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토테네 섬에 있는 줄리아를 그린 그림
무르익던 부녀의 정, 그리고 균열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외동딸 줄리아를 무척 아끼고 예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줄리아는 아우구스투스와 두 번째 아내 스크리보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친딸로, 황제는 그녀의 혼사까지 정치적 카드로 활용할 만큼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젊은 줄리아의 방종하고 분수를 모르는 행실—혹은 적어도 아우구스투스가 그렇게 여긴 행동—에 대한 실망과 씁쓸함이 깊어지면서, 황제의 마음은 서서히 변해갔다. 흥미로운 점은 아우구스투스 자신이 통치 기간 동안 결혼 생활의 질서를 강화하고 간통을 엄격히 처벌하는 법을 제정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의 엄격한 도덕 기준은 자신의 친딸에게 가장 먼저 적용된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끝내 딸을 유배지로 보내는 극단적인 결정으로 이어진다.
판다타리아 섬으로의 유폐
줄리아는 결국 작고 외딴 섬 판다타리아(오늘날의 벤토테네)로 유폐되었다. 다만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는 대륙으로 돌아오는 것이 허락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 곳은 아마도 칼라브리아 지방의 레조칼라브리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곳에서 줄리아는 서기 14년, 아버지 아우구스투스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해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역사가가 남긴 탄식의 기록
역사가이자 전기 작가인 수에토니우스는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런 행실을 지닌 딸을 둔 것이 절망스러웠던 아우구스투스는 줄리아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아래와 같이 탄식했으며, 그때마다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아, 차라리 평생 독신으로 살아 자식 하나 없이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때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던 딸에 대한 애정이, 배신감과 실망 속에 이토록 쓰디친 한탄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황제조차 피할 수 없었던 가족의 비극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