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결혼 생활, 류드밀라는 '남편의 규칙' 속에서 살았다
류드밀라 푸틴은 30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의 통제에 시달린 여성이었다. 물론 러시아 대통령이 아내에게 손을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매일같이 자신만이 아는 규칙에 따라 아내를 '길들였고',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며 여성을 완전히 굴복시키려 했다.
2013년 6월 6일, 두 사람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랑을 주제로 한 발레 공연 <에스메랄다>를 관람하기 위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막간 시간, 이들은 러시아 언론과의 짧은 인터뷰에서 놀랍게도 이혼 소식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결별이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앞으로도 서로 가까운 사이로 지내겠다고 밝혔다. 이혼의 이유는 대통령 배우자라는 신세가 싫어 은둔 생활을 선호했던 아내의 성향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푸틴은 "이렇게 우리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며 짧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남편은 평생 저에게 시험을 치르게 합니다"
푸틴 부부의 결혼사는 산발적으로 남겨진 정보들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다. 대통령 본인의 무심한 발언들, 그리고 2002년 류드밀라가 남편의 궁정 전기 작가인 언론인 올레그 블로츠키와 나눈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류드밀라는 약혼 과정, 결혼 초년기, 휴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녀의 증언은 책 전체에서 일부분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블라디미르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결국 책 전체 유통분이 즉각 회수되었고, 블로츠키의 경력은 봉쇄당했다.

2002년의 류드밀라와 블라디미르 푸틴. Kremlin.ru/CC BY 3.0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레닌그라드 극장 계단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22세였던 금발 스튜어디스 루다는 칼리닌그라드에서 친구를 만나러 비행기를 탔다. 친구는 지인의 극장 초대를 받았는데, 어색하지 않도록 루다를 동행시켰다. 상대편에서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친구를 데려왔는데, 그가 바로 29세의 블라디미르(볼로디야) 푸틴이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KGB 요원이라는 사실을 숨겼고, 알고 지낸 지 1년이 지난 후에야 전부 털어놓았다.
이렇게 두 사람의 로맨스가 시작되었고, 루다는 볼로디야를 만나러 비행기를 자주 탔다. 소련의 관습상 3년 넘게 이어진 연애는 매우 긴 편이었다. 그러나 훗날 대통령은 그 기간 동안 상대가 단순히 자신을 검증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관계에서 무엇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감을 잡으려고 온갖 방식으로 인내심을 시험한 것이다. 류드밀라는 블로츠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평생 저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고, 다음 시험을 잘 통과하는지 지켜봅니다."

연애 초기 칼리닌그라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만나러 가야 했던 류드밀라는 약속 시간에 정확히 나타났지만, 블라디미르는 늦곤 했다. 심지어 한 시간 반씩 늦기도 했다. 결혼식 사진(Kremlin.ru/CC BY 3.0)
예를 들어 푸틴의 악명 높은 불성실함이 있다. 연애 초반 칼리닌그라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만나러 와야 했던 류드밀라는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나타났지만, 블라디미르는 늦었다. 흔히 한 시간 반씩이나. 그럼에도 루다는 매번 제시간에 도착했고, 이번에는 푸틴이 제시간에 올 거라고 믿었다.
"지하철역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처음 15분 정도는 기분이 좋아요. 30분쯤 지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으면 울음이 터져요.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마침내 그가 나타났을 때는 아무것도 설명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죠." 그녀는 수년 후 이렇게 회상했다.
