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개를 지닌 두 마리의 새가 친밀한 벗으로서 한 나무 위에서 함께 산다. 한 마리는 나무의 달콤한 열매를 맛있게 먹지만, 다른 새는 열매를 먹지 않고 그저 벗인 그 새를 바라볼 뿐이다.
— 문다카 우파니샤드 3.1.1
후기 베다 시대와 우파니샤드의 등장
기원전 600년경, 후기 베다 시대의 마지막 국면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 철학적 논의의 핵심 문헌으로는 아란야카(Aranyaka)가 있다. 제사 의식 절차에서 벗어나 지식의 우위를 내세운 '실체 명상 종교'의 흐름은 아란야카에서 비롯되어 우파니샤드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특히 판찰라와 비데하 지역에서는 사제 계급의 특권과 의례 중심주의에 맞서는 강력한 반발 운동이 일어났으며, 수많은 우파니샤드가 이 시기에 편찬되었다. 이 철학 문헌들은 의례를 비판하고 올바른 신앙과 지식을 강조했다.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사상
리그베다에는 다신교적 신앙과 함께 유일한 최고 존재에 대한 암시적 서술이 이미 나타나 있었다. 이 사상이 결론에 도달한 것이 바로 우파니샤드 시대였다. 이 창조 세계 너머에는 '브라흐만(Brahman)'이라 불리는 변하지 않는 절대자가 있으며, 그분은 우주의 창조자이자 주재자이자 파괴자이다. 이 '신'은 영혼의 형태로 모든 생명체 안에 깃들어 있으며,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새로운 몸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영혼은 반복적으로 새 육신을 입으면서 선행의 힘으로 속박에서 해방되어, 궁극적으로 최상위 영혼과 다시 하나가 된다. 이 사상에 따르면 어떠한 행위도 헛되지 않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모든 카르마는 성숙하여 결실을 맺으며, 그 결과를 누리기 위해 영혼은 다시 환생해야 한다. 카르마와 영혼의 원리와 연결된 것이 인간의 궁극적 목적지인 모크샤(해탈)의 원리이다.
우파니샤드 사상과 왕권
우파니샤드 시대에는 개체, 창조물, 영혼 등에 관한 깊은 탐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현자 야즈냐발키야 등은 '아트만'을 인식하였고, 아트만과 브라흐만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 결과 브라흐만은 최고신으로 부상하였다. 판찰라와 비데하의 일부 크샤트리야 왕들도 이러한 사유에 참여하여 사제 독점 종교를 개혁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안정과 통합의 이념은 더욱 강화되었다. 영혼의 불변성과 불멸성을 강조함으로써 영속성의 관념이 확립되었는데, 이는 왕권이 필요로 하는 바였다. 또한 영혼과 브라흐만의 관계를 강조한 것은 상위 권위에 대한 귀복 의식을 강화하는 힘이 되었다.
환생, 카르마, 천국과 지옥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이 물음은 윤회 전생설을 낳았다. 이 원리에 따르면 인간의 다음 생은 그의 업에 달려 있다. 선업을 쌓은 자는 좋은 처소(yoni)에 태어나고, 악업을 지은 자는 나쁜 처소에 태어난다. 좋은 처소와 나쁜 처소라는 생각은 곧 천국과 지옥의 관념으로 발전하였다.
지식의 우위와 구원의 길
이 시대에는 지식의 우위가 강조되었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브라흐만에 관한 지식을 얻는 것이 필수라고 여겨졌다. 지식·신앙·절제·진실 등 최고의 덕을 갖춘 수행자와 출가자가 구원의 자격을 얻는 반면, 의무를 다하고 제사를 지내는 가장은 사후 피트리얀(조상의 길)을 거쳐 달에 도달한다.
그 선행이 다하면 그는 다시 지상에 태어나는데, 처음에는 식물로, 그다음에는 드비자(재생족 — 브라만·크샤트리야·바이샤)로 태어난다. 반면 죄악된 행위에 몰두한 사람은 죽어서 수드라 계급이나 개 따위의 처소에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이 모든 개념이 이 시대에 확립되었다.
종교 목표의 변화 — 해탈 지향
죽음에 관한 종교적 신념은 이 시대의 종교를 비관적으로 만들고, 세계를 고뇌의 장으로 여겨 출세간으로 떠나도록 부추겼다. 베다 시대 아리안들의 종교가 낙천적이고 즐거움이 넘치며 구원에 대한 집착이 없었던 것과 달리, 후기 베다 시대의 종교는 천국 도달을 믿었지만, 우파니샤드 시대에는 종교의 궁극적 목표가 모크샤의 실현으로 바뀌었다. 해탈 앞에서는 현세의 행복이나 기쁨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이 사실은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에서 매우 감동적으로 드러난다.
