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조개껍질부터 코코아, 돌덩이까지 – 고대 화폐의 흥미로운 역사

상품의 원활한 유통은 문명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물건을 살 때 돈으로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과거의 상인들은 훨씬 더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했습니다.

화폐란 정의상 특정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공인된 경제적 교환 수단입니다. 즈워티(złoty), 달러, 심지어 금화가 시장을 지배하기 전에는 물물교환을 하거나 서비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사람들이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직접 물건과 물건을 맞바꾸는 물물교환은 사전에 교환 비율을 정해야 했고, 일부 상품은 나눌 수 없어 때때로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장인이 말을 사려고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가 만든 도구 몇 개가 한 마리 가치에 해당할까요? 누가 그 가치를 평가할까요? 그리고 가치의 차이는 어떻게 지불할까요?

물물교환은 교환 당사자들이 상품의 실제 가치를 잘 알 수 있었던 폐쇄적인 공동체에서는 잘 작동했습니다. 상품을 노동력, 식사 횟수, 구매자에게 주는 전반적인 유용성으로 환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큰 집단이 형성되고 상품 생산 효율이 높아지면서 더 쉽고 표준화된 지불 수단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때 '상품화폐(commodity money)'라 불리는 최초의 화폐 형태가 등장했습니다.

비싼 코코아

최초의 화폐 형태 중 하나는 아즈텍인들이 사용한 코코아 씨앗이었습니다. 시장에서는 정해진 수의 '화폐'와 음식, 무기, 그릇, 보석 등을 교환했습니다. 모든 거래는 관리들의 감시 아래 이루어졌으며, 무역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멕시코의 옛 수도 테노치티틀란처럼 시장 광장 근처에 관청이 세워졌는데, 거대한 상업 광장 위로 관공서 건물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관리들은 상품 가격을 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규칙을 어기려던 자들을 처벌했습니다(경우에 따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한편 사기꾼들은 코코아 씨앗 속을 파내고 진흙을 채운 뒤 다른 씨앗에 섞어 넣는 불법 위조 수법을 썼습니다. 물물교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직접 물건을 거래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했지만, 가격 차이는 씨앗으로 메우는 편이 훨씬 쉬웠습니다.

조개껍질부터 코코아, 돌덩이까지 – 고대 화폐의 흥미로운 역사

아즈텍인들이 사용한 최초의 화폐 형태 중 하나인 코코아 씨앗 (사진: Daniel del Valle / public domain)

코코아 씨앗으로 지불하는 것은 매우 실용적이었습니다. 씨앗은 부피가 작고 가벼웠으니까요 — 물론 지불할 양이 몇 알에 불과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이 식물이 남부 멕시코에서 흔하게 자랐기 때문에 씨앗을 구하기도 쉬웠습니다.

문제는 상인들이 더 큰 거래를 할 때 시작됐습니다. 측정 단위는 약 24,000알씩 담긴 자루였지만, 짐작하다시피 이것을 운반하고 지불하는 것은 상당히 번거로웠습니다. 그래서 노예나 제물 같은 대규모 거래에서는 60~300알의 가치를 지닌 면포(quachtli)라 불리는 면직 외투가 대용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집 한 채, 여자 다섯과 소 한 마리

아즈텍의 상품화폐는 다른 어떤 발상과 비교해도 꽤 실용적이고… 인도적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유럽에서는 물건이나 부동산의 가치가 널리 거래되던 가축이나 노예의 수로 측정되었습니다.

