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수천 년간 구취와 싸워온 인류의 역사, 고대 이집트의 민트 사탕에서 리스터린까지

보이지 않는 적, 구취와의 오랜 전쟁

보이지 않는 적 '입냄새'와의 싸움은 인류 문명의 시작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오늘날 구취(halitosis)로 불리는 이 문제는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되어 왔는데, 때로는 효과가 있었고 때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문제의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토라에는 입냄새가 '심각한 결함'이며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다리우스 왕의 약혼녀였던 젊은 나히드, 즉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로 알려진 인물은 입냄새 때문에 마케도니아로 돌려보내졌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 구취가 이미 길들여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심각한 고민거리입니다. 제임스 윈브랜트(James Wynbrandt)는 저서 『치과의 아픈 역사』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입냄새는 너무나 혐오스러워서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실제로 입냄새가 없는 사람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상상 속 구취로 병원을 찾은 사람들 중 20%가 사회적 신경증 수준에 이르렀고, 일부는 자살 충동까지 보였습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입에서 나는 냄새는 우리의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그러니 수 세기 동안 수많은 구취 제거법이 발명된 것도 결코 이상하지 않습니다.

수천 년간 구취와 싸워온 인류의 역사, 고대 이집트의 민트 사탕에서 리스터린까지

입냄새 문제는 수천 년 동안 인류와 함께해 왔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민트 사탕

약 3,000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이 오늘날 민트 흡입 사탕의 조상격인 제품을 발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들은 계피, 몰약, 유향(프랑킴센스 계열 식물에서 얻는 물질) 등 다양한 허브와 향신료를 끓인 뒤, 그 즙을 꿀과 섞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로젠지는 빨거나 씹는 순간 그 안에 담긴 향이 입안에 퍼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생각보다 간단하고, 재미있기까지 한 방법입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식사 후 파슬리 잎을 씹었고, 오늘날 이라크 지역 주민들은 정향을 활용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수지(레진)로 만든 일종의 껌도 즐겨 썼는데, 유대인 구취 전문가들 역시 같은 껌을 권했고, 대안으로 물과 기름으로 입안을 헹구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기괴한 관습은 고대 중국에서 나온 듯합니다. 당시 치료사들은 고통받는 환자에게, 악취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오염물질을 닦아내기 위해 달걀 껍질을 갉아먹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노년의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도 기괴한 처방 대회에 나섰는데, 그가 제안한 치료법은 태운 쥐 배설물의 재를 꿀에 섞은 것이었습니다.

향신료와 허브의 시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고대 문명의 경험을 총동원해 입냄새를 치료했습니다. 주로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한 향신료와 허브 혼합물이 사용되었는데, 흥미롭게도 그중 많은 처방의 구성은 오늘날의 허브 제제에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1613년 『잉글리시맨 컴펜디움(The Englishman Compendium)』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입의 악취를 없애려면, 먼저 식초물로 입을 헹군 뒤 마스틱(유향 수지)을 잠시 씹고, 다시 아니스 씨앗 달임물, 민트, 포도주에 담근 정향으로 입안을 헹굽니다."

효과가 의심스럽고—사용자에게 결코 유쾌하지 않았을—르네상스 시대의 방법은 후추, 민트, 굵은 소금을 섞어 씹은 뒤 삼키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실패했거나 건강에 해로운 치료법의 사례도 있는데, 식사 후 와인으로 이를 헹군 다음 천으로 닦아내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치아에 끔찍한 손상을 초래한 '기적의 치료법'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제임스 윈브랜트는 이렇게 전합니다.

"이발사 외과의들은 손님의 입을 이쑤시개와 천 조각으로 청소했습니다. 이를 긁어낸 후에는 '강한 물'에 적신 막대로 이를 문질러 미백 효과를 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아쿠아포르테(aqua forte)라 불린 이 강한 물은 다름 아닌 질산이었습니다. 치료 후 미소는 실제로 더 하얗게 보였지만, 그것은 법랑질이 마모되었기 때문이며, 이는 치아를 영구적으로 손상시켰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 리스터린의 등장

안톤 판 레벤후크(Anton van Leeuwenhoek)가 미생물의 존재를 발견하면서 인류는 위생 문제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구강 위생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위대한 과학자는 현미경 아래에서 입안에서 채취한 물질도 관찰했습니다.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것이 입냄새를 없애는 핵심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고, 불쾌한 냄새와의 싸움은 마침내 마지막 직선 구간에 들어섰습니다. 과학자와 발명가들은 이제 목표를 명확히 알고, 자신들의 적이 누구인지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수천 년간 구취와 싸워온 인류의 역사, 고대 이집트의 민트 사탕에서 리스터린까지

영국의 외과의이자 외과 소독법의 선구자인 조지프 리스터 덕분에 구취와의 싸움은 인류의 승리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레벤후크는 자신의 발견을 직접 실험해 보기도 했습니다. 세균에 브랜디와 포도주 식초를 부어본 결과, 모든 종류의 미생물이 사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고, 더 강력한 방부제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돌파구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레벤후크는 1723년에 세상을 떠났고, 결정적인 계기는 19세기 말에야 찾아왔습니다! 영국의 외과의이자 외과 소독법의 개척자인 조지프 리스터(Joseph Lister) 덕분에 구취와의 싸움은 인류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브랜드 '리스터린(Listerine)'은 그의 이름을 기려 1879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탄생했습니다. 물론 초기에는 입 헹구기 제품으로만 인식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액체는 사실상 어떤 용도로든 쓸 수 있는 만능 방부제로 마케팅되었습니다. 입냄새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지만, 외과용 소독제, 비듬 치료제, 바닥 세정제로서의 성능은 의문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약국 진열대는 이 놀라운 제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다행히 리스터린 붐은 마침내 식었고, 브랜드 소유주들은 타깃 고객층을 좁히기로 결정합니다. 사업을 물려받은 제라드와 매리언 램버트(Gerard and Marion Lambert) 형제는 제품의 운명을 단 하나의 사업, 즉 구취와의 싸움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참고 문헌

  1. Ford, B., 『The Leeuwenhoek Legacy』, Biopress and Farrand Press, Bristol and London, 1991.
  2. Godlee, J., 『Lord Lister』,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3. Wynbrandt, J., 『A Painful History of Dentistry』, Marginesy, Warsaw,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