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나치 SS의 비밀 첩보 매음굴 '살롱 키티': 고문보다 강력했던 침실 정보전

술과 아름다운 여성들이 나치에게 있어 가장 잔혹한 고문보다도 효과적인 정보 수집 수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제3제국의 비밀 첩보 거점으로 운영된 베를린의 한 매춘업소, 이른바 '살롱 키티(Salon Kitty)'의 실화입니다. 부유한 유대인 고객들에게 돈을 뽑아내던 이 업소는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SS 요원들의 은밀한 감청 센터로 변모했습니다.

침대에서 흘러나온 국가 기밀

키티 슈미트(Kitty Schmidt)가 운영하던 베를린의 명품 매춘업소는 단순한 오락 그 이상을 손님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애정 행위에 빠져든 손님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치의 정보원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키티의 살롱은 평범한 매춘업소가 아니었습니다. 온갖 도청 장치와 숨겨진 카메라, 마이크로폰이 곳곳에 설치되어 손님들의 모든 대화와 침실에서의 행동까지 녹음하는 비밀 SS 첩보 거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매춘부를 활용하라!

나치 SS의 비밀 첩보 매음굴  살롱 키티 : 고문보다 강력했던 침실 정보전

살롱 키티 설립의 배후에는 SS 상급집단지도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가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Bundesarchiv, CC-BY-SA)

당시 나치의 주요 인사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첩보 조직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SS 수장 하인리히 히믈러의 '두뇌'로 불리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정보 수집 방식은 가장 교활한 것이었으니, 바로 타락한 자들의 침대를 검열하는 것이었습니다. 제3제국에서 매춘 행위는 공공연히 근절 대상이었지만, 꾀 많은 하이드리히는 이 '타락한 활동'을 역으로 이용할 생각을 했습니다.

하이드리히는 능란한 매춘업 경영자 키티 슈미트의 도움을 받아 첩보 장비로 가득 찬 호화로운 매춘업소를 건설했습니다. 바로 이 특별한 방식을 통해 당대 세계의 중요 인사들을 파멸시킬 수 있는 추문거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제3제국과 동맹국의 최고위 정치인들이 키티의 살롱을 드나들었습니다.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Joachim von Ribbentrop), 무솔리니의 사위인 이탈리아 외무장관 갈레아초 치아노(Galeazzo Ciano), 그리고 히틀러의 비서관 마르틴 보어만(Martin Bormann)까지 이곳을 이용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하이드리히 본인이 직접 방문할 때였습니다. 직원들의 회상에 따르면 그는 꽤 자주 왔는데, 그럴 때면 모든 감청 장비가 꺼졌다고 합니다.

수완가 매춘업 경영자, 키티 슈미트

그렇다면 키티 슈미트는 누구였으며, 무엇이 그녀를 나치 정권과 협력하게 만들었을까요? 베를린의 매춘부 여성들이 평범한 서비스에 싫증을 느껴 첩보 놀이를 시작한 걸까요? 사정은 전혀 달랐습니다.

나치 SS의 비밀 첩보 매음굴  살롱 키티 : 고문보다 강력했던 침실 정보전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지구 기제브레히트슈트라세 11번지 건물. 키티의 살롱이 위치했던 곳입니다. (사진 출처: Peter Kuley, CC ASA 3.0)

키티는 베를린에서 '하숙집'이라는 이름의 업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에는 유대계 부유층 고객들 덕분에 번창했습니다. 그러나 나치가 정부의 주도권을 쥐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제3제국을 떠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처참한 운명을 맞았습니다. 물론 단골손님들도 사라졌습니다.

히틀러와 그 일당의 지배가 극에 달하자 1939년 키티 슈미트는 독일 탈출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녀는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독일 첩보부(SD)의 수장 발터 셸렌베르크(Walter Schellenberg)가 직접 그녀를 심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단순명쾌한 선택지를 내밀었습니다. 하숙집을 정보 수집용 매춘업소로 전환하든가, 아니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죽든가. 선택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경박한 '첩보 요원'들을 주역으로 내세운 혁신적인 매춘업소가 탄생했습니다.

침실의 추태와 엘리트들의 비밀

살롱은 연합군의 공습이 날로 거세지는 상황에서도 1945년까지 실질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술에 취해 흘러든 손님들은 SD가 듣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입 밖에 냈습니다. 무솔리니의 사위 치아노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이탈리아가 제국과 연합군 사이에서 어떻게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새어 나왔습니다.

아마도 살롱 키티에서 나온 이 정보 덕분에 아돌프 히틀러는 국방군을 이탈리아에 투입하여 옛 동맹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 나라의 운명이 술기운에 취해 흥청거리다 끝난 한밤의 추태로 결정되었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나치 SS의 비밀 첩보 매음굴  살롱 키티 : 고문보다 강력했던 침실 정보전

이탈리아 외무장관 갈레아초 치아노(왼쪽에서 두 번째). 제3제국 수도를 여러 차례 방문하는 동안 그는 키티 살롱의 단골손님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수많은 국가 기밀을 흘렸습니다. (사진 출처: Bundesarchiv, Hoffmann 촬영, CC-BY-SA)

마르틴 보어만 역시 여성들과 함께 있으면서는 유독 말이 많아졌습니다. 매춘부 여성들은 당의 모든 안건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고,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역시 함께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정적들을 협박했고, 심지어 제거하기도 했습니다.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는 전쟁이 끝난 후의 미래 평화 구상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이는 도청하던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치 최고위 인사들조차 한심한 바보로 여기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몰로토프 협약의 정치적 결과가 키티의 뜨거운 밤중에 논의되었는지 궁금해집니다.

국가적 무게를 지닌 매춘업소

나치 SS의 비밀 첩보 매음굴  살롱 키티 : 고문보다 강력했던 침실 정보전

독일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역시 키티 슈미트의 살롱을 자주 찾았습니다. (사진 출처: Bundesarchiv, CC-BY-SA)

이 살롱이 지닌 위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1942년 연합군의 폭탄이 건물에 명중했을 때, 수리 인력들은 멈추지 않고 작업을 진행해 키티의 살롱을 최단 시간 안에 사용 가능한 상태로 되돌려야 했습니다. 나치는 방어 시설 완공은 미루어도 매춘업소의 재개관만은 서둘렀던 것입니다.

소련군이 베를린으로 접근하기 시작하자 매춘업소 직원들은 모든 녹음 테이프와 함께 대피했습니다. 러시아인들이 발견한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키티 슈미트는 1950년대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추문성 녹음물이 보관된 장소를 끝내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들을 찾아내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언론인 피터 노르덴(Pieter Norden)이었고, '진실의 테이프'를 찾는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알고 보니 테이프는 멀리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베를린 동부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제3제국의 가장 민감한 첩보 정보가 담긴 2만 5천 개에 달하는 녹음물들은 히틀러 국가에서 그토록 철저히 근절하려 했던 매춘부 여성들 덕분에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이 녹음물에는 나치 조직 내부의 상호 의존 관계, 전선의 상황, 정치·문화적 사건들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들로부터 나치당 내부와 이른바 '천년 제국' 전체를 휩쓴 권력 다툼의 생생한 이미지가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최고위 나치 인사들의 침실 추태를 직접 듣고 볼 수 있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이 값진 자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