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붉게 달군 철왕좌 — 르네상스 시대 가장 무자비하고 가학적이었던 고문의 참상

붉게 달궈진 철로 만든 왕좌. 고문 집행인의 집게가 희생자의 몸을 찢어 발깁니다. 그리고 고통에 신음하는 지도자의 살점을 물어뜯고, 인육을 삼키며 피까지 마셔야 했던 부하들의 비참한 운명.

1514년, 얀 자포여(János Zápolya)는 아직 왕은 아니었지만 헝가리에서 손꼽히는 가장 강력한 대귀족 중 한 명이었다. 그는 72개의 성과 도시를 소유했고, 트란실바니아 총독으로서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역사에 새긴 것은 정치적 업적이 아니라, 타인에게 가하는 고통에서 얻는 쾌락이었다.

같은 해 일어난 죄르지 도저사(György Dózsa)가 이끈 농민 반란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은 자포여의 잔혹함과 살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가학적 성향을 끝까지 입증해 준 결정적 사건이 바로 불운한 민중 지도자에 대한 처형이었다.

반역자를 위한 '왕좌'

봉기의 지도자는 전투 중 총독의 손에 넘어갔지만, 포로로서 받아야 할 예우는커녕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조차 받지 못했다. 자포여는 화덕 위에 놓인 붉게 달군 철제 왕좌에 그를 앉히라고 명령했다. 머리에는 달군 철관을 씌웠고, 손에는 뜨겁게 달군 홀을 쥐여 주었다.

도저사는 산 채로 천천히 구워지며 고통스럽게 생명을 잃어 갔다. 그러나 이 끔찍한 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측근 아홉 명이 고문에 지칠대로 지치고 굶주린 상태로 포로 앞에 끌려 나왔다.

첫 번째 희생자는 도저사의 동생 게르게이였다. 그는 형이 지켜보는 앞에서 산 채로 토막 살해당했다. 이어 집행인들이 도저사에게 다가가 집게로 그의 몸을 잔인하게 찢기 시작했는데, 포로가 의식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서야 겨우 손을 멈췄다.

붉게 달군 철왕좌 — 르네상스 시대 가장 무자비하고 가학적이었던 고문의 참상

1972년 헝가리 포스터에 등장한 죄르지 도저사

산 채로 구워지고, 산 채로 잡아먹히다

그다음 차례는 도저사의 다른 포로들과 부관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단 하나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즉시 지도자에게 달려들어, 방금 집행인의 고문 도구에 찢긴 상처 부위를 물어뜯으면 석방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단, 단순히 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물어뜯은 살점을 삼키고,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까지 마셔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포로 가운데 세네 명은 경멸에 겨워 거부했다. 그들은 즉각 산 채로 토막 살해되었다. 나머지들은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개처럼 자신들의 지도자이자 친구에게 달려들었고, 집행인들의 역할을 대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저사는 숨을 거두었다. 산 채로 구워지고, 산 채로 잡아먹힌 것이다.

붉게 달군 철왕좌 — 르네상스 시대 가장 무자비하고 가학적이었던 고문의 참상

에르하르트 쇤(Erhard Schön)의 판화에 묘사된 얀 자포여

이 참혹한 처형을 지시한 남자는 사실 두 해 전부터 폴란드의 온화하고 신중한 국왕 지그문트 1세(노(老) 지그문트)와 매부·처남 관계였다. 자신의 누이인 바르바라 자포여를 왕비로 내보낸 것이다. 얀 자포여와 야기엘로 왕조 사이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539년, 왕위에 대한 권리를 내세우던 이 트란실바니아의 가학자는 지그문트 1세와 보나 스포르차 사이의 딸 이자벨라 야기엘론카와 결혼하며 왕가와 다시 혼맥을 이룬다.

출처

르네상스 시대의 잔혹한 이면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카밀 야니츠키(Kamil Janicki)의 저서 『황금기의 귀부인들(Ladies of the Golden Age)』(Horizon Label, 2014)을 참고하기 바란다. 본 글은 저자가 책 집필 과정에서 수집한 문헌과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