 방에서 낯선 이와 나체로 한 침대를 쓴다면 에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겠지만, 중세에는 이것이 아주 흔한 일상이었습니다. 당시의 예절 교본들은 이런 상황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방법까지 가르쳤습니다.

"만약 밤이든 다른 때든,
당신보다 지위 높은 이와 함께 눕게 된다면,
그가 원하는 침대 쪽을 양보하라.
[...] 그리고 침대에 누웠을 때 예법은
몸을 곧게 펴고 팔다리를 제자리에 두는 것이다.
마음껏 대화하되 매일 밤 잘 자라고 인사하라.
이것이 큰 예의임을 알아야 한다."

수치심의 시대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도래하면서, 낯선 이와 함께 보내는 밤에 몸을 가리지 않던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명한 네덜란드 철학자 에라스무스는 1530년에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옷을 벗거나 일어설 때는 부끄러움을 기억하고, 관습과 자연이 숨기기를 원하는 것을 남의 눈에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하라."

"동료와 침대를 함께 쓸 때는 가만히 누워 좌우로 뒤척이지 말라. 몸이 노출되고 이불을 걷어 상대를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증조할머니들이 상상했던 일들, 수세기에 걸친 성혁명의 역사

한스 홀바인 더 영거의 그림에 담긴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17~18세기에는 사회 규범이 적절한 행동에 대해 더 많은 제약을 가했습니다.

"이성과 같은 방에서 자는 것은 몹시 잘못된 일이다. 형편상 어쩔 수 없다면 침대를 따로 마련해 수치가 뒤섞임으로 인해 상하지 않도록 하라. 오직 극심한 가난만이 이런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

"동성과 침대를 함께 써야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럴 때는 엄격하고 경계하는 절제로 행동해야 한다..."

중세 및 그 이전 시대와 비교해 행동 기준이 이렇게 엄격해진 것은, 문명이 발전하고 사회가 진보하면서 신체적 공격의 위협이 사회적 압력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특정 사회 규범을 넘어서는 행동을 한 사람에게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생겨났습니다.

프랑스 성혁명

18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많은 이들이 잊고 있는 중대한 성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국민의회는 1791년 헌법에 조항을 추가해 결혼이 종교 규정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민법상 계약의 형태를 갖추도록 했습니다. 1792년 법은 프랑스 국민에게 이혼권을 보장했으며, 동거와 사생아의 재산 상속 문제도 체계화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남편은 아내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21세에 이른 청년들은 부모의 허락 없이 스스로 결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증조할머니들이 상상했던 일들, 수세기에 걸친 성혁명의 역사

더 뉴 스웰스 나이트 가이드 - 남자들과 매춘부, 런던 1847

프랑스 성혁명으로 인해 계약에 의한 결혼은 가부장적 제도의 형태가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동반자 관계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여성에게 그토록 중요한 변화가 '가정'이라는 영역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여성들은 시민권 혁명을 아직 기다려야 했습니다. 한편 이혼권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크게 제한되었고, 부르봉 왕가가 왕좌를 되찾으면서 완전히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여성의 비합리성

빅토리아 시대는 여성에게 일종의 속박을 안겼습니다. '아름다운 성(性)'의 구성원들은 공적인 삶에 참여하거나 심지어 중요한 가족사 결정을 내리기에는 너무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 결과 남편은 자녀를 돌보거나 아내의 소유물을 처분할 수 있었고, 심지어 별다른 절차 없이 여성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 증조할머니들이 상상했던 일들, 수세기에 걸친 성혁명의 역사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매춘부』

줄 미셸레가 지적했듯, 당시 여성에게는 전혀 다른 임무가 주어져 있었습니다.

"저녁에 [남자는] 지쳐서 돌아온다. 괴로워하고 우울하며, 덜 인간적으로 되어 있다. 집에서 그는 무한한 선의를 발견하고, 그토록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 하루 종일 겪어온 잔혹한 현실을 의심할 만큼 위로받는다... 이것이 여성의 사명이다(출산 이상으로): 남자의 마음을 강하게 해주는 것."

남편은 자신의 감수성 있고 공감 능력 뛰어난 아내를 무자비한 노동 시장과 거친 외부 세계로부터 보호했다. 그 대가로 여성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평온하고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요구에 응하는 섹스

직업 생활과 공적 삶에 참여하지 못한 결과, 여성들은 상당한 여가 시간을 갖게 되었고 꿈의 세계로 마음껏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가정주부들은 감동적인 소설을 읽으며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사건과 감정이 가득한 세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성들은 해방과 성적 모험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는데, 성적 욕구를 가질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남성뿐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성적 끌림을 느껴서는 안 되며, 남편이 원할 때마다 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의무였다. 남편은 자녀들의 어머니와 실제 에로틱한 욕망을 나눌 필요가 없었기에, 그것을 매춘부나 하녀와 실현했습니다.

'실용적 여성'과의 섹스는 더욱 정당화되었는데, 당시에는 자위행위가 남성에게 나태함, 소화 장애, 실명, 결핵 등 수많은 건강상 합병증을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의 합리화

19세기는 현대 심리학의 시작을 알린 시기였습니다.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의 노력 덕분에 인간의 감정과 욕동을 과학적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규범에 부합하는 것과 그것을 넘어서는 것, 이른바 '일탈'로 구분된 것들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성행위에 대한 지식 수준은 매우 낮았습니다. 여성은 여전히 성적 욕구가 없는 존재로 취급되었고, 젊은 남성의 자위행위는 나태의 출발점으로 여겨졌습니다.

우리 증조할머니들이 상상했던 일들, 수세기에 걸친 성혁명의 역사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 성에 대한 인식 변화에 크게 기여했다

19세기와 20세기가 교차하는 시점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탄생한 시기입니다. 이 뛰어난 오스트리아 의사의 연구 덕분에 기존의 빅토리아 시대적 관점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고,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인간은 구체적인 욕망과 열망을 지닌 성적 존재로서 과학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참고문헌

  1. A. Sikora, 『자유, 평등, 폭력. 우리가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 Karakter, 2019
  2. Erasmus of Rotterdam, 『De civilitate morum puerilium』, 1530
  3. J.-B. de La Salle, 『Les règles de la bienséance et de la civilité chrétienne』, 파리, 1774
  4. J. Michelet, 『L'amour』, 파리, 1858
  5. N. Elias, 『문명화 과정에 관하여. 사회심리발생론적 분석』, W.A.B., 2011
  6. N. Luhmann, 『사랑의 의미론. 친밀성의 부호화에 관하여』, Scholar, 2003
  7. 『Stans puer ad mensam』, 1463~1483년경, Ewa Życieńska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