블라디미르는 잠시 후 레닌그라드로 이사 온 여자친구에게 도덕 시험도 실시했다. 그녀는 도시 외곽의 낡은 건물에 살았고, 집에 전화가 없어 저녁마다 공중전화로 블라디미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느 날 약속 시간인 저녁 7시에 전화를 걸었더니 볼로디야의 부모님은 아들이 밤 9시에 돌아온다고 했다. 그녀는 산책을 나섰고, 젊은 남자 하나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걸음을 빠르게 하자 그도 같이 속도를 냈다. 결국 낯선 남자가 그녀에게 달려들어 자기소개를 원했고, 문자 그대로 전화번호를 애원했다. 다행히 그녀는 그 성화에 시달리는 사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젊은 시절의 류드밀라
얼마 후 볼로디야는 자신이 KGB에서 복무한다고 밝혔다. 그제야 루다는 그 사건을 떠올리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약혼자가 자신에게 일종의 정절 시험을 준비한 것이 아닐까. 보안 요원의 아내가 될 사람이 길거리에서 만남을 가질 성향이 있는지 확인하려던 것이다. 그 집요한 구혼자가 남편의 동료가 아니었냐고 그녀는 여러 번 물었지만, 블라디미르는 애매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아내를 '키우다'
류드밀라의 삶의 리듬을 설정하고 행동을 형성한 것은 푸틴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친구들과 파티에 참석했습니다. 분위기 좋은 음악이 흘러서 저는 춤도 많추고 웃음도 많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파티가 끝난 후 볼로디야는 제가 천박하게 행동했고, 그런 여자와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루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일단 결정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푸틴은 그녀 곁을 떠났다가 두 달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녀의 문 앞에 다시 나타났다.
레닌그라드로 이사한 후 류드밀라가 전공을 고민하고 있을 때, 블라디미르는 스페인어 문학을 전공하라고 명령했다. 얼마 후에는 아내에게 타이핑 강좌를 수강하라고 권했다. "사실 그건 조언이 아니라 명령이었어요. 그와 논의할 수도 없어서 '네, 선생님!' 하고 말한 뒤 강좌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말했다.
딸들의 이름을 정하는 일에 대해서조차 그녀는 아무 말할 권리가 없었다.
"큰 딸을 나탈리야(나타샤)라고 부르고 싶었어요. 그 이름이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런데 볼로디야는 딸 이름을 자기 어머니를 따서 마리야(마샤)로 짓겠다고 했습니다. 울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어요. 딸은 마샤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내, 그리고 요리사
"남편은 집안의 모든 일은 아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류드밀라는 고백했다. "여자는 칭찬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버릇이 없어지니까요." 푸틴은 둘째 딸 카티야를 임신해 몸이 무거웠을 때조차 예외를 두지 않았다. 당시 부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임신한 류드밀라는 식료품이 든 무거운 가방과 유모차, 그리고 한 살 딸까지 안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푸틴의 독일인 이웃 중 한 명은 블라디미르를 붙잡고 임신한 아내를 대하는 태도를 질책했다. "여자한테는 도움의 손길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도와줘!" 그러나 푸틴은 이웃의 호소에 귀를 막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시 300주년 기념 행사에서 조지 부시와 류드밀라 푸틴. Kremlin.ru/CC BY 3.0
대통령은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제가 준비한 요리의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는 그저 밀쳐내고 먹지 않았어요." 류드밀라는 말했다. "예를 들어 고기를 내놓고 평가를 기다립니다."
푸틴 부부가 드레스덴에서 레닌그라드로 돌아온 후, 루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외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회상했다.
"누구도 저를 배려해주지 않았어요. 주 4회 대학에 나가고, 딸들을 학교 방과 후 활동에 데려다주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했습니다. 주말에도 쉴 수 없었어요. 볼로디야가 친구들을 우리 다차로 초대했으니까요. 10~15명분의 음식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요리가 정말 지겨워졌죠."
새로운 삶
류드밀라와 블라디미르의 사생활은 철저히 비밀에 싸여 있었지만, 외신 기자들은 아마도 이혼을 먼저 결심한 쪽이 여성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인지 2013년 푸틴 부인은 포브스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인에 이름을 올렸다.
몇 년 전 류드밀라는 재혼했다. 그녀가 선택한 사람은 18살 연하의 기업가 아르투르 오체레트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