고대 아일랜드에서는 어린 소녀들이 화폐 역할을 했고, 이들로 집, 배, 토지를 사거나 바이킹과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바이킹들은 이 살아있는 상품을 실어 나르며 지중해 상인들에게 팔았는데, 그곳에서는 특이한 머리카락 색깔 때문에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조개껍질부터 코코아, 돌덩이까지 – 고대 화폐의 흥미로운 역사

바이킹들은 이 살아있는 상품을 운송해 지중해 상인들에게 팔았고, 그곳에서 특이한 머리카락 색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사진: Sergey Ivanov / Public Domain)

섬의 젊은 여성들이 고향에서 가장 귀중한 상품이었다면, 아프리카에서는 남성이 최고 액면가로 여겨졌습니다. 여성과 아이는 남성 노예 가치의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인간이라는 화폐는 다른 어떤 것보다 다루기 번거로웠는데, 죽으면 가치가 사라지고 주인에게서 도망치려 드는 일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계 각지에서 무역은 주로 가장 분할하기 쉽고, 내구성이 강하며 희귀한 상품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곡물로 가치를 계산했고, 먼 아시아에서는 조개껍질이 화폐로 자주 쓰였습니다. 폴란드의 화폐는 호박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슬라브 상인들은 다람쥐와 담비의 가죽과 머리도 사용했습니다(오늘날까지 크로아티아의 화폐 단위가 '쿠나', 즉 담비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소금과 향신료 역시 거래의 균형을 맞추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자본

가장 실용성이 떨어지는 화폐 중 하나는 미크로네시아 야프 제도에서 사용된… 돌덩이였습니다. 일부 '동전'은 지름 3.5미터에 무게가 수 톤에 달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것으로 지불을 했을까요?

결정적인 요인은 돌의 희소성이었습니다. 이 돌들은 최대 400킬로미터 떨어진 팔라우 제도에서 가져왔습니다. 특히 방해석(calcite)과 아라고나이트(aragonite)로 된 조각들이 가장 귀중했습니다. '라이(rai)'라 불린 이 석화폐가 작동할 수 있었던 열쇠는 뛰어난 내구성과, 좁은 섬 공동체 안에서의 원활한 유통이었습니다.

공동체의 모두가 그 돌덩이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소유주가 바뀔 때 그 돌을 직접 옮겨 가지고 다닐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라이는 오늘날에도 가치를 지니며, 야프에서는 여전히 이를 통해 도움이나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래된 돌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이 건축 자재로 사용하면서 일부 파손되고 말았습니다.

13세기의 지폐

원나라의 건국자이자 13세기 후반에 통치한 황제 쿠빌라이 칸은 경제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교통로 개선과 공공 건물 재건축, 무역 세무서 설립에 더해, 종이 화폐를 도입하며 화폐 제도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몽골 행정부는 이미 1227년에 유가증권 형태의 화폐를 도입했지만, 1260년 쿠빌라이 칸이 이를 '교초(Jiaochao)'라는 이름의 단일 통화로 통합했습니다. 유통되던 화폐에는 유효기간이 있었고 은과 금으로 정해진 가치가 매겨져 있었습니다. 정부는 이 화폐로 낸 세금도 받아들였습니다. 쿠빌라이는 송나라 정복 자금을 마련하고자 추가 화폐를 시장에 대량 유통하기까지 했지만, 재정 규율 부족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이 시도는 경제적 참사로 끝났습니다.

조개껍질부터 코코아, 돌덩이까지 – 고대 화폐의 흥미로운 역사

쿠빌라이 칸 (사진: Master of Busico / public domain)

하지만 지폐라는 아이디어는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재상 상가(Sangha)는 1287년, 국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또 다른 화폐를 발행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이란에서도 시도되었지만, 그곳에서는 종이 화폐가 전혀 정착되지 못했고, 이를 시행한 통치자 가이하투(Gaykhatu)는 곧 살해당했습니다. 혁신적인 발상이 백성들을 그토록 격분시켰던 걸까요?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한때 '허구'로 여겨졌던 화폐가 결국 세계의 인정을 받아 오늘날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참고 문헌:

  1. Dylewski, A., History of money in Poland. Carta Blanca, 2011.
  2. Kalwat, W., History goes on with money. Wolumen publishing house, 2019.
  3. Rothbard, M., N., Gold, banks, people. A Brief History of Money. Fijorr Publishing,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