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폭식의 여왕 빅토리아, 그녀가 가장 사랑한 것은 '음식'이었다

폭식의 여왕 빅토리아, 그녀가 가장 사랑한 것은 '음식'이었다

식탁 앞에서 그녀를 따를 자는 없었습니다. 아침 식사만 해도 요리 여덟 가지를 비웠고, 궁정 신하들이 좇지 못할 만큼 왕성한 식욕으로 접시 위 음식을 공략했습니다. 본인 스스로 "가능하다면 식탁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다"고 인정할 정도였죠.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키 150cm에 몸무게는 80kg을 넘겼고, 허리둘레는 무려 130cm에 달했습니다. 영국의 여왕 중 가장 '영국적'이었던(정작 영국인의 피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마도 가장 '통통했던' 군주이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자라는데 나만 안 자라!" 소녀 시절 빅토리아 공주는 이렇게 투덜거렸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전적으로 옳지 않았습니다. 그녀 역시 성장은 했으니까요. 다만… 옆으로 말입니다.

폭식의 여왕 빅토리아, 그녀가 가장 사랑한 것은  음식 이었다

프란츠 크사버 빈터할터가 그린 대관식 드레스를 입은 빅토리아 여왕

빅토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남다르게 통통한 아이였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녀를 살진 메추라기에 비유했고, 통통한 얼굴과 작은 키 덕분에 키만큼 넓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그녀는 음식을 모든 슬픔과 고민을 치료하는 만능약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 습관은 시간이 지나며 그녀에게 되돌아올 불씨가 되었습니다.

하루에 고기 18kg, 가금류 35마리

2008년 7월, 영국 경매업체 핸슨스(Hansons Auctioneers)는 다소 파격적인 물건을 경매에 부쳤습니다. 바로 빅토리아 여왕의 속옷이었습니다. "키는 작지만 허리둘레가 상당히 넉넉한 숙녀"를 위해 수제로 제작된 속옷이었죠. 얼마나 넉넉했을까요? 주인의 허리둘레는 무려 130cm, 반면 키는 겨우 150cm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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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트 공녀 빅토리아, 스티븐 데닝 1823년 작

이 놀라운 수치는 어디서 왔을까요? 답은 바로 식당에서 나옵니다. 1837년 즉위한 뒤 빅토리아는 눈부신 속도로 체중을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네 번 성실하게 앉던 그녀의 식탁에는 매일 가금류 35마리와 기타 육류 18kg이 실렸으니(물론 전부 그녀 혼자 먹은 것은 아니지만) 놀랄 일도 아닙니다. 마리우시 미슈탈(Mariusz Misztal)에 따르면, 매일의 연회는 수프와 생선 요리로 시작되었습니다.

생선 다음에는 전채가 나왔고, 이어서 르블레(rélévés)—화려한 두 코스 사이에 곁들이는 가벼운 요리, 예컨대 새우 패티—가 이어졌습니다. 그다음 메인 요리(앙트레)와 진한 소스에 버무린 흰빵과 붉은빵이 나왔습니다. 럼 또는 포트주 셔벳 이후에는 다시 르블레, 예를 들면 산새와 와인소스에 볶은 채소가 등장했고, 마지막으로 디저트, 즉 저녁의 백미인 플랑(flancs)과 좀 더 소박한 후식인 콩트르플랑(contre-flancs)이 차려졌습니다.

여왕은 특히 후자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습니다. 어차피 디저트만이 오후 5시의 의무적인 홍차를 견딜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주방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여왕은 이 음료를 끝내 좋아하지 못했습니다). 우유를 듬뿍 넣고 초콜릿으로 달게 탄 차는 마카롱, 스펀지케이크, 버터크림 케이크와 함께, 혹은 마땅한 것이 없을 때는 치킨이나 로스트 샌드위치와 함께 마셔졌습니다.

다이어트? 오직 왕실답게!

음식에 대한 태도 하나만큼은 빅토리아가 유럽의 또 다른 유명 군주와 정반대였습니다.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트 '시시'가 외모를 병적으로 관리했다면(거식증이 의심받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여왕은 허리둘레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물론 완전히 무관심했던 것은 아닙니다. 비카 필리포비치(Wika Filipowicz)는 이렇게 평합니다.

빅토리아는 과체중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극복하려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총리이자 멘토였던 윌리엄 램 멜버른 경이 한번은 감히 조금 덜 먹고 배고플 때만 먹자고 제안한 적 있습니다. 빅토리아는 그렇게 되면 하루 종일 식탁에서 일어날 필요가 없어질 거라고 답했습니다.

신체 활동 제안에도 회의적이었습니다. 산책을 방해하는 것은 바로… 구두 속으로 들어오는 자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춤과 승마는 무척 좋아했습니다(물론 그녀가 탔던 말들은 같은 열정을 공유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무엇보다 더 사랑한 것은 먹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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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와 빅토리아의 결혼식

그래서 그녀는 다소 서툴게나마 사랑의 부작용을 화려하게 장식된 의상으로 가리려 했습니다. 레이스, 프릴, 리본, 그리고 화려한 보석들이 체형의 흠을 조금은 가려줄 거라는 착각이었죠. 적어도 한 집단은 그녀에게 '속아' 주었습니다. 바로 군주의 체구가 역사에 기록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 화가들입니다. 결혼식 초상화에서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림만 보고는 특별한 날 21세의 작은 체구의 빅토리아가 81kg이나 나갔다는 사실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깃털처럼 가볍게

1845~1849년 아일랜드 대기근조차 여왕의 식욕을 잡지 못했습니다. 신민들과 연대한다는 명목으로 동의한 유일한 절제는 궁정 인원 1인당 빵 배급량을 250g으로 줄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폭식의 여왕 빅토리아, 그녀가 가장 사랑한 것은  음식 이었다

말년의 빅토리아 여왕

결국 그녀는 살을 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인생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말입니다. 그녀에게 효과적인 '퍼스널 트레이너'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스트레스였습니다. 제2차 보어 전쟁에서 영국군이 거듭 패배하면서 소화 장애가 생겼고, 그 결과 우유에 탄 죽 한숟갈을 겨우 삼키는 게 고작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전세가 영국 쪽으로 기울면서) 식욕이 돌아왔지만, 예전의 건강한 모습은 끝내 되찾지 못했습니다. 비카 필리포비치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녀는 몹시 야위어 몸무게가 겨우 50kg까지 떨어졌습니다. (...) 그녀는 허약해 있었습니다. 1901년 1월 17일 뇌졸중 발작을 일으켜 얼굴 근육이 마비되었습니다. 최근까지 유일한 음식이었던 죽 한 숟갈조차 삼킬 수 없었습니다.

며칠 뒤인 1월 22일, 그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해를 관에 모실 때 그녀는 깃털처럼 가벼웠다고 전해집니다…

참고 문헌

  1. Wika Filipowicz, 『왕과 함께한 식탁: 야기에워에서 엘리자베스 2세까지 왕실 연회의 역사』, Znak Horyzont 2020.
  2. Mariusz Misztal, 『빅토리아 여왕』, Ossolineum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