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뻔뻔한 천재들: 미술사를 뒤흔든 가장 유명한 위작 스캔들

미술계를 뒤흔드는 완벽한 위조품들

미술계의 위작은 미술사학자, 연구자, 감정사, 수집가들의 잠을 설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실제로 우리가 박물관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 중 10% 이상이 가짜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고의 문화기관에서조차 사기가 간파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위조 기술이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프랭크 윈(Frank Wynne)은 저서 나는 베르메르였다에서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합니다. 미켈란젤로는 다른 화가의 작품을 빌려 모사본을 제작한 뒤, 모사본을 돌려주고 원본을 자신이 차지했다고 합니다. 물론 미술 위조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고대 로마인들이 그리스 조각을 복제한 것부터가 이미 광의의 모방이라 할 수 있죠.

영화감독 오슨 웰스(Orson Welles)는 "위조는 에덴동산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위작은 예술과 함께 발전해 온 긴 역사를 지니며, 수백 년에 걸쳐 수십만 점, 어쩌면 그 이상의 위작이 세상에 나왔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중 일부는 지금도 유명 미술관의 벽에 걸려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탐지하기 어려울 만큼 완벽한 위작에는 그만한 천재적인 창작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미술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위조범들은 누구일까요? 재능 하나는 진짜였던 세 명의 기만자를 소개합니다.

한 반 메헤런 — 과소평가받던 화가, 타고난 위조범

한 반 메헤런(Han van Meegeren)은 네덜란드 출신 화가로 1889년에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태어난 시기가 명백히… 너무 늦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과거 거장들의 회화 미학과 아름답게 어울렸기 때문에, 20세기 초 급변하는 새로운 예술 사조와 취향에는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 메헤런은 솜씨와 기교는 높이 평가받았지만 독창성 부족을 비판받았습니다. 평론가들은 그의 그림이 옛 작품의 모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야심 찬 화가는 이러한 혹평에 대해 '예술적인' 방식으로 복수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위작 제작이었죠. 그가 표적으로 삼은 인물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였습니다. 베르메르야말로 그가 가장 존경하는 예술의 대표자였고, 자신이 모사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거장들에 필적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뻔뻔한 천재들: 미술사를 뒤흔든 가장 유명한 위작 스캔들

반 메헤런은 뛰어난 솜씨를 인정받았지만, 평론가들은 그의 그림이 옛 작품의 모사라고 비판했습니다.

첫 위작을 그리기 전까지 그는 몇 년간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베르메르의 작품 세계를 연구하고, 안료를 실험하며, 17세기의 낡은 캔버스와 붓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결과 그는 실제로 17세기의 그림을 '만들어'냈고, 그 뒤로도 계속 만들어냈습니다. 1937년 작 에마오의 만찬(Supper at Emmaus)은 미술사상 가장 유명한 위작으로 꼽힙니다. 반 메헤런은 이 그림을 50만 굴더 이상에 판매했는데, 자신의 이름을 건 그림으로는 결코 벌지 못했던 금액입니다.

그의 위작은 1940년대 중반에야 발각되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화가는 수년간 열네 점의 작품을 위조했으며, 그중 아홉 점을 판매했다고 자백했습니다. 판매된 위작으로 번 돈은 총 716만 7천 굴더에 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사람인 척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벌지 못했을 거액이었죠.

에릭 헤본 — 은둔해야 할 위조범의 운명을 잊은 남자

1934년생 에릭 헤본(Eric Hebborn)은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부모에게 학대당했고 집안은 가난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회화 재능을 보였지만 좋은 도구를 구할 여유는 없었고, 그는 타버린 성냥개비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학교에서 성냥개비 컬렉션이 발견되자 그는 심하게 벌을 받았고, 복수심에 학교에 불을 질러 소년원에 수감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학업을 마칠 수 있었고, 나아가 런던 왕립예술아카데미에 진학했습니다. 재능은 확실했습니다. 학생 대회에서 상을 수상했고 장학금을 받아 로마로 유학을 떠났죠. 그러나 졸업 후에도 비평가들의 인정은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위작 제작에 손을 댔습니다. 다른 위조범들과 달리 그는 기존 작품을 모사하지 않고, 특정 화가의 스타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렸습니다.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의 드로잉을 만들어 쉽게 팔았고, 이후에는 루벤스, 코로, 반 다이크의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솜씨가 워낙 뛰어나 그의 손에서 나온 모든 작품이 구거장들의 '잃어버린 걸작'으로 인정받았고, 당연히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뻔뻔한 천재들: 미술사를 뒤흔든 가장 유명한 위작 스캔들

