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마리아 보이체호프스카를 폴란드 제2공화국의 초대 영부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 그녀는 독립운동가였고, 상당히 기지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차르 정권 비밀경찰의 밀정을 따돌렸을까?
1890년대 중반, 마리아는 스물다섯 살 무렵이었다. 당시 그녀의 성은 아직 보이체호프스카가 아니라 키에르스노프스카였고, 훗날 남편이 되는 스타니스와프 보이체호프스키와도 아직 만난 적이 없었다. 대신 그녀는 폴란드 사회당(PPS)의 열성적인 활동가로서, 노동자의 권리뿐 아니라 독립된 폴란드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바로 이 지하 조직 활동을 통해 그녀는 첫 약혼자를 만나게 된다.
마리아의 그 파트너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그녀는 그를 '닥터'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별명인지, 지하 조직에서 쓰이던 가명인지, 아니면 단순히 직업을 나타내는 말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젊은 키에르스노프스카의 약혼자가 의사 혹은 의대생이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구체적인 세부 사항은 마리아가 노년에 가족들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일부 드러난다. 필자는 마리아 보이체호프스카의 손자였던 마치예이 그랍스키 교수(오늘날 고인) 덕분에 이 기록된 대화의 내용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는 필자가 『제2공화국의 영부인들』을 집필하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선전활동가의 체포. 19세기 말 일리야 레핀의 그림
"약혼자가 있었어요, 어떤 닥터였죠"
마리아는 첫 결혼 후보에 대해 짧게 이야기했다. "스타시를 만나기 전에 저는 약혼자가 있었어요. 어떤 의사였죠. 그는 당에서 일했습니다." 두 사람이 얼마나 깊이,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물론 당 조직 안에서는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기에 관계는 빠르게 발전했고, 몇 주 만에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도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럴 수 없었다.
마리아는 사회주의자였지만 동시에 지주의 딸이자 가문 재산의 상속녀이기도 했다. 약혼을 했다면 전통을 모두 갖춘 후였을 것이다! 부모님은 닥터를 잘 알고 축복을 내려주었어야 했다. 그만큼 매우 진지한 관계였고, 몇 달, 어쩌면 그 이상 지속된 관계였다.
그런데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지 못한 이유는 더 분명하다.
"그가 체포됐어요. 언제 감옥으로 호송되는지 알았기에, 그가 끌려가는 동안 신호를 보냈죠. 우리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오빠들과 함께 저도 시베리아로 끌려갈 뻔했죠"
정치범에게 손을 흔들고 미소를 보내며 이상한 몸짓까지. 좋게 끝날 리 없었다. 물론 호송 과정은 해당 기관들이 감시하고 있었고, 마리아는 곧바로 거미줄에 걸렸다. 감정에 휘둘린 순간의 경솔함 때문에 그녀는 스스로 우랄산맥 너머로 끌려갈 뻔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를 뒤따르는 밀정을 알아챘어요. 정말 무서웠습니다. 오빠들과 같이 사는 집에 금지 출판물이 든 서류가방이 있었거든요. 집에 갈 수 없었어요. 그러면 오빠들과 저 모두 시베리아로 끌려갈 테니까요. 약 10시간 동안 거리를 헤매었고, 그는 계속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상황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하루 종일 목적 없이 도시를 배회했고, 밀정은 어떤 수를 써서도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10시간에 걸친 산책은 그의 호기심을 더 자극했을 뿐이다. 결국 지쳐서 거의 일어설 수조차 없게 된 마리아는 눈에 띄는 첫 번째 과일 가게로 들어섰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추위에 몸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한겨울이었고, 그런 돌발 상황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제 그녀는 무언가라도 한 입 먹어보길 바랄 뿐이었다. 놀랍게도 밀정은 거리에서 조용히 기다리지 않았다.
마리아의 젊은 시절 사진은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은 가장 초기의 사진 중 하나로, 영국 체류 당시 남편 스타니스와프 보이체호프스키와 함께 찍은 모습이다.
그는 가게 안까지 따라 들어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도 걷는 데 지쳤던 모양이죠. 왜 죄수에게 작별 인사를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약혼녀라고 대답했더니, 누구냐,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어요. 저는 이름과 주소를 말했습니다."
차르 정권 밀정의 승리는 겉모습일 뿐이었다. 짧은 대화면 그를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물론 주소는 거짓이었다. 이름도 틀림없이 거짓이었겠지. 마리아는 밀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게를 나서자마자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마차 한 대가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가 알아채기도 전에 뛰어올라 떠나버렸죠." 이제야 진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마리아는 약간의 우위를 확보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한 장의 패에 걸고 자기 집 앞에서 내렸다. 일분이나 이분 후에 그 성질 고약한 밀정도 그곳에 나타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저는 아파트로 들어갔습니다. 오빠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마침 시골에서 물품을 실어 온 썰매가 도착한 참이었습니다. 마부를 시내로 보내고, 저는 스카프를 두르고 옷차림을 바꿨습니다."
혁명가의 체포
아마 사회당 신문이 든 서류가방도 함께 챙겼을 것이다. 그녀는 재빨리 썰매에 올라타 아무 일 없다는 듯 말에 채찍질했다. 떠나면서 "내 밀정이 연립주택들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자신 곁을 지나가는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몰랐죠. 그리고 저를 찾지 못했습니다."
"여자는 이렇게 길러야 해요"
보다시피 마리아는 정말 침착함을 유지했다. 이런 모험 후라면 누구든 집에 숨어 잠시 신경을 진정시키고 경찰이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성질 고약한 밀정을 따돌리자마자 그녀는…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마치예이 그랍스키는 키에르스노프스키 가문에 일종의 신성한 규칙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어머니가 마리아에게 전해주었고, 나중에 마리아는 자신의 딸 조피아에게 다시 전해주었다. "여자는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에 갔다가 그를 데려올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
마리아 키에르스노프스카(훗날 보이체호프스카)와 아이들, 1908년 사진.
마리아에게는 (매우 특수한 의미에서의) 교양과 결단력이 부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기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얻은 정보에 따라 약혼자가 수감되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행이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녀는 연인이 더 동쪽으로 호송되기 전에 감옥에서 꺼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그녀를 기다린 것은 뼈아픈 좌절이었다.
닥터는 상황을 정신적으로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감각이 완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진 연인의 모습은 마리아에게 강력한 충격이었음에 틀림없다.
"그 약혼자는 시베리아로 가기 전에 미쳐버렸어요. 감옥 벽 곳곳에 제 이름을 적었습니다. 어디를 보나... 마리아... 마리아... 평생 그를 다시 본 적도, 소식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마리아는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결단력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즉시 당과 위대한 이상을 위한 일의 소용돌이에 다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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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 글은 저자가 『제2공화국의 영부인들』(Wydawnictwo Znak, 2012) 집필 과정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가족 사진들은 마치예이 그랍스키가 책을 위해 제공한 소장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