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램은 오늘날 주로 아동 도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 그녀는 광기 어린 발작 속에서 친모를 살해했습니다.
1796년 초가을, 런던 시민들은 끔찍한 범죄 소식에 경악했습니다. 31세 여성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차갑게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것입니다. 비극은 9월 22일 목요일 홀본(Holborn) 지역에서 벌어졌습니다. 이틀 뒤 타임스(The Times)에 실린 목격자 증언에 기반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 가족이 저녁 식사 자리에 앉았을 때, 그 젊은 여인은 식탁용 칼을 집어 들고 방 안 곳곳으로 견습공인 어린 소녀를 쫓아다니며 위협했습니다. 병약한 어머니가 진정하라고 불렀지만 딸은 처음에는 무시했고, 이내 크게 비명을 지르며 다가갔습니다. 한편 소녀의 울음소리에 집주인이 달려왔으나 이미 늦은 뒤였습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끔찍한 광경이었습니다. 의자에 기대 앉은 채 심장에 찔려 숨진 어머니, 그리고 그 위에 칼을 든 채 서 있는 딸. 근처에서는 늙은 아버지가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는 젊은 여인이 분노 속에 사방으로 휘두른 포크 중 하나에 부상당한 것이었습니다.
피해자가 마비 상태였다는 사실이 참상을 더욱 짙게 했습니다. 살육의 충동에 사로잡힌 딸에게서 도망칠 길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양처럼 온순했다고?
기사에 따르면 가족은 끔찍한 폭발 며칠 전부터 그녀에게서 광기의 조짐을 눈치챘다고 합니다. 사건 당일 아침, 전날 밤의 행동이 걱정된 남동생은 피트케언(Pitcairn) 의사를 찾아갔지만 집에서 만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이번이 처음인 발작도 아니었습니다. "배심원들은 물론 정신 이상 판정을 내렸습니다." — 홀본 비극을 다룬 기사의 결론이었습니다.

광기 어린 살인범은 메리 램(Mary Lamb). 그런데 그녀는 역사상 아동 도서 『셰익스피어 이야기(Tales from Shakespeare)』의 공동 저자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1807년 출간된 이 선집은 유명 작품들을 어린이가 읽기 쉽도록 새롭게 각색한 버전을 담고 있었습니다. 메리와 남동생 찰스(바로 그, 도움을 구하지 못해 모살을 막지 못한 인물)는 셰익스피어의 문체를 다듬고 플롯을 단순화했으며, 책에 실린 모든 희극은 메리의 몫이었습니다.
그녀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메리 램은 1764년 12월 3일 런던에서 존과 엘리자베스 램 부부의 일곱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성년까지 살아남은 형제는 형 존 주니어와 남동생 찰스, 그리고 그녀 단 세 명뿐이었고, 찰스는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부모는 변호사 새뮤얼 솔트(Samuel Salt) 밑에서 일했고, 그의 배려로 고즈넉하고 푸른 인너템플(Inner Temple) 지역에 살 수 있었습니다. 메리는 지역 학교에 다녔고, 14세 때부터는 재봉사에게 교육받았습니다. 훗날 그녀의 어두운 과거를 아는 사람들조차 그녀를 온화하고 신중하며, 이성적이고 침착하며 명량한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가족의 유일한 생계책
1792년 고용주가 세상을 떠나면서 램 가문의 형편은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사할 수밖에 없었고, 부모의 건강도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왼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관절염으로 보이는 격통에 시달리다 결국 마비되었습니다.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메리의 어깨에 얹혔고, 숙모 사라 램까지도 보살펴야 했습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원피스 재봉 일을 시작했으며, 사건 당시 메리는 가족의 유일한 생계책이었습니다. 리사 아피냐네시(Lisa Appignanesi)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녀는 동틀 녘부터 늦은 저녁까지 원피스를 지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면 마비된 어머니와 같은 침대에 누웠는데, 어머니는 한 번도 따뜻한 마음을 내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은 1794년 겨울과 1795년 메리를 괴롭히는 발작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메리만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1795년 말, 남동생 역시 "일시적 광기"와 "우울"에 시달렸고, 결국 스스로 헉스턴(Hoxton) 정신병원에 들어가 6주간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될 9월 22일, 메리의 손에서 피 묻은 칼을 빼앗은 사람 역시 찰스였습니다. 그 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오늘날 메리 램이라면 아마 교도소 내 정신병동에 수감되었겠지만, 18세기와 19세기가 교차하던 영국에서 그녀는 정신 이상자로 간주되어 이즐링턴의 피셔 하우스(Fisher House) 정신병원에 몇 달 머문 뒤 퇴원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시설에 입원했지만, 그 외에는 평온하고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당시 법은 정신 이상자라도 "안전을 위해 적절한 보호를 받는다면" 폐쇄 시설을 나갈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그 보호자 역할을 맡은 사람이 21세의 찰스였고, 이후 남매는 거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흔들리는 균형
찰스는 지인들에게 메리가 사건 겨우 두 주 뒤인 10월 3일 "정신을 되찾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여동생의 마음이 흐려진 원인이 모성애를 받지 못한 데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메리는 피셔 하우스를 나온 뒤 다시는 공격적인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물론 최소한 매년 한 번씩 재발을 겪긴 했습니다. 아피냐네시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우리가 아는 한, 발작은 주로 과로, 과도한 방문객으로 인한 흥분, 죽음의 소식, 혹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동생의 상태가 악화되면 찰스는 초기 몇 년간 그녀를 헉스턴의 정신병원 중 한 곳에 맡겼습니다. 남매는 재발의 전조를 알아차리고 미리 대비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찰스는 평생 메리에게 충실한 오빠였습니다. 건강이 좋은 시기에는 남매가 함께 글쓰기에 몰두했습니다. 『셰익스피어 이야기』 출간 이후 메리는 아동문학 창작에 헌신하기로 결심했고, 찰스와 함께 단편집 『레스터 부인의 학교(Mrs. Leicester's School)』와 시집 『어린이를 위한 시(Poems for Children)』를 내놓았습니다.
불행 속의 행복
남매는 한쪽이 살아 있는 동안 결혼하지 않겠다고 서로 약속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여동생을 돌보는 부담이 날로 무거워진 찰스는 술에서 도피처를 찾았습니다. 1834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그가 머무르던 정신의료 시설 근처 에드먼턴(Edmonton)에서 술에 취해 걷다 다쳤고, 상처가 화농증으로 번져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메리는 13년을 더 살았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남동생의 죽음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처음 3년간은 놀랍도록 건강했지만, 이후 광기의 발작은 더욱 강하게 되돌아왔습니다. 그녀는 1847년 5월 20일 82세로 생을 마쳤으며, 미들섹스(Middlesex) 묘지에서 찰스 곁에 잠들었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운이 좋았습니다. 범행이 몇 년만 늦었다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피냐네시는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1800년 통과된 새 법률에 따르면, 다시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메리 램이라 해도, 남동생이 보호를 맹세했고 수십 개의 사립 정신병원이 그녀를 받아들이고자 했더라도 자유를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참고 문헌
- L. Appignanesi, 『Mad, Bad and Sad: Women and Psychiatrists』, Margins, 2021.
- S. Burton, 『A Double Life: A Biography of Charles and Mary Lamb』, Viking, 2003.
- S.T. Hitchcock, 『Mad Mary Lamb: Lunacy and Murder in Literary London』, W.W. Norton,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