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바바 아누즈카(Baba Anujka) – '마법의 물'로 희생자를 죽인 세계 최고령 연쇄 살인범

민담 속 마녀는 실재했다 – 발칸의 전설적인 독약 판매자

동화 속에는 남을 치유하기도 하지만 파괴하고 죽이기도 하는 마녀와 신비한 약초사 이야기가 가득하다. 역사는 이런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에 단순한 진실의 알갱이 그 이상이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발칸반도 출신의 연쇄 살인범 바바 아누즈카(Baba Anujka)가 바로 그 증거다. 그녀는 '마법의 물'이라 불리는 독약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저승으로 보냈다.

어린 시절과 비극적인 첫사랑

아나 드라크신(Ana Drakšin)은 1837년경 부유한 목축업자의 딸로 왈라키아에서 태어났다. 소녀가 십 대였을 때 가족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세르비아 지역에 있는 블라디미로바츠(Vladimirovac) 마을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아나는 근처의 부유층 학교에 보내져 폭넓은 교육을 받았다.

학업을 마친 아나는 다섯 개 언어에 능통했고 화학과 의학의 기초를 익힌 뒤 더 깊이 공부했다.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었던 그녀의 활동은 주로 약초학에 기반한 전통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안타깝게도 사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20세 때 아나는 오스트리아 장교에게 유혹당해 깨진 마음과 매독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이 사건은 그녀의 정신에 깊은 상흔을 남겨 남성을 미워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피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집안에 틀어밉혔지만 고립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자신보다 20살 위의 부유한 지주와 강제로 혼인시켰기 때문이다.

아나는 민간 의술을 접었고, 부부 관계는 의외로 원만했다. 그러나 비극도 함께 찾아왔다. 열한 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성인까지 살아남은 것은 한 명뿐이었다. 게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은 무역으로 부자가 된 후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20년의 결혼 생활 끝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아나는 홀로 남았지만, 인생을 스스로 꾸릴 자유를 얻었고 가장 사랑하던 일인 약초 의술로 돌아가기로 했다.

부부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의 물'

그녀는 집에 일종의 실험실을 차리고 스스로 '연금술사 작업장'이라 불렀다. 그곳에서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물약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물약은 건강 문제만 해결한 것이 아니라, 병역을 피하고 싶은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그녀는 안정되고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녀는 지역의 마녀로 인식되며 세월이 흐르면서 '바바 아누즈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고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마법의 물'이었다. 이 혼합물은 치명적인 독약으로 밝혀졌고, 아나는 발칸에서 가장 끔찍한 살인범으로 불리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항상 물약의 정확한 용량에 유의했다고 한다. 용량이 너무 적으면 효과가 없고 너무 많으면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초기 사망 사건들이 그녀의 행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희생자 배우자들의 부주의 탓이었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늙은' 아내에게 질린 남편들과, 다혈질적인 남편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아내들이 바바 아누즈카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 하나의 질문만 던졌다. "문제가 얼마나 큰가?" 고객이 희생자의 대략적인 체중을 말하면, 곧바로 바바 아누즈카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시각적 메시지의 힘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업무에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검은 옷을 입고, 집 안은 신비로운 분위기로 가득했으며, 고객이 찾아오면 알 수 없는 주문을 속삭이고 마법 의식을 거행했다. 이 모든 것은 비소와 식물성 독소가 혼합된 작은 병을 판매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했다. 이것을 마신 희생자들은 2주 안에 사망했다.

바바 아누즈카의 '마법의 물'은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그녀는 천리안 능력으로도 유명했다. 이 덕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전역의 장교들과 장관들이 그녀를 찾았다고 한다. 이렇게 쌓아온 바나트 지방 마녀의 명성은 경찰의 주목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주었다. 경찰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고, 저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역 농민들의 신고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곧 변하기 시작했다.

수상한 죽음들

1914년, 한 신혼부부가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바바 아누즈카의 집 앞을 지나쳤다. 날이 무더웠던 터라 노파는 부부에게 물 한 잔을 권했다고 한다. 8일 후 젊은 아내가 원인 불명의 병으로 사망했고, 이어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죽음은 마침내 당국의 주의를 끌었고, 아나는 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1914년 6월 재판에 회부되었다.

증거 불충분과 바바를 옹호하는 지역 주민들의 증언 덕분에 그녀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들은 아나가 진짜 마녀이며, 그녀를 위협하는 자는 조만간 벌을 받으리라 확신했다. 과연 그 여인이 신혼부부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을까? 이 사건과 관련된 대부분의 문서가 제1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사라져 버려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한 후 바바 아누즈카가 살던 지역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80세의 아나는 고객을 유치해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선택받은 사람은 류비나 밀란코프(Ljubina Milankov)였다.

1920년대 밀란코프는 바바 아누즈카의 중개인 역할을 했다. 그녀의 임무는 약초사의 잠재적 고객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인근 마을과 도시에서 밀란코프는 지역 여성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는 여성들을 골라냈다. 그런 다음 우연인 듯 우물가나 시장에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바바를 기적을 일으키는 천리안 능력자라고 치켜세웠다. 이후 약초사에게 고객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전달하여, 고객이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이미 알아서는 안 될 정보를 '눈빛과 손, 얼굴에서 읽어낸' 것처럼 보이게 했다.

류비나는 또한 작업실 운영을 도왔다. 그녀는 바바의 특기를 배우며 약품과 마법 물약을 준비했다. 이 완벽한 짝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다. 과거 약초사의 희생자는 대부분 시골 여성과 남성이었지만, 이제는 더 부유하고 지위 높은 시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유한 여관 주인이자 요식업자, 널리 존경받는 판체보(Pančevo) 시장, 그리고 마침내 부유한 집안의 39세 아들과 그의 80세 아버지까지. 이러한 죽음과 죽음이 가져다준 유족들의 이익은 보이보디나(Vojvodina) 당국의 주목을 끌었다.

마녀에게 내려진 형벌

1928년 7월 아나와 류비나는 체포되었고, 1년 후 두 건의 독살 살인 교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92세였던 바바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동료는 8년, 독약을 구매한 두 고객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물론 약초사는 끝까지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많은 가족들이 유해 검안을 위한 발굴을 거부했기 때문에 다른 범죄를 입증하는 것도 어려웠다. 아마도 자신들이 받을 처벌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녀는 두 건의 범죄에 대한 공범 혐의로만 기소되었지만, 추산되는 희생자 수는 50명에서 150명에 이른다. 이는 그녀를 발칸 지역에서 가장 위험한 연쇄 살인범으로 만들었다. 당시 그녀의 범죄는 미국부터 호주까지 전 세계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생을 마감했을까? 역사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한 이론에 따르면 그녀는 8년 복역 후 석방되어 100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다른 이론은 1941년 독일군이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진입하면서 104세의 나이로 자유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그 이후 그녀에 대한 소식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