에릭 헤본은 루벤스, 코로, 반 다이크의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돈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그는 1984년 자신의 위조 행위를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나아가 1990년대에는 자서전 Drawn to Trouble과 위조범을 위한 '교본' 격인 The Art Forger's Handbook을 출간하며 자신의 작업 방식과 전문가를 속이는 요령까지 공개했습니다.

회고록에서 헤본은 자신의 위작이 걸려 있는 컬렉션들을 지목했지만, 미술관들은 소장품에 가짜가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심스러운 캔버스들이 조용히 전시에서 내려져 창고로 옮겨졌고,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처리되었습니다.

헤본 자신은 무려 500점의 위작과 1만 점이 넘는 스케치를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자들과 미술관·경매장 직원들을 성공적으로 속인 것에 대한 만족감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오만이 그를 파멸시켰습니다. 1996년, 그는 로마의 한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미술상들의 살해로 추정되는데, 그가 그들에게 너무 큰 골칫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볼프강 벨트라키 — 위조범 사이의 셀러브리티

볼프강 벨트라키(Wolfgang Beltracchi)는 위조 화가로서 놀라운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는 적발되기 전까지 무려 40년간 위작을 만들었습니다. 에릭 헤본처럼 그 역시 기존 작품의 모사가 아니라 특정 화가 스타일의 새로운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내 헬레네가 그의 사업을 도왔는데, 그가 그림을 그리면 그녀가 나머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부부는 대담한 설정을 만들어냈습니다. 헬레네가 할아버지 베르너 예거(Werner Jäger)로부터 유명 화가들의 그림 컬렉션을 상속받았다는 것이죠. 덕분에 그들은 귀중한 작품의 출처를 캐묻는 불편한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모두가 이 이야기를 그대로 믿었습니다.

처음에는 18세기 화가 스타일의 위작을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20세기 화가 위조에 집중했습니다. 해당 시기의 안료와 캔버스를 구하기가 더 쉬웠기 때문입니다. 막스 에른스트, 파블로 피카소, 하인리히 캄펜동크, 페르낭 레제의 화풍을 따라 그리는 것은 그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화가든 흉내 낼 수 있다고 자신했고, 그리기도 매우 빨라 때로는 하루 이틀이면 그림 한 점을 완성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는 빠르게 백만장자가 되었고, 부부는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습니다.

뻔뻔한 천재들: 미술사를 뒤흔든 가장 유명한 위작 스캔들

볼프강 벨트라키는 막스 에른스트, 피카소, 캄펜동크, 레제의 화풍을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그의 몰락은 우연과 자신의 부주의 때문이었습니다. 위조한 막스 에른스트 작품에서 티타늄 화이트가 검출된 것입니다. 이 안료는 화가가 생존해 있던 시기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물질이었죠. 벨트라키는 약 50명의 화가 작품을 위조했다고 자백했지만, 실제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14건의 위조에 불과했습니다. 정확한 판매 규모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개인 컬렉션과 미술관에 그의 위작이 수백 점, 어쩌면 수천 점이나 흩어져 있을 것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큰 파장을 일으킨 재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붓에서 나온 추가 위작을 찾기 위한 철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그의 가짜 걸작들은 지금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볼프강 벨트라키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그는 아직 생존해 있습니다. 출소 후 그림 그리기를 재개했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수백만 달러를 버는 것으로 알려졌죠. 전시회를 열고, TV 인터뷰에 출연하고,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너무나 완벽하게 위조해서… 결국 셀러브리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