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뱀파이어가 아니었다! '피의 백작부인'을 만들어낸 합스부르크의 음모

"치마 입은 드라큘라", "피의 백작부인", "체이테의 뱀파이어" — 이것은 엘리자베스 바토리(Elżbieta Batory)에게 붙여진 별명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헝가리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피에 굶주린 괴물이라는 이미지는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녀는 사실 가문을 겨냥한 정치적 음모의 희생자였습니다.

대중문화 속 '피의 백작부인'

대중문화 속에서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영원한 청춘을 갈구하는 광적인 여성으로 그려집니다. 그 목적을 위해 그녀는 살해한 처녀들의 피로 목욕을 했고, 산 채로 고문하는 것을 즐겼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흑마술을 행하고 수많은 난교에 가담했다고까지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헝가리 역사학자들은 이미 한동안 엘리자베스에 대한 흑색 전설을 반박해 왔으며, 아담 샤벨스키(Adam Szabelski)는 학술지 『스투디아 유로파에아 그네즈니엔시아(Studia Europaea Gnesnensia)』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러한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음모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강력한 대귀족 가문 출신으로, 1604년 남편이 사망하자 두 귀족 가문의 재산까지 상속받았습니다. 그녀의 영지는 합스부르크령 헝가리와 터키에 종속된 트란실바니아 양쪽에 걸쳐 있었습니다. 공국은 그녀의 친척인 가브리엘 바토리(Gabriel Batory)가 다스리고 있었지만, 그녀 자신은 헝가리 국왕 칭호를 겸하고 있던 독일 황제의 신하였습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뱀파이어가 아니었다!  피의 백작부인 을 만들어낸 합스부르크의 음모

체흐티체(헝가리어 명칭: 체이테) 성 폐허. 엘리자베스 바토리가 거점으로 삼았던 곳입니다(사진: LMih, CC BY-SA 3.0).

1610년, 가브리엘은 합스부르크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엘리자베스가 그의 편에 섰다면 승패가 그쪽으로 기울 수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바로 이 사실이, 그해 12월 29일 팔라틴(궁정백) 죄르지 투르조(György Turzó)가 그녀를 살인 혐의로 체포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었을 것입니다.

재정적인 동기도 작용했습니다. 왕실이 엘리자베스를 살인죄로 유죄 판결한다면, 군주는 최소한 그녀 재산의 3분의 1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과부는 미리 대비하여 자신의 재산을 세 자녀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재판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는 고문을 통해 강제로 끌어낸, 소위 범죄 목격자들의 진술이었습니다. 진술들은 서로 모순되고 부정확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심문을 받은 이들 모두 자신은 직접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며, 소문으로 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살해당한 사람은 300명이 넘는다고 했는데, 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숫자입니다. 그런 규모의 살인이 벌어졌다면 헝가리 귀족들이 감히 딸들을 엘리자베스의 궁정에 보냈겠습니까? 그런 일은 도저히 숨길 수 없었을 테니까요.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뱀파이어가 아니었다!  피의 백작부인 을 만들어낸 합스부르크의 음모

엘리자베스 바토리와 그녀에게 끌려온 처녀들. 이슈트반 초크(István Csók)의 1895년 작품.

그러나 피고인은 재판대에 서 보지도 못했습니다. 팔라틴 투르조 역시 자신의 증거가 얼마나 빈약한지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바토리는 불법적으로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법률상 법원 판결 없이 귀족 남녀를 감금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태를 더 밀고 나가지 않는 편이 편리했을 것입니다. 불행한 여인은 4년간의 독방 감금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뱀파이어 전설은 어디서 왔는가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흑마술과 피의 목욕에 관한 전설은 무려 1729년에야 탄생했습니다. 그 창시자는 저서 『웅가리아 수이스 쿰 레기부스 콤펜디오 다타(Ungaria suis cum regibus compendio data)』의 저자 라슬로 투로츠(László Turócz)입니다. 그는 아마도 100년 전의 대귀족을 중상모략함으로써, 엘리자베스의 후손이기도 한 당시 트란실바니아 공작 라코치 2세 프란츠(Francis II Rákóczi)를 실추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록의 신뢰성은 사실상 전무하지만, 수백 년 동안 정치적 음모의 무고한 희생자였던 한 여성의 이미지를 지배해 왔습니다.

출처

  • Adam Szabelski, The figure of Elżbieta Batory in historiography, "Studia Europaea Gnesnensia", no. 9/2014, pp. 95-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