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통치 가문들은 자신들의 비밀을 철저히 감춰왔다. 특히 도덕성을 의심받게 하거나 왕실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는 비밀일수록 더욱 그랬다. 그중 일부는 오늘날까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 그 하나가 바로 니콜라이 2세의 황후 알렉산드라, 애칭 '알릭스'에 관한 이야기다. 과연 군주는 폴란드인 이복 남동생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이 이야기의 서막은 장차 러시아 황후가 될 소녀의 어머니, 헤센 대공비 앨리스의 요절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딸이었던 그녀는 1878년 12월 14일, 불과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슬픔에 잠긴 남편 루트비히와 다섯 아이들을 남겨두고 말이다. 빅토리아(15세), 엘리자베스(14세), 이레네(12세), 에른스트(10세), 그리고 막내 알릭스(6세)였다.

헤센 대공비에게는 감춰진 어두운 비밀이 있었다…
루트비히 대공은 장녀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들의 어머니 노릇을 해야 했다. 과부가 된 초기 몇 년간 그는 다른 여성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삶의 기쁨을 되찾기 시작했다.
사랑에 빠진 군주
그 변화를 불러온 인물은 알렉산드라 드 콜레미네 부인, 즉 처녀 시절 성이 후텐차프스카였던 여성이었다. 그녀는 당시 헤센의 수도 다름슈타트 주재 러시아 대리공사의 아내였다. 아버지는 아담 후텐차프스키 백작, 어머니는 마리안나 제부스카그로홀스카였으며, 알렉산드라는 1854년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헤센 궁정에 파견된 외교관의 아내로서 알렉산드라는 각종 리셉션과 무도회에서 대공을 자주 마주쳤다. 루트비히가 언제 이 폴란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가 불륜에 빠진 이유 역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실패한 결혼 생활 탓이었을까? 아니면 외교관의 아내로 사는 것보다 헤센 군주의 정부(情婦) 신분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던 걸까?

헤센의 루트비히 4세와 그의 가족
루트비히는 그녀가 이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고, 이후 알렉산드라는 다름슈타트에 머물렀다. 흥미로운 점은 대공의 자녀들이 아버지와 콜레미네 부인의 관계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연인을 호감과 함께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비록 그들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했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불쌍하기도 했다. 다 큰 딸들이 결혼해 각자 남편의 집으로 떠나면, 아버지가 깊은 외로움에 시달릴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루트비히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었다. 연인과의 재혼을 원했던 것이다.
비밀 결혼과 강제 무효
사랑에 빠진 군주는 예식 날짜까지 정해두었다. 1884년 4월 30일 오후. 헤센 총리가 두 사람을 몰래 결혼시켰는데,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날 오전 장녀 빅토리아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손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다름슈타트에 머무르고 있던 빅토리아 여왕은 사위가 재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했다. 여왕은 이혼한 여성과의 관계, 게다가 러시아 제국 출신 여성과의 결혼(여왕은 반러시아 성향으로 러시아를 영국의 최대 적국으로 여겼다)이 헤센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사위의 명예를 추락시킬 것이라 확신했다.

손녀의 결혼식을 위해 다름슈타트에 머물러 있던 빅토리아 여왕
여왕은 헤센 손주들에 대한 재정 지원을 끊겠다고 위협했다. 다름슈타트의 저택은 넉넉한 편이 못 되었으므로 이는 치명적인 압박이었다. 결국 이 결혼은 무효화될 수밖에 없었다. 법적 문제 처리는 여왕의 장남 에드워드가 맡았다. 장모의 결정을 통보받은 루트비히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는 딸들의 결혼 이후 가족의 행복을 누릴 어떤 가능성도 박탈당하고 고독에 내몰린다고 절망했다.
콜레미네 부인에게는 헤센을 떠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변호사들은 결혼 무효의 명분을 만들어냈다. 헤센은 연방 국가로서 독일 제국의 일부였다. 헤센군 사령관인 루트비히 대공은 사실상 독일 제국군 장교였으므로, 빌헬름 1세 황제의 공식적인 결혼 승인이 필요했다. 공식 승인이 없었다는 점이 결혼 무효의 근거가 될 수 있었고, 변호사들은 바로 이 틈을 이용했다.
눈물을 달래기 위해 콜레미네 부인에게는 롬로트 백작부인 작위와 4만 마르크가 지급되었다.
사랑의 결실, 그리고 협박
헤센의 군주와 영국의 장모는 '잘못된 여자'로 인한 골칫거리를 해결한 듯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1884년 말, 베네치아 체류 중이던 폴란드 여인은 아들을 낳았다. 루트비히와의 사랑이 남긴 결실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아이의 이름은 역사의 기록에 남지 않았다.
알렉산드라 드 콜레미네는 이 아이가 자신에게 추가 수입원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옛 연인과 빅토리아 여왕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헤센과 영국 궁정의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스캔들을 잠재우기 위해 여왕과 루트비히는 입막음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헤센 대공은 189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모인 여왕은 그보다 더 오래 1901년까지 돈을 보냈다.

니콜라이 2세의 숙부와 결혼한 엘리자베스(엘라)는 알렉산드라를 설득해 남동생을 돕도록 했다.
물론 루트비히의 자녀들, 그중에서도 막내딸이자 러시아 황후가 된 알렉산드라 역시 사생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니콜라이 2세의 숙부와 결혼한 엘리자베스(엘라)가 여동생 알렉산드라를 설득해 남동생을 돕도록 이끌었다. 애초에 엘라는 이 폴란드 여인에게 늘 다정했다. 1884년 다름슈타트 스캔들 당시, 헤센 국경으로 떠나는 여인에게 담요를 건네며 추위를 막아준 것이 바로 그녀였다.
남동생에게 새 출발을 선물한 자매들
물론 엘라와 알렉산드라는 폴란드인 남동생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와 저명한 자매들에 관한 소식은 오직 해외 언론을 통해서만 보도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이다. 이 신문의 기자들은 황후 알렉산드라에 대해 이렇게 썼다.
"언니 엘리자베스의 권유에 따라 소년을 사실상 입양해 그의 부양을 맡았고, 어머니의 모든 걱정을 덜어주었다."
황후는 남동생을 러시아로 데려와 러시아 귀족 작위를 받도록 도왔고, 제국군 정예 부대 중 하나에서 군 경력을 시작하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이렇게 혼외 관계에서 태어난 젊은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수월한 인생의 출발선을 얻게 되었다. 또한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에 따르면 엘라는 '폴란드인 매력적인 계모'에게 "늘 연민을 보여주었다"고 전해진다.
콜레미네 부인과 헤센 대공의 아들은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할 때까지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볼셰비키 시대에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폴란드 여인과 헤센 대공 루트비히의 후손은 지금도 러시아 어딘가에 살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