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드바브네(Jedwabne)에서 일어난 범죄가 세상에 알려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해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국가기억원(IPN)에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 과연 이 사건에 대해 아직 밝혀야 할 것이 남아 있을까요? 우리는 정말로 1941년 7월 10일 유대인 대량학살이 누구에 의해 자행되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걸까요?
지난 1년간 예드바브네 유대인 살해 사건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불붙었습니다. 2016년 7월, 1941년 범죄 발생 75주기를 맞아 모니카 올레이니크(Monika Olejnik)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안나 잘레프스카(Anna Zalewska) 국민교육부 장관은 살해의 가해자가 폴란드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며 애매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그녀는 "예드바브네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상황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며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시기, 국가기억원 원장 후보였던 야로스와프 샤렉(Jarosław Szarek) 박사는 인사청문회를 진행한 국회 위원회 앞에서 "이 범죄의 가해자는 독일인들이며, 그들은 강압에 의해 폴란드인 집단을 자신들의 테러 기계에 동원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2000~2003년 국가기억원 수사 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당시 수사에 따르면 1941년 7월 10일 유대인 살해의 직접적인 가해자는 최소 수십 명에 달하는 예드바브네 및 인근 마을 주민들이었으며, 그날 마을에 있던 게슈타포와 독일 헌병은 범죄를 부추기고 선동하는 역할을 했을 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잘레프스카 장관과 샤렉 원장의 발언은 국가기억원의 기존 결론을 상대화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졌고, 오랫동안 그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던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다만 참고로, 2016년 8월 야로스와프 샤렉은 '제치포스폴리타(Rzeczpospolita)'와의 인터뷰에서 국가기억원 수사 결과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바르샤바 토바로바(Towarowa) 거리에 있던 구 국가기억원 청사의 기록보관소. 기록부서는 국가안전기관의 모든 문서를 등록, 수집, 보관하고 준비·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 결과, 종결된 수사를 다시 시작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졌고, 무엇보다 2001년에 중단된 희생자 집단 매장지 발굴(시체 검안) 작업의 완료를 촉구하는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루블린의 역사학자 에바 쿠렉(Ewa Kurek) 박사의 주도로 2017년 4월에는 1만 1천 명 이상의 서명이 담긴 청원이 검찰총장에게 접수되었습니다. 또한 예드바브네 사건에 대한 새로운 목격자가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2017년 8월 말, 국가기억원 비아위스토크 지부 검사는 오르지시(Orzysz)에 거주하는 90세의 알렉산드라 K(Aleksandra K.) 씨를 조사했지만, 그녀는 예드바브네 범죄의 경위와 가해자에 관해 새롭거나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2017년 9월 5일자 국가기억원 수사부 성명에 따르면, 법적으로 종결된 수사를 재개하고 계속할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예드바브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예드바브네의 범죄는 2000년 얀 토마시 그로스(Jan Tomasz Gross)의 저서 『이웃들(Neighbors): 유대인 마을 몰살의 역사』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논쟁적인 기질로 쓰인 이 작은 연구서는 폴란드인을 전쟁의 피해자로만 그려온 확고한 자기상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에 큰 충격을 낳았습니다.
그로스는 1941년 7월 10일, 예드바브네의 폴란드인들이 독일인의 선동과 묵인 아래 유대인 이웃들을 헛간에 가두어 불태워 살해했다고 기술했습니다. 대량학살에 앞서 마을 광장에 모인 유대인 가족들을 고문하는 광대극이 벌어졌고, 개별적인 살해와 유대인 가택 약탈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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