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의 마지막 원주민 통치자로 추앙받는 오와인 글린두르(Owain Glyndŵr)는 오늘날 웨일스 독립의 상징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영웅 서사 뒤에는 그를 비판할 만한 여러 지점이 존재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글린두르의 어두운 면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살펴봅니다.
무자비하고 잔혹했던 인물
글린두르는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또한 여러 교회와 수도원을 불태운 사실도 알려져 있어, 그의 행보에는 분명 잔혹한 면이 존재했습니다.
왕을 배신한 자
글린두르는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4세를 배신하고 '글린두르 반란(Glyndŵr Rising)'이라 불리는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왕에 대한 반역은 중대 범죄로 간주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는 공식적으로 법 밖의 인간, 즉 '아웃로(outlaw)'로 선언되었습니다.
끝내 성공하지 못한 반란
글린두르의 반란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신분을 숨긴 채 도피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마침내 1415년, 그는 망명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도자로서의 한계
글린두르는 웨일스 민족을 하나의 깃발 아래 결집시키는 데 실패했으며, 자신의 지지자들에게조차 배신당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또한 잉글랜드군을 상대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군사적 역량에도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웨일스 민중에게 남긴 상처
글린두르의 반란은 웨일스 전역에 광범위한 파괴와 고통을 안겼습니다. 수많은 웨일스 주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고 고향을 떠나야 했으며, 반란은 웨일스 경제의 침체로까지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