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의 여왕, 그러나 태어난 날에는 아무도 반기지 않았다
훗날 그녀는 단순한 여왕을 넘어 '왕'으로 추대될 인물이었다. 그러나 태어나던 순간, 부모가 느낀 것은 기쁨이 아니라 깊은 실망이었다. 야드비가 앙주스카(Jadwiga Andegaweńska). 그녀는 아무도 원하지 않던 딸이었다.
앙주의 루이(Louis of Anjou)는 절박했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군주 중 한 명이면서도, 오직 한 가지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력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25년 넘게 통치하는 동안, 아니 애초에 자녀조차 없었다.
그는 광활한 헝가리 제국의 미래, 그리고 자신의 가문의 운명이 두려웠고, 결국 친척 중 한 명을 양자로 들이는 방안까지 고민하기에 이른다. 자신의 혈통이 끊기는 것만은 막고 싶었던 것이다.
결혼 17년 만에 찾아온 소식
1369년 말에야 비로소 헝가리 전역에 기쁨과 놀라움이 동시에 담긴 소식이 퍼졌다. 왕비 엘지비에타 보슈니아츠카(Elżbieta Bośniaczka)가 임신한 것이다. 백성들은 이를 진정한 기적이라 여겼다. 결혼 정확히 17년 만인 1370년 7월, 군주는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
아들은 아니었지만, 루이는 조금도 절망하지 않았다. 한 번 순산에 성공했다면 이제부터는 훨씬 수월할 것이고, 1~2년 안에 반드시 왕위 계승자가 태어날 것이라 기대할 만한 근거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성 시메온 성물함 부조에 새겨진 엘지비에타 보슈니아츠카와 그녀의 딸들
아들 대신 또 다른 딸
그러나 운명은 그의 인내를 계속 시험했다. 첫째 딸 카타지나(Katarzyna)에 이어, 1371년 보슈니아 출신 왕비는 또 다른 딸 마리아(Maria)를 낳았다.
당시 왕비는 서른한 살, 국왕은 마흔다섯 살이었다. 가족을 늘리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적어도 루이가 건강하게 지내는 한은 그렇게 보였다.
그의 건강 상태는 끊임없는 원정과 전쟁 부상, 사냥 사고로 인해 늘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1370년대 초반에야 비로소 진짜 위기가 찾아왔다.

카밀 야니츠키(Kamil Janicki)의 저서 『우리는 폴란드 제국을 세운다』를 통해 폴란드를 일으킨 여성들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다.
가문을 잇는 마지막 기회
군주의 몸은 원인 불명의 쇠약한 병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루이가 자신의 영토 중 하나였던 폴란드 방문을 피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현지의 혹독한 기후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국왕은 남쪽을 더 선호했다. 따뜻한 곳에서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말에 올라타고 명령을 내리는 일이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갈수록 국정보다는 의학으로 향해갔다. 그는 수많은 의사들을 곁에 두었고, 심지어 프랑스 국왕에게까지 자신의 병을 고칠 전문의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어떤 의사, 최고의 의사조차 루이를 구할 수 없었다. 그의 상태는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되었고, 후계 문제—특히 새로 정복한 폴란드에서의 후계 문제—는 날로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남편의 무덤 앞에 선 엘지비에타 보슈니아츠카. 샨도르 리젠마이어(Sándor Liezen-Mayer) 작
국왕의 건강 악화는 그의 어머니에게도 악몽이었다. 폴란드 섭정이자 유럽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엘지비에타 워키에트크프나(Elżbieta Łokietkówna)였다. 바벨 성에서 통치하던 일흔 살의 노부인은 자신보다 먼저 모든 자식을 장례지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다섯 아들 중 루이만이 살아남은 마지막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손자의 탄생을 간절히 기다렸다.
계승자를 기다리며
마침내 1373년, 엘지비에타 보슈니아츠카가 다시 임신했다. 국왕은 이번에야말로 계승자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고, 이미 어머니와 함께 그 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도시민들에게 특혜를 주고, 귀족들을 포섭했으며, 새로운 특권과 경고를 연달아 발표했다. 헝가리와 폴란드의 백성들이 누구보다 빨리 '루이의 아들 = 새로운 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마르첼로 바차렐리(Marcello Bacciarelli)가 그린 헝가리의 루이 초상화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곳곳에서 동의를 얻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1374년 초, 그 모든 준비가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는지 드러났다. 기대와 달리 세상에 나온 것은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다.
셋째 딸의 이름은 야드비가(Jadwiga)로 지어졌다. 그녀의 탄생은 너무나 큰 실망이어서 연감이나 공식 문서에조차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역사학자들은 그녀가 태어난 시기를 대략적으로 밝혀냈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 2월 중순경이라는 사실뿐이다. 야드비가는 부모와 백성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셈이었다. 연달아 셋째 딸이었기에, 1374년 그 어느 누구도 이 아이가 훗날 뚜렷한 업적을 이룰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야드비가 앙주스카의 놀라운 삶과 업적을 짧은 글 하나에 담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위대한 여왕과 그보다 앞선 매력적인 여성들에게 한 권의 책이 헌정되었다. 카밀 야니츠키의 『폴란드 제국의 여인들 – 제국을 세운 여성들』. 프로모션 가격으로 empik.com에서 구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