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마지막 국왕과 러시아 여황제 사이의 로맨스는 비밀이 아니다. 이 사랑이 '스타스 왕'이라 불린 그가 왕좌에 오르는 결정적 디딤돌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렇다면 평범한 2류 폴란드 대귀족이 어떻게 당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의 침실에 들어서게 되었을까?
우선 분명한 것은, 이것이 그의 계획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젊은 스타니스와프는 자존심 있는 대귀족 가문의 아들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유럽 전역을 폭넓게 여행했다. 이른바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는 이 견학 여행 중에 그는 영국 귀족 찰스 핸버리-윌리엄스 경(Sir Charles Hanbury-Williams)을 만났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감명을 받은 찰스 경은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했다.
1755년 찰스 경이 영국 폐하의 새 상트페테르부르크 대사로 임명되자, 스물세 살의 스타니스와프 포니아토프스키는 그의 비서로 함께 러시아로 향했다. 두 사람은 진심 어린 우정으로 묶여 있었다고 전해진다.

찰스 핸버리 윌리엄스 경. 젊은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가 아름다운 예카테리나의 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사람 덕분이었다.
북방의 별, 예카테리나
러시아의 수도에서 두 신사는 당대 최고의 화제의 인물, 즉 왕위 계승자 표트르의 아내 예카테리나 대공비를 만났다. 찰스 경은 재빨리 간파했다. 스물여섯 살의 대공비, 장차 여황제가 될 인물의 환심을 얻는 것이야말로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정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는 열쇠라는 사실을.
런던 본국의 지시도 같은 방향이었다. 예카테리나와 밀월 관계를 맺어 그녀를 영국 왕관의 가장 충실한 동맹으로 만들라는 것이었다. 대사는 이 방안에 대해 도덕적 반감이 없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공작부인을 유혹하기에는 그의 건강이 따라주지 못한다는 것.
그는 몹시 부끄러운 듯 영국 외교 책임자에게 이렇게 답신했다.
"제 나이의 남자는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만, 연인이 되기에는 부적합합니다. 제 홀(scepter)이 더 이상 명령을 내리지 않으니까요."
요컨대 찰스 경은 발기부전이었다. 다행히 그의 곁에는 젊은 스타니스와프가 있었다. 청년은 아직 실전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볼 기회조차 없었지만, 건강상의 문제는 전혀 호소하지 않았다.

연애의 전사로서의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
23세까지 지켜온 순결
흔히 '방종의 시대'라 불리는 18세기 유럽에서 살았으면서도, 스타니스와프는 스물세 살까지 처신을 지킨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를 자랑스럽게 적어 남겼다.
"엄격한 교양은 나를 모든 방탕한 관계로부터 지켜주었다. 그리고 그 후 (...) 갖가지 사소한 우연들이 겹치면서 (...) 마치 훗날 내 운명을 좌우할 사람을 위해 나를 온전히 보존해 두려는 듯했다."

그리고 그가 마음에 품은 아름다운 상대는 다름 아닌 미래의 여황제 예카테리나였다.
조작된 운명의 밤
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스타니스와프는 예카테리나에게 '넘겨져야' 했다. 이 역할을 맡은 것은 그녀의 궁정 인사 레프 나리시킨(Lev Naryshkin)이었다. 로버트 K. 머시(Robert K. Massie)는 저서 『예카테리나 대제: 한 여성의 초상(Catherine the Great: Portrait of a Woman)』에서 이 사건의 배후를 생생히 밝힌다.
"레프는 스타니스와프가 대공비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을 일부러 조성했다. 모든 것이 꾸며진 자리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는 그녀의 개인 거처로 이어지는 문 앞에 서게 되었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예카테리나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특별히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공작부인을 그림처럼 황홀하게 바라보던 스타니스와프는 한순간에 순결을 잃는 동시에 미래 여황제의 총신(寵臣)이 되었다.
짝사랑의 결말, 그리고 왕관
그렇다면 그 후의 이야기는? 찰스 경은 기대대로 예카테리나를 통해 영국의 동맹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스타니스와프는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들었지만, 그 감정은 끝내 보답받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공비는 다른 연인에게 마음을 돌렸고, 스타니스와프에게 남겨준 것은 하나뿐이었다. 일종의 위로금처럼, 그의 머리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왕관을 씌워 준 것이다.
출처
- 로버트 K. 머시, 『예카테리나 대제: 한 여성의 초상』, Społeczny Instytut Wydawniczy Znak, 2012.
이 글은 2012년 크라쿠프 도서전에서 배포된 '베스트셀러' 통신에 처음 게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