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중세 여성들은 어떻게 '처녀'인 척 했을까?

중세 시대에 정조를 잃은 귀부인에게는 처녀막을 재건할 성형수술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연 요법과 여인들의 지혜, 그리고 약간의 마법이 있었다면 무슨 걱정이 필요했겠습니까? 약초와 거머리, 물고기 부레가 동원되었고, 억지로 붉힌 뺨과 모호한 맹세, 그리고 무엇보다 남자들의 순진함까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 굳이 처녀인 척해야 했을까요? 중세 유럽에서 이 문제의 답은 명확했습니다. 여성은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검소하고 경건하게 살아야 했으며, 적당한 배필을 찾아 결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조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사회적 낙인과 함께 '최악의 죄인'으로 취급받았죠.

따라서 처녀성은 금보다 귀했고, 때로는 목숨만큼 소중했습니다. 처녀막은 함락되지 않는 요새와 같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그 요새가 무너졌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구원의 길은 전혀 없었을까요? 물론 아니었습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요.

중세 여성들은 어떻게  처녀 인 척 했을까?

거머리로 되찾은 '두 번째 첫날밤'

'타락한' 여인들의 구원자로 나선 인물은 11세기 이탈리아 살레르노에서 활약한 여성 의학자 트로툴라(Trota of Salerno)였습니다. 여성의 외음부를 '다시 닫기' 위해 당대 권위자가 내린 처방은 바로 그곳에 거머리를 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결혼 첫날밤의 성공은 보장되고, 신랑은 아내가 여전히 정조를 지킨 처녀라고 믿게 된다는 논리였죠.

하지만 거머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슴 지방과 도마뱀 지방, 각종 소금, 심지어 유황과 수은까지 섞어 만든 신비한 연고를 음부에 바르라고 제안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치료를 받던 여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당한 건강상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중세 여성들은 어떻게  처녀 인 척 했을까?

중세 여성들이 두려워한 것은 간통을 들키는 일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비밀이 언젠가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늘 따라다녔습니다.

이런 발상은 살레르노의 여류 의학자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대 의학 논문들에 이름을 올린 남성 의사들 역시 온갖 '기적의' 처방을 내놓았습니다. 스페인 의사 마누엘 디에스 데 칼라타유드는 송진과 포도주를 섞은 혼합물을, 유대인 현자 마하릭(Maharik)은 '그 알려진 곳', 즉 질 안에 넣는 유리 분말과 바닷소금을 권했습니다.

물고기 부레를 든 여인들

훨씬 건강하고 아마도 확실한 방법은 비둘기나 물고기 부레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레에 피를 채운 뒤 질 안에 넣고, 격정적인 순간에 터지도록 위치를 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신랑은 자신이 진짜 처녀를 맞이했다는 자부심에 가득 차겠죠.

이 기만술의 또 다른 변형은 생리 중에 성관계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수줍음 많은 아내가 월경혈을 첫 관계의 증거로 여겨줄 것이라는 계산이 담겨 있었죠. 참고로 물고기 부레와 이런 종류의 꾀는 결혼을 앞둔 중세 숙녀들뿐 아니라 품행이 가벼운 여인들도 활용했습니다. 나이를 속이고 젊은 처녀처럼 행동하면, 그만큼 손님들에게 비싼 값을 부를 수 있었으니까요.

이제 '전직 처녀들'과 정조 회복을 고민하던 그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특정 약초를 달인 물에 목욕하면 질 근육이 수축한다고 믿어졌습니다. 물론 너무 꽉 조이면 남편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심지어 결합 자체에 어려움을 겪을 위험도 있었지만, 뭐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겠죠.

덧붙이자면, 만약 여성이 성관계를 계속해서 방해하는 문제를 겪는다면 공식적으로 '소비 불능'으로 선언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 경우 주교는 산파들이 작성한 여성의 상태에 대한 소견서를 근거로 혼인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물론 재혼권은 없이). 때로는 여성에게 오히려 이득이 되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유난히 싫었는데 정작 그 선택에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던 경우 말입니다.

