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레스보스섬 서부, 고대 도시 안티사(Antissa)로 확인된 아기오이 테오도로스 성(현 오브리오카스트로)에서 레스보스 고대유물관리국(Ephorate of Antiquities of Lesbos)이 진행 중인 발굴 조사를 통해 세 채의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 발견된 것은 흑회(黑色灰) 토기와 정교한 문양 토기가 함께 출토된 기원전 7세기의 아치형 건물 한 채와, 그보다 앞선 기원전 8세기 및 기원전 10세기의 직사각형 건물 두 채다. 이 발견은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600~1100년)부터 이른바 '암흑기'(기원전 11~9세기)까지의 역사적 연속성을 확인해 준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이 시기는 레스보스로 이주한 에올리아인을 비롯한 그리스 부족들의 이동을 보여주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적지의 역사
아기오이 테오도로스 성(오늘날 오브리오카스트로라고도 불린다)은 몰리보스 서쪽, 해안 마을 가바타스 동쪽의 고대 안티사 반도에 자리한다.
이 성은 바위 언덕 위에 펼쳐져 있으며, 레스보스와 소아시아 사이의 해협을 통제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문헌 기록과 여행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언덕에는 군인 성인 테오도로스 형제에게 헌정된 같은 이름의 성이 있었으며, 이 성은 이름을 같이하는 성채 도시를 지켰다고 한다. 수도사 출신 여행자 부온델몬티는 1422년 아기오이 테오도로스 성을 레스보스의 일곱 성 중 하나로 언급했고, 교회 회의 결정문들 역시 이곳을 성채 국가로 지칭한다. 다만 성의 모습이 중세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제1차 투르크-베네치아 전쟁(1461~1479) 말기 오토만 제국이 이곳을 완전히 파괴하고 버린 것으로 보인다.
성의 위치와 관련해 역사학자 이. 콘티스는 저서 『레스보스 폴립티콘』에서 "고대 도시 안티사는 오늘날 황무지가 된 오브리오카스트로에 있었는데, 이 지명은 가텔루조 가문 통치기에 그곳에 세워진 성에서 유래했다"고 언급했다. 독일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는 1890년 고대 도시의 영역을 조사하면서 후대의 중세 성이 차지하는 지역과 성채(아크로폴리스)로 지목되는 언덕을 경계로 도시의 범위를 설정했다.
고대 도시에 대한 본격적인 고고학 조사는 1931년과 1932년 영국 고고학자 윈프리드 램(Winifred Lamb)이 영국 고고학연구소를 대신해 오브리오카스트로 주변에서 실시한 발굴이 처음이었다. 이 발굴은 이 지역에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2천 년기 말)부터 고대기(기원전 7세기 말~6세기), 그리고 후기 고전기(기원전 4세기)까지 사람이 거주했음을 확인해 주었다. 특히 그가 발견한 기원전 8~7세기의 아치형 건물들은 성역(신전)으로 분류되어 큰 관심을 끌었다.
이후 조사를 통해 오브리오카스트로 언덕 맞은편 언덕에서 고대기·고전기 시대의 방어벽 일부가, 그리고 도시의 묘지(네크로폴리스)가 동쪽과 남쪽에 위치한 것이 확인됐다.
오늘날의 발굴 조사
북에게해 지역 공공투자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레스보스 고대유물관리국이 최근 진행한 고고학 조사는 레스보스의 역사와 고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고대 안티사 유적을 되살리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유적, 특히 중세 성에 대한 체계적인 발굴이 필요하다고 보며, 이번 조사는 램의 연구 이후 약 90년 만에 고대 도시 일대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발굴이다.
레스보스 고대유물관리국장 파블로스 트리안타필리디스는 APE-MPE 통신에 "바닷바람과 강풍으로 인한 잦은 벽체 붕괴, 무질서하게 쌓인 돌무더기, 그리고 황폐하고 방치된 모습은 분명 고대 레스보스 다섯 도시국가 중 하나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레스보스 고대유물관리국은 지난 2년간 체계적인 지표 정리 작업과 함께 중세 성 전체를 뒤덮은 식생 제거 작업을 진행했다. 약 15에이커(약 6헥타르) 규모의 유적에 대한 매년의 보존 관리 결과, 유적지 곳곳에서 무질서한 돌무더기가 드러났는데, 이는 1462년 오토만의 성 파괴 이후 유적이 겪은 붕괴와 황폐화와 연결된다. 트리안타필리디스 국장은 돌무더기 아래에 보존된 가장 중요한 건축 유구를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 돌무더기들이 "성의 상태를 초라하게 보여주며, 분명 성이 누렸던 영광에 걸맞지 않은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시험 발굴 구획이 조성됐다. 중세 해자를 따라 이어지는 해안 방벽, 다섯 개의 탑과 교차하는 지점, 그리고 상성(Upper Castle)이 그것이다.
중세 탑의 발굴 성과
중세 성벽의 다섯 개 직사각형 탑 가운데 조사는 2호 탑과 3호 탑에 집중됐다. 탑의 축조 시기는 적어도 13~14세기, 즉 후기 비잔틴 시대로 확정됐다. 당시 레스보스는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혼수로 프란체스코 가텔루조에게 넘어갔던 시기다.
3호 탑 발굴에서는 이전 시대의 건축 부재가 재활용된 웅장한 문과 석판 바닥이 드러났으며, 연대는 14세기로 추정된다. 이 문은 동쪽과 북쪽으로 통하는 두 개의 통로를 갖추고 있으며, 돌무더기 아래 높이 4미터까지 남아 있다. 웅장한 출입 구조는 중세 성의 당시 지면이 현재보다 훨씬 낮았음을 시사하며, 발굴이 계속되면 성 건물들의 형태가 상당 부분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토기, 금속공예품, 유리 제품, 그리고 주화들은 14세기에 성이 수리되었으나 격렬한 사건, 아마도 오토만의 포위 공격으로 인한 파괴로 버려졌음을 입증한다.
상성에서 나온 저장 시설
상성에서는 항아리에 곡물을 저장하기 위한 직사각형 탑의 지하 공간이 돔 형태로 발견됐다. 이 공간은 회반죽으로 마감되어 있고 문자 장식이 새겨져 있었다. 그 동쪽에는 높이 약 2미터로 예외적으로 잘 보존된 직사각형 방들이 있는데, 석재 바닥을 갖추고 있으며 아마도 대형 저장 항아리(피토스)를 위한 지하 창고였던 것으로 보인다. 연대는 14세기 주화를 통해 확인됐다.
"발굴은 더 오래된 지층에 속하는 건축 유구를 조사하는 것을 목표로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라고 트리안타필리디스 국장은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