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초등학교도 졸업 못 한 그녀, 노벨상을 꿈꾸다 — 엘레나 차우셰스쿠의 가짜 '과학 경력'

루마니아 독재자의 아내로서 엘레나에게는 보석도, 모피도, 호화로운 저택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조차 마치지 못한 그녀는 교육과 그에 따르는 명성, 나아가 노벨상까지 갈망했다. 그 화려한 '경력'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던 것일까?

엘레나 차우셰스쿠(Elena Ceaușescu)의 공식 전기에는 거의 진실이 담겨 있지 않았다. 심지어 이름조차 실제로는 '레누타'(애칭 '렌카')였으며, 결혼 후에야 '개명'을 결심한다. 모두 자신의 낡은 농민 출신과의 인연을 끊기 위해서였다.

출생 연도도 조작되었다. 1916년생인 그녀는 남편 니콜라에(1918년생)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도록 세 살이나 젊어졌다. 그렇다면 그 유명한 '과학 경력'은 어떠했을까? 그것은 국모(國母)의 지나친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고안된 거창하고도 완전히 허구적인 이야기에 불과했다.

'경력'의 시작

과연 레누타 페트레스쿠(Lenuta Petrescu, 엘레나의 처녀 시절 이름)가 과학 발전에 나선 시작점은 어땠을까? 물론 그녀는 왈라키아 지방 담보비차 주의 고향 페트레슈티를 떠난 이후 첫걸음을 내디뎠다. 프제미스와프 스워빈스키는 저서 『독재자의 여자들』에서 그녀의 행적을 이렇게 기록했다.

(…) 오빠를 따라 부쿠레슈티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처음에 실험실 조수로 일하다가 이후 방직 공장으로 옮겼다. 이 시기는 그녀의 공식 전기에서 극히 짧게 언급될 뿐인데, 훗날 '국모'가 될 그녀가 당시 매춘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도 졸업 못 한 그녀, 노벨상을 꿈꾸다 — 엘레나 차우셰스쿠의 가짜  과학 경력

1939년, 레누타 페트레스쿠의 모습.

실험실에서의 임무는 사실상 청소 수준에 가까웠지만, 엘레나는 '경력'에서도 과학이라는 주제를 이어가고 싶어 했다. 기회는 1945년, 훗날 루마니아를 억압하게 될 남자와의 결혼 이후 찾아왔다. 그녀는 잠시 비슷한 종류의 공장에 복귀해 일했는데, 이번에는 실제로 이전보다 높은 직위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출세 가도를 달리던 요직의 아내 치고는 실험실 기술자라는 직업이 너무 격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했으니, 통학 의무조차 없는 통신 과정이었다. 졸업 후 엔지니어 신분으로 부쿠레슈티 화학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했고, 이후 상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스워빈스키는 그녀의 빠른 학계 성장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엘레나의 학위와 각종 영예는 마술처럼 불어났다.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가나 같은 나라들뿐 아니라 여러 유서 깊은 서구권 대학들에서 온 것들이었다.

예컨대 런던의 저명한 왕립화학회와 그리스 과학아카데미는 그녀를 명예 회원으로 받아들였고, 볼로냐 대학은 중합체 화학 분야의 업적을 기려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결국 그녀는 세계 각지 대학에서 받은 열두 개가 넘는 honoris causa(명예) 학위와 방대한 '자신의' 과학 저작 목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대필 작가들의 '값진' 도움

독재자의 아내는 어떻게 그토록 빠르게 과학의 최상위 리그에 올라섰을까? 물론 그녀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모든 논문과 책은 루마니아 과학자들이 대필한 것이었다. 정작 그녀 본인은 초등학교 몇 학년 수업만 마친 상태라 읽고, 쓰고, 셈하는 법을 겨우 익혔을 뿐이었다. 어려운 화학 지식을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동원된 수학자와 화학자들 역시 좌절감과 '국모'를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억울함을 풀 방법을 찾았다. 장난으로든 복수심으로든, 그들은 배정받은 연구물의 복잡한 수식에 일부러 오류를 심었다. 그 터무니없는 계산식은 학계에서 웃음거리가 되었고, 정작 '저자'인 그녀에게는 눈에 띄지 않았다.

게다가 루마니아 전문가들의 동원에만 그치지 않았다. 독재자의 정보기관은 서방의 과학 논문을… 훔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작성 날짜를 소급하고 '엘레나 차우셰스쿠 박사'의 서명만 얹으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해서 독재자의 아내는 정작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저작을 자신의 업적으로 추가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도 졸업 못 한 그녀, 노벨상을 꿈꾸다 — 엘레나 차우셰스쿠의 가짜  과학 경력

루마니아 정보기관은 외국의 과학 논문을 훔쳐 날짜를 조작한 뒤 엘레나의 작품으로 둔갑시켰다.

그녀가 '다루는' 분야에 대한 지식이 형편없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박사 학위를 비공개 심사로 취득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방법이 동원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훗날 박사가 된 그녀는 정작 '자신의' 논문 제목조차 읽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제목은 「합성고무 가공에서의 입체특이적 이소프렌 중합」이었다.

야망은 끝이 없었다

전 세계(폴란드에서도)에 발표된 수많은 학위와 논문이면 국모의 야망도 충분히 채워졌을 것 같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엘레나에게는 어떠한 한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믿기 어렵겠지만, 교육받지 못하고 시골 출신을 부끄러워하며 과학 경험이 전혀 없던 엘레나는 또 하나의 상을 원했다. 이번에는 진정으로 권위 있는 상이었다. 스워빈스키는 『독재자의 여자들』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지극히 겸손한 차우셰스쿠 부인은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의 학위·영예 컬렉션에는 딱 하나 빠진 것이 있다는 것… 바로 노벨상이었다. 루마니아 당국은 국모에게 이 영예를 안겨줄 수 있는 분야를 조심스럽게 타진하기 시작했다.

화학 부문의 상이 물론 있었고, 의학 부문(마늘 추출물 기반 항암 요법에 대한 상)이나 평화상도 후보로 검토했다. 안타깝게도 수상 심사를 맡은 스웨덴 왕립과학원 위원들은 이런 제안을 강경하게 거부했다.

초등학교도 졸업 못 한 그녀, 노벨상을 꿈꾸다 — 엘레나 차우셰스쿠의 가짜  과학 경력

욕심은 먹을수록 커진다. 어느 순간 엘레나는 노벨상을 꿈꾸고 있었다.

거절은 엘레나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중요성과 과학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그동안의 많은 학위가 겉보기에 그럴듯할 뿐 실질적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자리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다이앤 듀크레가 기록했듯, 이 위원회는 니콜라에가 직접 아내를 위해 만든 것이었다.

'저명한 화학자'가 이런 굴욕을 당하고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그녀가 워싱턴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고 싶어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그녀를 위해 그런 배려를 할 생각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부인 로절린 카터는 그녀가 탐내던 모피 선물마저 거절했다. 미국 대통령 부부는 선물이든 학위든 반드시 실력으로 얻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