목을 단련하라

성스러운 이미지를 지키려는 숙녀들은 목까지 단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중세 로맨스 문학에 따르면 믿을 만한 처녀 검증법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포도주를 가득 담은 마법의 뿔잔을 상대에게 건네는 것이었죠.

중세 여성들은 어떻게  처녀 인 척 했을까?

적절한 약초를 우린 물에 목욕하면 질이 '처녀의 크기'로 좁아진다고 여겨졌습니다.

깨끗한 여인만이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그 잔을 비울 수 있다고 전해졌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의 이탈리아판('라 타볼라 리톤다')에 따르면, 이 시험에서 무려 686명의 여성이 실패하며 애인들의 노여움을 샀다고 합니다!

한편 같은 중세 설화에는 전직 처녀들이 거짓말을 잘하는 법에 대한 조언도 담겨 있습니다. 예컨대 밤에 남편을 먼저 침상으로 보내버린다든가요. 아니면 정조를 입증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애매한 맹세를 하는 것 — 그 참뜻은 여자 자신과 애인만이 알 수 있는 맹세 말입니다.

전설의 이졸데가 바로 그런 사례였습니다. 남편 몰래 트리스탄과의 연애를 숨기고 싶었던 그녀는 애인에게 거지로 변장해 강가로 오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물건너 업어주기를 청했죠. 덕분에 이졸데는 남편에게, 세상에, 그리고 하느님께 이렇게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식 상대와 그날 강가의 '거지' 외에 자신을 품에 안은 사람은 없었다고요.

결국 올바른 말과 행동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죄인'들은 처녀에게 기대되는 대로 행동해야 했습니다. 남자 앞에서 수줍게 내리깐 눈, 적절히 연기한 당황함과 부끄러움, 심지어 억지로 붉히는 뺨까지 — 연애 농담이 나오자마자 신호라도 받은 듯 발갛게 물드는 뺨이었죠.

중세 여성들은 어떻게  처녀 인 척 했을까?

허리에 살이 조금 올랐다고요? 중세 처녀에게 이는 정조 상실 혐의의 시작이 될 수 있었습니다.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

당시에는 과학은 부족했지만 의심은 넘쳐났습니다. 다이앤 두크레가 저서 『금지된 몸: 남성 집착의 역사』에서 쓰듯, 15세기 초 의사들에게 여성의 생식기는 헤아릴 수 없고 부끄러운 미스터리였기 때문에 처녀막의 존재만으로 처녀성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추가 증거로 매끈하고 좁은 허리가 요구되기도 했죠. 허리가 가는 여성은 침실에서의 '불순한 활동'과 출산 경험과 연관 지어졌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머리카락 하나를 넷으로 쪼개 따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안달루시아 철학자이자 의사인 아베로에스의 의학 백과사전 '콜리게트(Colliget)'는 이런 질문까지 던집니다. 사내가 사정한 물에 목욕한 여성이 그 결과로 임신하게 되었다면, 그녀는 여전히 처녀인가? 이런 종류의 딜레마는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유대교든, 중세 유럽 어디에서나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는 극단적인 예외에 불과했습니다. 훨씬 흔한 일은 사람들이 누군가 누구와 잤는지, 잤을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해하며 뒷담화를 나누고 들춰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487년을 기점으로, 마치 중세 자체가 저물어버린 것처럼 『마녀탄핵(Malleus Maleficarum)』이 출간되면서 유럽은 온통 새로운 추악함의 사냥꾼들, 즉 마녀 사냥꾼들로 뒤덮였습니다.

마녀 사냥꾼들은 용의자들의 성생활 등을 조사하며 희생자를 물색했습니다. 마법의 뿔잔을 마시지 못해 곤경에 빠졌던 중세 처녀들의 드라마는, 종교적 편집증과 이웃 간 원한이라는 이름으로 수천 명의 무고한 여성이 화형당한 비극에 비하면 그저 구차한 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