바나프라스타(삼림 은거 단계)로 들어서면서 현자 야즈냐발키야는 재산을 두 아내인 카티야야니와 마이트레이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때 마이트레이가 물었다.
'이 세상의 모든 재부와 소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해도, 나는 불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야즈냐발키야가 아니라고 하자 마이트레이는 말했다.
'불멸을 얻지 못하게 될 재산이 나에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러니 저에게 지식을 주십시오.'
마이트레이의 이 말에 기뻐한 야즈냐발키야는 그녀에게 아트만의 지식을 전해 주었다.
윤리와 종교적 의무
우파니샤드와 경(經) 문헌의 종교에서 도덕의 기준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매우 높았다. 이 시기에는 윤리가 최대한 강조되었다. 진실, 고행, 신앙, 결단, 정결, 몸·말·마음의 절제, 감각의 통제, 죄악된 행위의 근절 등을 통해 업의 속박에서 벗어나면 구원의 자격을 얻게 된다.
모든 인간에게 높은 도덕성이 요구됨에 따라, 이 시기에는 삼종의 빚 — 조상의 빚, 신의 빚, 성현의 빚 — 을 갚고 다섯 가지 대제사, 즉 브라흐마 제사, 데바 제사, 피트리 제사, 아티티(손님) 제사, 부타(생령) 제사를 수행하는 것이 종교적 행위에 포함되었다. 우파니샤드의 지식과 고행을 중시하는 종교 이념과 더불어, 브라만 문헌의 제사 의례 전통도 이 시대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수많은 동물 제사와 장기간의 제의는 크게 줄었지만, 여러 형태의 제사는 여전히 계속 행해졌다. 이러한 종교 절차에 관한 지식은 슈라우타수트라와 그리하수트라에서 얻을 수 있다.
법경(Dharmasutra)의 사회관
이 시기에 편찬된 법경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하나의 유기적 실체로 받아들였다. 사회의 발전과 향상이 궁극적 목표였다. 왕이든 백성이든 모든 이의 의무가 종교(달마)의 형태로 규정되었다. 중요한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였다. 이러한 의무의 성공적 수행이 인생의 궁극 목표였고, 그로부터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의무와 종교라는 배경 속에서 법경에는 통치와 정치에 관한 논의도 담겨 있다.
베다 종교와 우파니샤드 시대의 차이
위의 논의를 바탕으로 베다 종교와 우파니샤드 시대 사이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베다의 다신교가 이 시대에는 일신교로 전환되었다.
- 종교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유가 철학의 탄생을 가져왔다.
- 환생, 모크샤(해탈), 카르마의 원리가 제시되었다.
- 사후 세계에 대해 천국과 지옥의 관념이 확정되었다.
- 높은 도덕적 품성과 선행이 크게 강조되었다.
우파니샤드 시대 종교의 한계
리그베다 시대의 종교가 소박하고 자연스러웠다면, 브라만 문헌의 시대에 종교는 사치스러워지고 의례는 과중한 부담이 되었다. 우파니샤드 시대에는 그러한 화려함 위주의 의례와 제사에 반대하면서 무속성 브라흐만, 영혼, 카르마, 해탈 등이 제시되었으나, 이런 형태의 종교 역시 인간의 갈증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우파니샤드가 말하는 감각 너머의 무속성 브라흐만은 너무나 깊고 미묘해서, 평범한 지성으로는 접근하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더욱이 해탈에 이르기 위해 제시된 듣기, 사유, 심화 명상, 삼매 같은 수행 방법 자체가 워낙 고되어서, 보통 사람이 따르기란 몹시 어려웠다. 세속적 집착을 버리고 방유자나 출가자가 되어 브라흐만을 얻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길이었다. 그리하여 종교에 대한 독립적 사상가들은 삶의 다양한 물음과 종교의 여러 관점을 다시 검토하게 되었다.
우파니샤드 시대에 확립된 아쉬람(인생 4단계) 제도의 마지막 두 단계인 바나프라스타와 산야사가 이러한 사유에 가장 유용한 토양이 되었다. 이로 인해 인도의 영적·종교적 지도권은 리시와 브라만의 손에서 은거자와 출가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때문에 인도에서는 수많은 새로운 종교적 분파가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