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키얀(Qiyan) – 노래하는 노예, 이슬람 황금기의 잊힌 주역

천일야화 속 첫 만남

'천일야화'에 실린 알리바바와 40명의 도적 이야기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유명하다. 흥미롭게도 바로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키얀(qiyan), 즉 '노래하는 노예'와 처음으로 조우하게 된다.

유럽 역사서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중세의 이미지는 무슬림 세계의 그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이슬람 사회에게 중세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르네상스가 찾아온 시대였다. 유럽의 학자들은 대학을 찾아 이슬람권으로 향했고, 새로운 사상과 원리를 탐구했으며, 고대 그리스·로마의 저작을 배웠다. 그리고 통념과 달리, 이곳은 과학과 예술의 결실을 남성만 누린 세계가 아니었다. 그 좋은 사례가 바로 키얀, 일명 '노래하는 노예'이다.

알리바바 이야기에는 도적들을 소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현명한 노예 마르자나(Marjana)가 등장한다. 공을 인정받아 자유민이 된 그녀는 훗날 알리바바의 아들의 아내가 되었다. 하지만 동화 속 주인공만으로 키얀의 실체를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당시 칼리프국의 문화와 정치 발전에 어떤 의미를 지녔던 걸까?

이슬람의 르네상스

오늘날 키얀이라고 하면 주로 노래하는 노예를 떠올리지만, 이 단어 뒤에는 악기를 연주하고 목소리로 궁정 연회를 빛내던 재능 있는 기생이라는 이미지 그 이상의 것이 숨어 있다. 키얀이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는 우마이야 칼리프조와 압바스 왕조의 통치기였다. 중동에서 북아프리카를 거쳐 안달루시아에 이르기까지, 저택과 도시는 물론 이동식 천막 속에서도 키얀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전설이 실제로 꽃핀 곳은 압바스 왕조가 다스리던 바그다드였다.

키얀(Qiyan) – 노래하는 노예, 이슬람 황금기의 잊힌 주역

이는 무슬림 과학, 철학, 문화, 예술 발전의 황금기로 불리던 바로 그 시대였다. 바그다는 '평화의 도시'라 불렸다. 민족과 문화, 종교가 뒤섞인 부유하고 국제적인 중심지였으며,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방문객들이 배움과 경험을 쌓고 현지의 학자·예술가·장인들을 만나기 위해 몰려들었다. 활짝 핀 정원, 붐비는 수크(시장), 호화로운 저택들 사이에서 키얀 문화는 완전히 개화했다.

황금기의 여인들

일부 역사가들은 이 집단에 속한 여성들을 고대 헤타이라 혹은 일본의 게이샤에 비유한다. 대부분은 어린 나이에 구매되거나 납치된 노예였으며, 아프리카·유럽·아시아 등 각지 출신이었다. 그들은 예술, 시, 철학은 물론 과학 분야까지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키얀은 메디나와 쿠파에서 교육받은 뒤 칼리프국의 가장 권위 있고 부유한 궁정에 들어갔다.

키얀(Qiyan) – 노래하는 노예, 이슬람 황금기의 잊힌 주역

악기 연주, 아름다운 목소리, 춤에 더해 그들은 수준 높은 대화도 나눌 줄 알아야 했다. 외교관과 사회·학계 정점의 인사들이 참석하는 자리에 키얀이 자주 동석했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교양 있으며 재능까지 갖춘 그들은 가장 값비싼 노예 반열에 올랐고,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갔다. 물론 '동반자' 역할 외에 육체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방종함과 얽혀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성(性)은 그들 매력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당대 많은 연구자들은 그들을 매춘부와 같은 선상에 두지 않았다. 다만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키얀은 지정된 장소에서 대중을 상대로 공연하기도 했는데, 그중 일부는 … 사실상 매춘굴이었다.

시대의 아이콘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노래하는 노예들은 머물던 가문의 일종의 지위 상징 역할을 했다. 또한 '최악의' 의미에서의 노예는 아니었다. 궁궐 안에서 그들은 그림자 경제의 영역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으로는 동원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키얀으로서의 위치를 지켜야만 했다.

이들 다수의 위상은 오늘날의 음악 스타에 견줄 만하다. 키얀은 스타일 아이콘으로 여겨졌고, 제국 전역의 여성들이 그들을 본뜨고자 했다. 칼리프국의 궁정에서 노래하는 노예들은 존경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자신만의 하인이 딸렸고, 귀족 자제들에게 둘러싸여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익숙한 선율과 시를 연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음악과 가사를 창작하기도 했다. 그 작품들은 당대 뛰어난 남성 예술가들의 작품과 대등하게 평가받았다. 스포츠도 즐겼는데, 특히 활쏘기와 승마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칼리프의 어머니가 된 여인

미모, 교양, 지성, 그리고 다재다능함 덕분에 키얀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여인들이 되었다. 일부는 심지어 권력을 쥐기까지 했다. 대표적인 예가 예멘 출신 알카이즈란(Al-Khayzuran)이다.

어린 시절 납치되어 키얀으로 교육받은 그녀는 당대 가장 재능 있는 노래하는 노예 중 하나로 꼽혔다. 미모와 실력으로 칼리프 알마흐디(재위 775~785년)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른다. 이 결합에서 압바스 왕조 최고의 명군으로 불리는 하룬 알라시드가 태어났다. 알카이즈란은 아들의 즉위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대비(太后)의 지위는 그녀에게 독립적인 권한을 부여했다. 칼리프 하룬 알라시드 본인도 업적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뿐 아니라 '천일야화' 속에도 등장한다.

키얀(Qiyan) – 노래하는 노예, 이슬람 황금기의 잊힌 주역

안타깝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특히 서구 문명에서 키얀의 이미지는 크게 왜곡되고 얕아졌다. 빅토리아 시대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이 그 시작이었다. 문화·예술·정치에 적극 참여하던 교양 있고 재능 있는 여인들은 어느새 '무더운 아랍의 밤, 방종한 연회에서 손님을 즐겁게 해 주던 반나체의 춤추는 성노예'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시간은 그들의 역사를 완전히 잊게 하지 않았다. 오래된 필사본 속에서 다시 읽히며, 키얀은 이제 역사 속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