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브로츠와프 역사가가 밝혀낸 충격적 진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인들을 히틀러의 품으로 몰아넣었다

제2공화국 시절부터 이어진 폴란드·우크라이나의 갈등

제2공화국이 수립된 이래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결코 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내부 갈등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이미 극한 상황까지 치닫고 있었습니다. 역사가 얀 켕시크(Jan Kęsik)는 폴란드군의 행동 때문에 절망에 빠진 우크라이나인들이 나치 독일군을 일종의 구원으로 여기기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1930년대 후반, 폴란드 당국은 헤움(Chełm) 지방과 볼히니아(Volhynia) 지역에서 소수민족인 우크라이나인을 상대로 무자비한 폴란드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집권 세력은 이 땅의 정교회 신도들도 사실은 독실한 폴란드인이라는 인식을 그대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톨릭교회와 폴란드 민족의 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논리가 관철되었습니다.

이 작업의 기획과 실행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군부, 특히 1936년 12월 루블린에 설치된 제2군관구 사령부 산하 조정위원회였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1938년 봄과 여름에 절정에 달했습니다.

교회 철거와 각종 탄압

초기 지침에는 "모든 시민은 모국어 사용의 자유, 종교의 자유, 문화 발전의 권리를 누릴 뿐만 아니라 따뜻하게 환영받아야 한다"는 문구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공허한 선언에 불과했습니다. 실제로 폴란드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시민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브로츠와프 역사가가 밝혀낸 충격적 진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인들을 히틀러의 품으로 몰아넣었다

슈체브레진(Szczebrzeszyn)의 정교회 성당. 1938년 철거가 시작되었으나 현지 지식인들의 항의로 중단되어 반쯤 파괴된 채 방치되었습니다. 사진은 부분 복원 이후의 모습입니다(출처: MaKa, CC BY-SA 3.0).

루블린주에서 벌어진 폴란드화 및 '회수' 작전은 제3레기온보병사단이 수행했습니다. 여기에는 성씨와 지명의 폴란드화, 가톨릭으로의 강제 개종 등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군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국은 정교회 성당들을 사통팔단 없이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폐쇄된 성당뿐 아니라 폴란드 행정부가 승인하지 않은 교구가 사용하던 성당까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얀 켕시크는 학술지 『콰르탈니크 히스토리치니(Kwartalnik Historyczny)』에 실은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루블린 주지사는 총 127개의 종교 건물이 철거되었으며, 그중 성당 91곳, 예배당 10곳, 기도소 26곳이라고 통보했습니다. 성당 3곳은 가톨릭교회에 넘겨졌고, 예배당 4곳은 영안실로 남겨졌습니다. 파괴된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6세기에 지어진 것이었으며, 심지어 성물을 훼손하는 모독 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히틀러가 와서 라흐들을 응징할 것이다"

성당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자 우크라이나 민중은 격분했습니다. 펠리치안 레흐니츠키(Felicjan Lechnicki) 상원 의원 일가, 스타니스와프 체카노프스키(Stanisław Czekanowski) 스타시츠 재단 이사장 등 폴란드 지식인 다수도 항의에 나섰습니다. 얀 켕시크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우크라이나 소수민족 사이에서는 미움받는 폴란드 국가의 운명을 끝장낼 전쟁의 발발을 속히 기대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졌습니다. "우리는 폴란드에게 억눌리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폴란드가 짓밟힐 것이다." 독립 우크라이나 국가에 대한 희망은 흔히 아돌프 히틀러와 결부되곤 했습니다.
브로츠와프 역사가가 밝혀낸 충격적 진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인들을 히틀러의 품으로 몰아넣었다

이 글은 학술지 『Kwartalnik Historyczny』에 게재된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은 가톨릭 개종을 경고하고, 제3제국에 의한 우크라이나의 조속한 재건을 예고하는 전단을 뿌렸습니다.

폴란드 입장에서 이 작전의 최우선 목표는 국방력 강화였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우크라이나인 자위조직이 결성되기까지 했습니다.

"히틀러가 온다, 라흐(Lach, 폴란드인)들을 나무 장식으로 매달겠지" — 당시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런 말을 곱씹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전적으로 탓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만약 어떤 분할 지배국이나 점령당국이 폴란드 성당 약 130곳을 즉각 파괴하기로 결정했다면, 폴란드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우크라이나 주민들에게 제2공화국은 조국이 아니라 오히려 점령자에 가까웠고, 1938년의 사건들은 그 확신을 더욱 굳혀줄 뿐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기 우크라이나 측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참고 문헌

Jan Kęsik, Participation of the army in the recovery and polonization action in the eastern and southern poviats of the Lubelskie Voivodeship in the years 1937–1939, "Kwartalnik Historyczny", vol. 121 (2014), No. 4, pp. 799–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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