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전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휘관이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정확한 판단력에만 머물지 않았다. 병사들을 전투로 이끄는 힘찬 말솜씨에서도 빛을 발했고, 나아가 적진의 병사마저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카리스마까지 지니고 있었다.
얀 카롤 호드키에비치(Jan Karol Chodkiewicz, 1560~1621)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대헤트만(최고 사령관)으로, 1605년 키르촐름 전투에서 수적으로 열세한 기병대만으로 스웨덴군을 대파하며 유럽 최고의 명장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그의 위대함은 전술적 안목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지휘관으로서의 재능 외에도 호드키에비치는 뛰어난 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가 남긴 전투 직전의 연설문들은 오늘날 들어보면 마치 최고의 할리우드 각본가가 집필한 것처럼 생생하고 웅장하다.
칼과 말솜씨, 두 재능을 지닌 달인
키르촐름 전투를 앞두고 그는 병사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오직 희망은 우리의 손과 하나님의 도우심에 달려 있다!"
1609년 3월 2일 새벽, 오늘날 에스토니아의 유명 관광지인 패르누(Pärnu)를 강습할 때에는 칼을 손에 들고 요새로 돌진하며 병사들을 고무했다.
"왕과 조국을 사랑하는 덕 있는 자라면, 민족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나를 따르라!"
1621년 호틴 전투 개시 당시 그가 남긴 연설 역시 몹시 인상적이다. 당시 연방군을 이끌던 호드키에비치는 술탄 오스만 2세(Osman II)가 이끄는 강대한 오스만 제국군에 맞서야 했다. 연설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이교도에 맞서 신앙을 위해 싸운다. 성십자가를 위해, 원수들에 맞서 싸운다! 왕을 위해, 온 겨레를 위해 싸운다!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전사한 형제들의 피가 복수를 부르짖고 있다. 그 피는 아직도 너희가 밟고 있는 이 땅에 깊이 스며들지 못했다!"

1621년 호틴(초침) 근교에서 호드키에비치는 부하들을 성공적으로 전투에 고무시켰다. 사진은 요제프 브란트(Józef Brandt)가 그린 「호틴 전투」다.
호드키에비치는 군인의 명예에 남다르게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는 늘 "나는 도망치는 법을 모른다"고 되풀이했다. 그리고 적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우가바강 유역에서 벌어진 키르촐름 전투를 앞두고 스웨덴 국왕 칼 9세가 "호드키에비치의 군대가 도주하는 꿈을 보았다"며 안심하자, 휘하 지휘관 안데르스 렌나르트손(Anders Lennartsson)은 "저는 호드키에비치를 오랫동안 알아왔지만, 그가 도망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 명예
그는 적에 대해서도 넓은 의미의 명예를 중시했으며, 잔혹함이나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아마도 1601년의 한 사건이 그 마음에 깊은 각인을 남겼을 것이다. 당시 그는 크시슈토프 라지비우 '피오룬'(Krzysztof Radziwiłł "Piorun") 휘하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코켄하우젠(Kokenhausen)의 스웨덴 수비대는 자유로운 철수를 조건으로 항복했다. 그런데 승리에 들뜬 연방군 병사들 사이에서 소동이 벌어졌고(그 책임이 호드키에비치에게 잘못 돌려지기도 했다), 결국 폴란드인들이 항복한 병사 일부를 살해하는 참극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그에게 전쟁의 명예와 포로 대우의 중요성을 절절하게 일깨워 준 것으로 보인다.
키르촐름 전투 이후 그의 명예를 중시하는 태도는 뚜렷하게 드러났다. 호드키에비치는 앞서 언급한 렌나르트손에게 명예로운 장례식을 거행해 주었고, 스웨덴 국왕 칼 9세의 딸과 약혼한 뤼네부르크 공작 프리드리히의 시신은 시아버지가 될 뻔했던 국왕에게 정중히 돌려보냈다. 또한 스웨덴군에서 복무하던 독일인 용병들에게는 더 이상 연방과 싸우지 않겠다는 맹세를 조건으로 자유를 허락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관들에 대한 이야기는 책 「폴란드의 전쟁신들(Polish gods of war)」에서 만나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외국 용병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의 웅변 실력이 결정적인 힘을 발휘했다. 1604년 비아위 카미엔(Biały Kamień)으로 진군하던 길에 그는 외국인 병사 500명에게 폴란드군 입대를 제안했지만, 아쉽게도 거절당했다.
그러나 5년 뒤 패르누 함락 이후에는 그의 설득력이 온전히 만개했다. 무려 스코틀랜드인 155명이 스웨덴군 대열에서 바로 전향하여 폴란드 군에 입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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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관들의 성공 비결은 책 「폴란드의 전쟁신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위 글은 얀 카롤 호드키에비치를 다룬 장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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