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과학자의 혈통을 둘러싼 오랜 논쟁
라듐의 발견자이자 폴란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중 한 명인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Maria Skłodowska-Curie)가 유대인이라는 주장은 오랫동안 논쟁거리였습니다. 반유대주의자들에게 그녀의 유대 혈통설은 공격의 빌미가 되었고, 반면 유대인 신문들은 그녀를 '선택받은 백성'의 일원으로 자랑스럽게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사실일까요?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가 유대인으로 여겨진 근거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유래한 그녀의 가운데 이름 '살로메아(Salomea)'와, 폴란드에 많은 유대교 신자들이 거주했다는 잘 알려진 사실이 결합되어 이런 추측이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유대인 여성을 원하지 않는다"
1910년 11월,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는 프랑스 학사원(Académie des sciences) 입회 후보로 지원했습니다. 치열한 선거 운동 과정에서 그녀의 유대 혈통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반유대주의 정서가 강했기 때문에 이 문제는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일부 언론은 그녀에게서 "특징적으로 처진 유대인의 눈매"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랑스 과학자들이 실제로 그런 것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학사원 회원들 중 적어도 일부는 결정을 내릴 때 폴란드 출신 연구자의 혈통을 고려했습니다. 결국 1911년 초,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는 무선 통신의 개척자 중 한 명인 물리학자 겸 의사 에두아르 브랑리(Édouard Branly)에게 단 두 표 차이로 패배했습니다. 프랑스인들이 자신들 사이에 유대인을 두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패배한 것입니다.
'위대한 유대인'을 기리는 부고
1934년 노벨상 수상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해외 언론에는 과학자의 유대 혈통 관련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빈의 유대인 신문 '게레히티크카이트(Gerechtigkeit)'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1867년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마리 퀴리는 유대인이었다. 그녀는 가난한 몸으로 파리에 건너가 소르본느 실험실 잡역부 자리를 얻었다. 동시에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고, 피에르 퀴리의 조수가 되었으며, 훗날 그와 결혼했다."
이에 대해 전간기 폴란드에서 가장 널리 읽힌 잡지 중 하나인 '일루스트로바니 쿠리에르 코지엔니(Ilustrowany Kurier Codzienny)'는 단호한 반박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위 기사의 전기적 부정확성과 마리 퀴리의 폴란드식 이름을 완전히 생략한 점은 지적하지 않겠다.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는 결코 잡역부가 아니었고, 중등학교 졸업장을 소지한 실험실 기술자로 리프만 교수 연구소에서 일했으며, 피에르 퀴리의 조수가 아니라 동료였다는 사실도 넘어가겠다."
"그러나 퀴리-스크워도프스카 부인이 유대인이었다는 주장만큼은 단호히 정정해야 한다. 그녀는 유대인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핏줄에는 유대인의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의 유대 혈통 관련 기사들의 영향으로 역사학자들은 그녀의 가계도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지그문트 라소츠키(Zygmunt Lasocki) 백작이 '미시엥치니크 헤랄디친니(Miesięcznik Heraldyczny)'에 발표한 귀중한 논문이 탄생했습니다.
조사 결과 스크워도프스키 가문은 수많은 귀족 가문 중 하나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들은 수 세기 동안 돌렝가(Dołęga) 문장을 사용해 왔습니다. 또한 물리학자의 모친인 보구스카(Boguska) 씨 집안의 조상들 역시 토푸르(Topór) 문장을 사용하는 귀족이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조상 중에는 1733년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 국왕 선출에 서명한 야쿠프 스크워도프스키(Jakub Skłodowski), 그리고 1767년부터 1792년까지 오스트롤렝카 지역 서기관, 웜자 지역 판사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한 프란치셰크 보구스키(Franciszek Boguski)가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유대 혈통을 근거로 한 퀴리-스크워도프스카에 대한 비판이든 찬양이든 어떤 근거도 없었습니다. 이 저명한 연구자는 증조부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폴란드인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일루스트로바니 쿠리에르 코지엔니'가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요약했습니다:
"우리는 퀴리-스크워도프스카의 천재적 재능이 아리안 계통에 속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순수한 폴란드인 여성이 죽은 후에도 그녀를 호전적인 시오니즘의 선전 도구로 삼아 유대인으로 만드는 것은 품위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게레히티크카이트'는 한편으로는 '인종차별'과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유대인 '인종차별'을 키우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경우처럼 완전한 거짓말에 기반하기까지 합니다."
참고 자료
- Adamek Mieczysław, Skłodowski Józef (1804-1882), [in:] Polish Biographical Dictionary, vol. 38 p. 198.
- Sadaj Henryk, Skłodowscy. Ancestors and contemporaries of Maria Salomea Skłodowska Curie, "Annals of Humanities", vol. 30, 1982, issue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